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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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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우진 Aug 16. 2023

공원에서

우스갯소리로 공원을 만드는 게 꿈이라며 떠벌리고 다닌다. 부끄럽지만 저의는 진심이다. 너른 부지에 정성스레 나무와 초화를 심고 포장도로를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다. 개념보다는 심상을 떠올리며 꿈꾼다. 풍경과 어우러진 이야기, 또는 평화나 지속가능성 같은 게 서린 공간이다. 잘 모르겠는가? 아직은 나도 그렇다. 시기에 따른 생각 변화로 매번 곡절을 겪는 나의 네버랜드NEVER LAND다. 해낼 수 있든 말든 꿈과 거리를 좁히는 데에 몰두해 왔다. 오랜 시간 잊지 않고 바라보자, 그게 편집자로서 태도이자 관점으로 굳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벌써 그 공원에 도착했나 보다. 


건축물과 공간, 브랜드, 그리고 사람, 더 크게는 도시까지, 이들을 해석하는 데에는 수많은 관점이 존재한다. 설계와 시공이나 브랜딩, 디자인, 비즈니스 그리고 편의 등 각자가 서 있는 위치에 맞게 이것, 저것, 또는 그것이라 지칭하며 설명한다. 그사이에 애처롭게 파고든 나는 공원에 서서 간신히 쩌어어거라고 말한다. 공원을 만드는 태도와 철학에 따라서 해설하는 편이다. 낭만에 절여져서 상업과 재산권의 본질에 딴지를 걸려는 마음은 없다. 공원론이 지닌 궁극적 가치는 그 너머의 거시적인 이야기를 건든다. 


개념에 따른 공원은 인간의 여가는 물론, 땅과 식물의 생육, 그리고 도시의 질서까지 고려한 태도가 엿보이는 공간이다. 특정 집단에 치우치지 않은 채 공생을 추구하기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접속한 모든 이는 풍경을 벗 삼아 자유로이 행동한다. 크게 갈래를 나누자면 놀이, 대화, 상념이다. 이용객이 무슨 행태를 보여주는지에 따라 매번 풍경을 달리한다. 자극적인 장식이나 화려함은 없다. 그따위 것을 고민할 시간에 뿌리내린 자리와 주변을 더 들여다보며 어우러짐을 골몰한다. 덕분에 결코 보행을 가로막는 녹지 섬으로 존립하지도 않는다. 원래도 있었던 듯이 자연스러워서 사람들이 부담 없이 쉽게 드나든다. 이 모든 개념은 한곳에서 출발한다. 당장의 발달과 열광보다는 오래오래 역할 하며 쌓여가는 게 초기의 목표다. 숏폼이나 인플루언서, 마케팅 예산과 같은 말이 먹히는 지금은 색이 바랜 단어이지만 지속가능성이 근간이다. 


실제 공원을 두고 더 자세히 알아보자. 공원론의 정수가 담긴 뉴욕 센트럴파크는 1876년에 완공되어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왔다. 금싸라기 같은 땅에 남북으로 4km를 뻗어 나가는 광활한 규모로 지어져 여전히 뉴욕의 상징으로 존재한다. 그 힘은 한 집단에 치우치지 않은 채 땅, 식물, 인간, 건물 등 도시에 있는 모든 물체의 질서를 고려하고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데에 기인한다. 조성 책임자인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는 당시,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100년 뒤에는 이만한 크기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라 말했다. 대중의 편의만을 고려한 말이 아니다. 그는 공원이 지닌 궁극적 가치를 인간의 여가 공간이나 재산권을 넘어선 활발한 관계 형성과 심리적 위안으로 바라봤다. 147년이 지난 지금, 과연 그의 판단이 옳았다. 센트럴 파크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며 여전히 완성되어 가고 있다. 공원을 단순히 풀이 자라고 길이 나 있는 통로라고 말하기에는 아쉽다. 가장 단시간에 도심에서 탈출하여 인류, 비인류와 교류하며 입체적인 위안감을 누릴 수 있는 곳, 내게는 그게 공원이다. 


이제껏 도출된 단어를 모두 정렬하면 내가 심상적으로 건설한 공원이 완성된다. 평화, 공생, 본질, 놀이, 대화, 상념, 조화, 지속 가능. 일부는 기준으로서 명확하지만 몇몇은 날카롭지 못한 단어다. 그 세공이 편집자로 행동하는 나의 역할이다.  


내 관점을 말하는 서문이 길었다. 결론은 ‘공원에서’라는 제목을 달고 내가 구태여 방문하는 좋은 곳과 것을 가장 개인적인 이유를 덧붙여 말해보려 한다. 본격적으로 안경을 치켜올리며 잘난 체하는 장이다. 주의할 점이라면 하나가 있다. 이미 심심한 단어로 가득 찬 앞 문단을 통해 느꼈겠지만, 나는 지금 뜨는 공간 다섯 곳, 사진 찍기 좋은 명소, HOT 100 같은 것은 잘 모른다. 이와 같은 정보를 원한다면 반드시 내 글을 읽지 말아줬으면 한다. 쓸 생각이 없으니 괜히 욕먹고 싶지 않다. 최선을 다해서 밋밋하고 재미없는 평화를 이야기해 본다. 공원에서 말이다. 


다들 지난 시간 동안에 공원에 왜 방문했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시간을 쌓았는지 떠올려 봐준다면 감사하겠다.

사진은 2019년 리스본, 바스쿠 다 가마 정원에서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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