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창의성이 필요한 때가 언제일까? 나에게는 지금이 그때인 것 같다. 공부를 하면서, 직장에 다니면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그 모든 순간에 창의성이 어느 정도 필요했지만, 엄마가 되면서, 특히 코로나 시대의 엄마로서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창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엔 창의성은 막연히 직업적인 예술인들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아이를 키우면서는 창의성은 예술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아이에게 초점이 맞춰진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부모 노릇, 특히 엄마 역할은 정말이지 정답도, 딱 이거다 하는 하나의 방법도 없는 엄청난 창의성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특히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시대의 엄마에게는 말이다. 등교를 못 하는 아이와 하루 종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우리 아들이 아기일 때는 눈에 띄는 육아서라는 육아서는 다 읽었는데, 참고는 할 수 있었지만 절대적인 도움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아이와 엄마가 성격도, 상황도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이게 맞다, 딱 이대로 하면 된다 하는 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러려면 애는 왜 낳았냐?"라는 식으로 단정적으로 엄마들을 몰아붙이는 육아서를 싫어한다. 그런 조언들에 휘둘려봤기 때문이다.
아침 일기 (Morning Journal)
고맙게도 남편이 이번 광복절 연휴에 나에게 개인 휴가를 줬다. 이번 시댁 휴가에 아들이랑 둘이 다녀온 것이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혼자 조용히 책도 읽고 코로나로 지친 몸과 마음도 좀 쉴 수 있었다. 그리고 아침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게 엄마에게 필요한 창의성에 도움이 될 줄이야. (광복절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오늘로 닷새째다.)
아침 일기(morning journal)는 <타이탄의 도구들(Tools of Titans)>라는 책에서 저자인 팀 페리스가 강추한 것 중에 하나인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그냥 여과 없이 공책에 다 써넣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줄리아 카메론이 쓴 <아티스트 웨이 (The Artist's Way)>라는 책의 모닝 페이지(morning page)에서 배운 것이다.
이건 감사 일기가 아니다. 긍정적, 부정적 모든 생각과 감정을 쓰는 것인데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용도가 아니고, 심지어 나 자신이 다시 보기 위한 것도 아니다. 우리 좌뇌의 논리적, 이성적 사고를 잠시 내려놓고 창의적인 우뇌가 마음껏 생각과 느낌을 쏟아놓게 하는 것이다. 말이 되나 안 되나 고민할 필요도 없다. 자신과의 대화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덕분에 나도 <아티스트 웨이>를 사서 읽고 있는데 이 책에서 모닝 페이지만 잘 실천해도 책값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침부터 떠오르는 모든 것을 남의, 나 자신의 어떤 비판이나 판단도 없이 마음껏 쏟아놓을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나처럼 말하거나, 특히 글 쓸 때 논리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종의 '비밀일기'라서 영어로 쓰고 있는데, 자물쇠 채워놓지 않아도 필기체로 날려쓰면 아들이 몰래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1~3페이지 정도로 엄마 노릇의 어려움이나 짜증 나는 것, 좋든 나쁘든 생각나는 것들을 다 여기에 쏟아놓으면 문제가 조금 더 명확히 보이고, 생각이 맑아지는,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다.(줄리아 카메론은 매일 세 페이지씩 쓰라고 했지만 나는 일단 분량은 자유롭게 쓰고 있다.) 이건 처음엔 예술가들이 자기 안의 창의성을 끌어내는 방법이었는데, 정답이 없는 육아라는 과제를 날마다 해야 하는 엄마들에게도 정말 필요한 시간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 새벽 기상하는 사람들은 고요한 아침 시간에 하기 딱인 것 같다. 나도 아침 일기 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조금씩 기상시간을 앞당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