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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Jul 23. 2024

일본에 대한 양가감정, 싫기도 좋기도 한 일본

나는 일본이 더 좋아졌다 (2)


한국인에게 일본은 참 묘한 감정의 나라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얼마나 아픔이 많은 역사였나. 역사적으로만 생각하면 일본은 좋아하려야 할 수 없는 나라다. 현대의 정치적으로 봐도 그렇다. 자국 우선주의의 이기적인 정치적인 행보를 보면 이웃나라 국민으로서 종종 분노를 참을 수 없기도 하다.


특히나 이러한 것들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 문화적인 부분이었다. 한 달 살기를 하면서 마주한 일본의 대다수 노인들은 그럴싸한 좋은 취미를 가지고 있거나 문화를 향유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모네 그림 전시회에서 만난 수많은 노인들이 그랬고, 벚꽃놀이나 장미공원 같은 곳에 큰 카메라를 가져와서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노인들이 그랬다. 조금만 둘러봐도 스타일리시하게 옷을 차려입은 어르신들이 종종 보였다. 작은 소도시의 재즈 페스티벌에 갔더니 70-8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한두 팀도 아니고, 여러 재즈 팀을 꾸려 우리로는 평소에 잘 구경해보지도 못할 퍼커션이니, 트럼펫이니, 콘트라베이스니 하는 악기들을 연주하고 있었다. 일본은 노인들의 경제력을 꽉 쥐고 있다더니 그 말이 현실적으로 와닿는 모습이었다. 


그런 일본의 노인들을 보며 한국의 노인들이 떠올랐다. 멀게는 내 할아버지 세대. 가깝게는 내 아버지 세대. 평생을 성장을 위해서 앞만 바라보고 여유 없이 살아온 세대. 성장이 전부였고 나라를 일으키는 것이 전부였던 세대. 놀라고 시간을 줘도 잘 못 놀고 일하는 게 가장 편하다는 세대. 그래서 놀 줄 모르고 즐길 줄 모르는 세대.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이 어색한 세대. 오로지 자식들 뒷바라지에 헌신한 세대. 적어도 내 부모님을 통해 경험한 내 윗세대는 이러하다.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일본인들을 보니 우리 부모님을 비롯한 한국의 어르신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더 샘이 나고 질투가 났다. 과거 일본인들이 빼앗아 간 38년의 시간 때문에 우리가 뒤늦게 이 고생을 한 것 같아서 말이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고 이제 우리나라도 성장만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 성장은 어느 정도 정체기에 접어들었고, 늘 따라잡기만 했던 2등 정신으로 달려왔지만 이제는 우리가 글로벌 1등인 영역이 한두 개가 아니다. '성장'의 끝자락에 왔고 이제는 '성숙'을 논하는 시기가 우리나라에도 온 것이다. 아마도 내 나이대가 노인이 되면 지금 일본 노인들의 삶과 비슷한 삶을 영유하고 있겠지.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고자 노력했던 것처럼 이제는 많은 국가들이 한국처럼 되기 위해 지금도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이게 다 뭐 하나 즐길 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왔던 우리 윗 세대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아무튼 이러한 점에서 일본에게는 여전히 얄미운 감정이 입다. '싫다'보다는 '얄밉다'가 더 알맞은 감정인 것 같다.


그러나 일본에는 여전히 배울 만한 것도, 부러운 것도 많았다. 사실 한 달 살기를 하러 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에 큰 정이 없었다. 그저 음식이 맛있고 쇼핑할 거리들이 많으며 우리보다 어느 정도 먼저 선진화된 그런 나라를 구경하는 정도의 재미였다. 그래서 그동안 일본어를 배우려고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냥 딱 이 정도의 심적 거리를 유지하면 될 정도의 나라였다. 그런데 이번 한 달 살기를 하면서 그 마음이 많이 바뀌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조금 더 깊은 관심이 생긴 것이다. 정확하게는 일본인의 삶에 대한 관심이었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제도와 시스템으로만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사람 하나하나를 보니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들은 참 순수했고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며 즐거울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일을 꽤나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고 그리고 마음도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한 달 살기를 다녀와서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일본에서 지내보니까 어때요?"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 저는 일본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요. 역사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일본은 좋아할 수 없는 나라였어요. 그런데 이번 한 달 살기를 하면서 그 마음이 조금 바뀌었어요. 역사와 정치는 그들의 과오이더라도 일본이라는 나라는 정말 살아볼 만한 괜찮은 나라였어요. 기회가 된다면 또 한 번 다른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이렇게 대답하면 많은 사람들은 예상외의 답변이라는 듯 눈이 휘둥그레지며 내 이야기를 듣고는 했다. 자, 책의 마무리에 다 온 지금,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일본이라는 나라가 여전히 무작정 싫은가. 아니면 일본의 무언가에 빠져 있는 덕후인가. 아니면 나처럼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싫기도 좋기도 한, 묘한 양가감정이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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