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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연 Jun 09. 2018

비트코인이 화폐가 될 수 없는 미술사적 이유

동전은 어디가 앞면일까?

  사실 나는 경영학도다. 내가 이렇게 소속을 밝히면 의외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아무래도 '미술사'와 '경영'이 제법 거리가 멀어보이는 주제라서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미술과 돈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던 적이 훨씬 더 많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지금도 둘이 그렇게 낯설거나 어색한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간만에 전공을 살려(?) "돈의 미술"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싶다.



동전의 앞면? 아니 머리!


  지금 당장 지갑에서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꺼내보자. 한 면에는 숫자, 한 면에는 이순신 장군의 흉상이 있다. 어디가 앞면일까?

  이 질문이 어렵다면, 좀 더 쉬운 문제를 내보겠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을 영어로 뭐라고 할까? 동전의 앞뒷면은 각각 Head와 Tail이다. 앞면은 'Front'라고 부르지 않고, '머리(Head)'라고 부른다. 그럼 이제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전의 앞면은 바로 이순신 장군의 '머리'가 있는 흉상, 그림 부분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흉상이 그려진 로마 동전


  고대 로마의 동전에는 황제의 흉상을 그려넣는 일이 많았다. 정작 돈의 가치는 딱 봐서는 잘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모르던 시대, 사람들은 아마 이 그림을 보고 진짜 동전인지 아닌지, 동전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졌는지 구별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흉상이 그려진 쪽이 앞면, 동전의 머리가 되었을 것이다. 사진 속 동전도 마찬가지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멋들어진 프로파일이 새겨진 왼쪽이 앞면, 오른쪽의 뒷면에는... 음 심지어 액면가도 적혀있지 않네. 일반적으로 인물상이 그려져 있는 쪽이 중요한 앞면으로 여겨지던 전통이 이어져서 오늘날 우리나라의 동전의 앞뒷면의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겠다.

  


화폐와 미술, 그리고 권력의 상관관계

   화폐를 발행한 주체가 강력하고 권력이 굳건할 수록 동전의 가치는 올라갔다. 중앙집권화가 잘 된 국가일 수록 돈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되고, 사람들은 물물교환보다 화폐를 사용한 거래를 선호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왜 이 화폐에 사람의 얼굴이 그려지기 시작했을까?

  자신의 지위와 얼굴을 과시하는 초상은 권력의 상징이다. 단순한 사건 설명을 위한 등장인물, 모델이 아닌 인간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초상은 미술 작품 중에서도 권력과의 연결성이 가장 큰 분야이다. 과거로 올라갈 수록 자신의 초상을 만들 수 있는 계층은 한정되어 있었는데,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의 초상이 그 대표적 예시가 될 것 같다. 그래서 한 때는 왕족, 귀족들만이 가질 수 있었고, 이후로도 초상화를 제작하기 위한 돈을 지불할 수 있는 계층인 부르주아만이 자신의 초상을 남겼다. 동양에서도 이는 크게 다르지 않아서 임금의 어진 외에도 조선시대 관료들이 관복을 입은 채 정좌한 자세의 초상들을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인의 초상은 정말 찾기 어렵다. (참고로 누드화, 미인도 등은 초상이 아니다. 이는 모델의 지위나 특성을 보여주기보다, 관람자가 그림을 더 잘 '소비'하는 것에 집중하는 형식이기 때문!) 예외라면 돈이 없어서 모델을 구하지 못한 고흐가 그림 연습을 위해 그리던 주변인들의 초상 정도...?

  그런 의미에서 돈에 얼굴을 박으려고 했던 권력자들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나 사용하는 동전에 초상을 새긴다는 것은 자신의 초상을 가장 많은 범위의 사람들에게, 가장 빠르게, 그리고 가장 자주 보여준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서구의 권력자들은 자신의 얼굴이 박힌 돈을 발행했고, 그 초상은 곧 권력의 상징이자 화폐의 공신력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동전을 그리라고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숫자가 있는 면을 그린다는 것에는 꽤 재미있는 함의가 담겨있다. 누가 이 동전을 발행했는지, 누가 돈의 발행 권력을 쥐고 있는지, 무엇이 그 권력에게 중요한 가치인지는 더 이상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그 동전이 얼마짜리 인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신분에 의한 절대 권력이 무너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이 곧 권력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이제 새로운 권력은 점차 자본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권력과 자본의 결합이라니! 어쩌면 이건 왕의 권력과 부르주아의 자본으로 분할되어 있었던 신분제 사회보다 더 큰 절대 권력일지도 모르겠다.



