식은 호떡도 달콤해

by Yujin


그 호떡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릴 적 아빠는 공업사를 운영하셨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일하는 남자들의 땀냄새와 망치 소리로 가득했던 시끌시끌한 삶의 공간. 안쪽으로는 사무실 겸 방이 있었고 거기서 아이템풀, 공문수학 같은 학습지를 풀었다. 동네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 고무줄 뛰기, 인형 놀이, 하늘땅(사방치기)을 하거나.


아빠는 한 번씩 물을 마시러 혹은 도면을 보러 방에 들어와 호떡을 사 오라며 돈을 주셨다. 호떡집은 엄마와 함께 종종 장을 보러 가던 시장 입구에 있다.(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아직도 그 시장이 남아있다...!) 내 뒤로 점차 줄어드는 땅땅땅- 망치 소리를 들으며 오른쪽으로 4분쯤 걸으면 약국이 있고 그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보이는 서원시장. 초입 구석의 작은 모퉁이에 호떡 할머니가 계신다. 할머니라곤 해도 백발이 성성하거나 구부정하지 않은 그는 검은 머리에 호리호리하고 자세가 곧았다.

줄 없는 호떡 수레 앞은 보통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호떡 한 장에 100원, 150원이었나? 기다리는 동안 철판에 올라가는 말캉한 반죽덩이들을 구경한다. 그는 호떡 뒤집개를 잘 쓰지 않는다. 맨손으로 휘릭휘릭! 잽싸게 뒤집는 솜씨가 일품이다. 뜨거울 틈도 없을 것 같은 속도로 뒤집고 꾹- 누를 때만 전용 도구를 사용한다.


얇게 착착 포개져 나오는 호떡을 보통 10장, 20장씩 샀다. 고소하고 달콤한 호떡소를 포개진 호떡 위로도 듬뿍 뿌려주시는 건 그만의 스타일! 얼른 먹고 싶어서 돌아가는 발걸음은 급할 수밖에. 사실 식어도 변함없이, 어쩌면 더 훌륭한 맛이야말로 그 호떡이 가진 쵝고의 미덕이었지만.


언제부터인지 요즘 나오는 호떡들은 굽는 호떡, 튀긴 호떡 할 것 없이 대개 퉁퉁하고 뚱뚱하다. 두툼한 호떡은 떡이라기보다 빵에 가까운 식감이 일단 불만스럽다. 게다가 속(‘꿀'이라고 해야하나)이 굳지 않은 경우가 많아 먹다가 떨어지면 얼마나 뜨거운지!. 옷이나 신발에 묻어도 잘 지워지지 않아 먹다 흘린 티를 영락없이 내고 다녀야만 한다.


할머니의 호떡 반죽은 부드러워서 누르다 가끔 찢어지긴 했어도 먹을 때 눈치 없는 꿀이 제멋대로 떨어지거나, 녹지 않은 설탕 알갱이가 서걱거리는 법이 없었다. 반쯤 속이 비치는 호떡을 접어 종이컵에 담아주시는 날엔 겉이 바삭한 그것을 번개처럼 해치울 수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함께 놀던 친구들이 하나둘 학원으로 사라질 무렵, 할머니는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 후로 10여 년이 흐르면서, 오빠와 나 그리고 아빠와 엄마도 차례로 일터와 함께 사라졌다.


천 원, 이천 원을 내밀며 심부름을 시키던 아빠의 나이가 내게 찾아와 흰머리가 늘어간다. 사라졌지만 사라진 게 아닌 아렴풋한 기억들을 천천히 더듬을 때면 가슴이 느닷없이 울렁거린다. 차갑게 식어도 여전히 쫄깃하고 훌륭했던 호떡처럼, 얇게 한 장씩 떼어먹을 추억이 아직 한참 남아 슬프고 기쁘기도.

살면서 꼭 한 번은 사라진 소중한 것들을 다시 만날 수 없을까 애통해하다가, 안갯속 그들에 대한 상상의 여백을 남기는 편이 한층 아름다우리라는 걸 떠올리며 입맛을 다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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