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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국 Mar 15. 2020

상사의 약속

Office changes manners

 "형이 자리 잡으면 부를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3년 전, 그는 나를 데려간다는 말을 남기고 그가 원하는 부서로 떠났다. 그리고 현재, 나는 여전히 남겨져 있다.


 그도 한때는 인사의 피해자였다. 그는 숫자 다루는 일을 하던 부서에서 직원들이 꺼리는 민원부서로 좌천성 발령을 받았다. 평소 말이 많고 산만했던 그의 모습이 간부들에게는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는 2년여의 세월을 버텼다. 회사에서 이례적으로 직원들의 근무 희망부서를 조사할 때, 그는 이전에 근무했던 부서로의 복귀를 희망했다. 그의 모습에서는 간절함이 느껴졌다. 내가 신입직원이었던 시절, 그는 나의 사수로서 나를 잘 이끌어줬다. 나는 그가 어떤 업무를 가장 잘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부서로 가는 데 힘을 보태고자 의견을 남겼다. 그의 바람은 결국 이루어졌다. 그는 그가 원하던 데로 근무했던 부서의 팀장으로 금의환향하였다. 그와 같은 부서에 지원한 나는 아쉽지만 그와 함께하지 못했다. 그와 함께한 술자리에서 그는 나를 꼭 데려가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그의 약속을 믿으며 기다렸다.


 그것이 헛된 믿음이었다는 것은 그로부터 1년 뒤 알게 되었다.






 그는 새로 이동한 부서에서 이따금 내게 업무의 조언을 구했다. 나는 성심껏 그에게 조언해주었다. 그와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담보로 다른 부서에 소속된 내가 그의 부서의 현안에 대해 먼저 얘기를 꺼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진지하게 내 의견을 들어주었다. 업무에 대해 고민하는 그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잠시나마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착각도 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불편한 시선들이 느껴졌다. 시선들은 말하고 있었다.


 '다른 부서의 직원이 왜 우리 부서의 업무에 참견하는 거지?'






 그는 변했다. 그가 어느 순간부터 나를 무시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내게 먼저 말을 거는 일도, 장난을 치는 일도 없었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고민을 나누던 사이에서 서로를 본체만체하는 어색한 사이가 돼버렸다. 그와 나눴던 대화, 그와의 친분, 그의 약속이 모두 우습게 느껴졌다. 다른 부서 직원인 나에게 조언을 구했던 그는 입방아에 오르는 상황을 면피하고자 나와의 관계를 단절했다. 얼마 후 그는, 평소 편애하는 동향의 직원을 그의 부서에 배치하였다. 그의 뇌리에 나와의 약속은 없었다. 나라는 존재는 없었다. 그는 불편한 시선을 감당할 용기도, 나를 자신의 부서로 데려올 생각도 없었다.


 상사가 당신에게 막연한 약속을 한다면, 나는 염두에 두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의 상황과 처지는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그는 언제든지 마음을 바꿀 수 있다. 약속은 언제든지 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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