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걸음 - 인식의 차이를 인정하기-1
어느 해 연말 직원들의 진급과 성과평가가 끝날 때 즘에 예상 밖의 어느 과장이 면담을 신청했다. 업무 처리가 깔끔하고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직원이었기에 의아한 마음에 면담한 결과, 연말 평가와 진급 심사에 대한 불공정성에 대해서 나에게 문의 겸 불만을 표출하였다. 최근에는 이러한 경우가 자주 있어 회사는 가급적 객관적인 성과 평가와 진급심사를 진행하고자 분기나 반기가 끝나면 임원과 팀장은 팀장이나 팀원 면담을 1년에 4번 진행하도록 하고 있었다. 가급적 객관적인 평가를 통하여 보상과 진급에 반영하기 위한 회사의 방안인 것이다. 연말에 한 번의 평가를 진행하면 고과 시즌 근처에 업무를 많이 한 직원이 연초나 연중에 성과가 좋은 직원보다 진급이나 연봉 조정 시 유리한 경우 생기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고자 도입한 것이다. 사람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어 시간이 지난 것보다 최근의 것이 기억에 또렷하게 남는 잔상이 크기 때문이다. TV 드라마도 연초에 인기가 많은 것보다 연말에 방영된 드라마가 방송국이 자체적으로 거행하는 시상에서도 후한 점수를 받고 상을 탈 확률도 높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면담 중에 불만은 여러 가지로 표현했지만 결국 자신의 성과를 팀장이나 임원이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았고 자기보다 낮은 성과를 올린 동료가 진급 대상으로 추천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우 내가 일했던 회사는 고과의 최종 결정 전에 미리 본인의 의견을 묻는 제도가 있다. 물론 약간의 요식 행위의 성격이 있지만 가끔은 위와 같이 재심의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결국 담당 팀장과 임원을 불러 대화를 하다 보니 두 가지의 문제점이 발견이 되었다.
첫째는 회사가 정한 바와 같이 분기별로 성과 평가를 하지 않고 연말에 한꺼번에 성과와 진급 평가를 진행하는 바람에 시간적으로 최근의 업무 성과가 좋은 친구가 후하게 평가를 받은 경향이 있었다. 담당 임원이나 인사팀에서는 분기 평가가 진행되지 않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연말에 지난 3분기를 한 번에 소급해서 진행한 것이다. 이런 경우 기억에 의한 평가가 진행됨으로 평가에도 문제가 있지만, 지난 3분기를 소급하면서도 마치 제 때에 진행한 것으로 보고하였고 담당 임원과 인사팀도 이를 묵인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문제는 해당 팀장은 팀원과의 면담 시 서로의 인식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팀원은 본인의 성과는 10 만점에 9점으로 생각하고 있고 팀장은 다르게 4점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서로 확인한 것이 아니라 서로가 자신의 마음속에만 기록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도 두 사람은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거기다 팀장은 해당 직원이 실수한 것에 대해서는 -4점으로 생각하고 해당 직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또는 열심히 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일로 생각해서 전혀 마이너스를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결국 정리하면 팀장의 평가는 성과와 실수를 합산하여 4-4=0이지만 해당 직원은 성과만 있고 실수는 없이 9-0=9으로 생각해서 서로의 인식 차이는 9가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해당 직원은 10만 점에 9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느끼는 충격과 배신감 그리고 불공정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팀장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직원은 그저 평범한 성과를 냈고 실수도 있었기 때문에 진급이나 보수 결정에 특별히 고려 사항이 없고, 단지 직원의 너무나 엉뚱한 기대가 문제라고 해당 임원에게 보고를 했다. 만약 해당 임원이 문제의식을 갖고 이를 관찰했으면 나에게 오지도 않았겠지만 임원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고민 없이 팀장의 보고만을 수용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기본적으로 서로의 인식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이다. 흔히 나는 잘 전달했는데 상대방이 잘못 듣거나 이해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본인이 인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이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생각과 자기가 원하는 것만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를 확인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가끔 대화를 녹음해서 들으면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대화하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대화중에 없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 부딪치거나 상대방과 대화하거나 전달하는 경우 항상 사람의 인식에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 상대방이 다른 반응을 보이거나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여도 대응하기가 쉽다. 물론 미리 충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최선이다. 나는 최선을 다 했으나 상대방이 당연하게 받아 드릴 거란 예단을 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