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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국 Mar 13. 2020

대표님은 당신을 모른다

우리는 누구에게 충성해야 하는가

 그는 내가 예전에 근무했던 부서의 팀장이자 현재는 더 높은 직위로 승진한 간부 직원이다. 그의 처세에 대한 소문은 직원들 사이에 무성했다. 임원과 마주치는 순간 180도 인사는 기본이었고, 퇴근이 늦은 임원에게 싹싹하게 찾아가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직원들 대부분은 그의 그런 모습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작년 가을 우연히 그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내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X 대리는 내가 승진시켜줬지. 나한테 워낙 잘해서 대표님께 잘 말씀드렸었어.”






 그는 팀장으로 근무할 당시 직원들에게 불편한 존재였다. 보수적인 생각과 경직된 태도에 직원들 대부분은 그의 곁에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면전에서 면박을 주는 경우도 파다했다. 그의 곁에 머무르거나 그를 챙겨주는 직원은 없었다. X 대리는 그에게 다가가 곁을 지켰다. 말동무, 밥 친구가 되어 주며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직원들은 X 대리의 승진이 이런 처신과 관련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생각해봐, 대표님이 당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겠어? 보고와 결재는 전부 내가 들어가는데. 대표님께서 누구를 승진시킬지 누구에게 물어보겠어?"

 

 그의 말을 듣는 내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의 말이 지극히 현실적이며,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조직의 발전을 위해 성실하게 근무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도 마음을 다잡으며 일했다. 정직한 결과를 기대했지만, 인사 결정권자에게 전달된 나의 업무성과는 없었다. 간부들은 불필요한 업무에 반문하고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의견을 관철하는 나를 눈엣가시로 생각했다. 반골 기질의 교만하고 불손한 직원으로 낙인찍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다른 직원들에 비해 승진이 빠른 선배와 후배가 있다. 이들은 크고 작은 행사에 언제나 참석했다. 간부들이 참석하는 행사에 늘 동행하여 술잔을 채워줬다. 흥이 떨어지지 않도록 탬버린을 흔들고 춤을 췄다. 축구를 할 때면 패스와 응원을 해주고 경기가 끝나면 수발을 들어줬다. 이들을 보면 조직에는 발전을, 개인에는 성장을 위한 건전하고 정직한 인사제도를 더는 기대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조직에서 인사 결정권자가 당신을 직접적으로 알고 있을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당신의 이름과 직위는 물론 당신의 인사고과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근태, 담당업무, 성과 등을 인사 결정권자는 모른다. 그는 조직의 간부들로부터 꼭 필요한 사항에 대해 단편적인 보고를 받고 결정할 뿐이다. 인사와 관련된 보고에 간부들의 주관이 포함되었는지는 결코 판단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관점보다 개인적인 관계를 우선한다. 

 

 어느덧 입사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조직문화에 적응해서 정년까지 버티는 직장인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과 고민을 최근에 한다. 나를 애처롭게 생각하는 선후배들은 내게 지금 바로 퇴사할 계획이 없다면 조금 더 겸손하고 원만한 조직 생활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해준다. 고마운 조언이다. 그러나 충성의 대상이 혼란스러운 탓에 생각이 많아진다. 고민은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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