비트코인은 왜 화폐가 될 수 없는가


  그 가치에 대해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가상화폐는 분명 새로운 투자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최근에는 법적으로도 가상화폐의 자산 가치를 인정한 판례도 있었는데, 그럼 가상화폐는 정말 그 이름대로 화폐가 될 수 있을까?
   화폐에는 머리, 즉 권력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머리는 절대적, 통합적 주체이다. 전통적 화폐에는 발행 주체가 있다. 하지만 가상화폐에는 이게 없다. 가상화폐가 기반하고 있는 블록체인의 특징은 수평적 정보 공유 구조이다. 한 마디로 '머리'가 없고, 전부 '꼬리'들이다. 가상화폐에 없는 것은 단순한 머리 그림이 아니라 권력이다. 요즘 사람들이 머리보다 숫자가 담긴 꼬리를 보고 있어서 자주 잊고 있는 부분인데, 그래도 돈은 발행 주체 없이는 한낱 금속 쪼가리, 종이 쪼가리에 불가할 뿐이다.

  이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는 현상 외에도 공신력 있는 주체의 인정이 필요하다. 어쩔 수 없다. 현실의 권력 구조가 완전히 평등하지 못해서 그렇다. 그런데 현재 화폐의 머리를 담당하고 있는 국가들은 가상화폐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한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이오스 등등 온갖 가상화폐들은 국가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가상화폐들을 인정한다는 건 말하자면 머리를 없애는 건데, 머리의 보유자가 그걸 하고 싶지 않아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예로부터 돈은 황제 권력의 표현이자 과시의 수단이었다. 게다가 현대에 들어서 화폐 발행은 단순한 과시를 넘어서서 곧 권력 그 자체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가상화폐는 '머리'를 남길 수 없는 건 물론이고 원하는 만큼 찍어내거나 발행을 중지할 수도 없다. 채굴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누구나 발행할 수 있는 화폐라니! 누구나 머리가 될 수 있다는 건 사실 누구도 머리가 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돈의 미술사에 따르면, 화폐는 꼭 머리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꼬리' 뿐인 비트코인은 권력을 결여하고 있어서 공식적인 화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가상화폐의 미래


  한 때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적으로 가상화폐 투자(또는 투기?) 붐이 일었었다. 지금은 좀 잠잠해졌지만, 요즘도 주변에서 '존버'하고 있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간간히 듣는 걸 보면 아직도 꽤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인 것 같긴 하다. 누군가는 가상화폐가 한낱 거품이고 과대평가 되었다고 말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가상화폐가 곧 미래이고 지금은 굴곡이 있긴하지만 앞으로도 창창히 성장할 수 있는 신기술의 대표 주자라고 말한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가상화폐가 현재 중요한 변곡점에 놓여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보인다.

  이 글의 제목엔 비트코인이 화폐가 될 수 없다고 땅땅 적어놓긴 했지만, 사실 가능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가 공식 통화가 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첫째, '머리'를 만든다. 둘째, 가상화폐가 공식적인 화폐로 사용되는 새로운 공동체를 창시한다. 블록체인의 특징이 수평적 구조, 이른바 '머리가 없다'는 건데, 첫 번째 선택지는 사실상 가상화폐의 고유한 특장점을 포기하는 것이라서 얼마나 의미 있는 선택지인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두 번째 선택지는 좀 더 현실적이다. 미술'사(史)'적 이유가 문제가 된다면 새로운 역사를 쓰면 되지 않겠는가. 새로운 공동체(아마 높은 확률로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탈국가적 조직이지 않을까)를 만든다면, 기존 국가들의 지배 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화폐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 이게 어떻게 더 현실적인 선택지냐고? 음, 나는 기술적인 문제와는 담을 쌓고 산 천상 문과생이라서 이걸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인터넷이 처음 나타났을 때에도 다들 미친 소리라고 했다니까 뭐... 이미 '다국적 기업'이라는 용어가 너무나도 익숙해진 시대인데, 한 10년 쯤 후에는 탈국가적 조직이 자연스럽게 인정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철이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역시 지금이라도 가상화폐에 투자해야 되는 건가 싶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누가 알겠는가, 10년 존버하면 가상화폐가 새로운 역사를 써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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