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 넘치고 친절한 손님들이 대부분이지만 어딜 가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며칠 전 처음 보는 아랍인 아저씨가 꽤 불쾌한 태도로 메뉴를 꼬치꼬치 캐물어봤다. 보통 이럴 때는 실제 주문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나도 스트레스받지 않고 그 사람이랑 비슷한 말투로 가볍게 응대했다. 웅아, 스트레스받지 말고, 예의 없는 사람들한테는 비슷한 말투로 이렇게 대해주면 돼.라고 막내에게 여유 있게 코칭까지 해 주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트집을 계속 잡았다.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짜증도 내고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분명했다. 아니 사람이 하는 말을 좀 들으라고요-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대답해 주다가 급기야 나는 말했다. (SK한테 배운 말투로-)
"그래서 이거 주문하실 거예요? 안 하실 거예요?"
그랬더니 아저씨가 주문한단다. 안 먹고 그냥 갈 줄 알았는데 의외네.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닭강정 한 그릇 신속하게 만들어서 음료수랑 내줬다.
잠시 후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아저씨가 오더니 웅이한테 자기 자리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아니, 할 말이 있으면 온 김에 말하면 되지 왜 또 사람을 오라마라야...
불려 갔던 웅이는 잠시 후 당황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누나, 저 아저씨가 막 밥을 뒤적거리면서 이게 완성된 요리가 맞냐면서 자꾸 화를 내요. 소스가 어쩌고 하면서요..."
오냐. 나도 SK한테 배운 기술을 오늘 제대로 써먹어봐야겠다. (프랑스생활 20년 차 SK는 이런 진상이 나타나면 오히려 반가워한다ㅋㅋ) 나는 이번에 동생 웅이한테 시범(?)을 보여주기 위해 SK표정을 빙의하며 당차게 진상 테이블로 걸어갔다.
첫마디가 중요하지.
스스로 생각해도 꽤 잘한 것 같다.
"뭘 원해요?"
강한 내 말투가 먹혔던 걸까. 좀 전에 웅이한테는 막 대했겠지만 내 앞에서는 조금 주춤하는 게 느껴진다. 하긴 이러니까 카운터까지 와서 나한테는 말도 못 하고 착한 웅이만 불러갔겠지.
"이게 소스가 부족하잖아요..."
"그럼 소스를 더 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아저씨가 또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더 들을 것도 없길래 "소스 원해요? 안 원해요?"라고 강하게 물으며 말을 끊었다. 아저씨는 순순히 "원해요."라고 대답했다.
"포크도 갖다 드려요?"
내 질문에 아저씨가 젓가락 잘 쓰고 있다고 말했다.
"젓가락 쓸 줄 아는 거 확실해요? 지금 밥 위에다 거꾸로 꽂아놨잖아요. 그리고 이건 한 손에 한 개씩 들고 쓰는 게 아니라 한 손에 두 개를 같이 들고 사용하는 거라고요ㅋㅋ"
내가 좀 웃으면서도 말했더니 아저씨가 "오~ 몰랐어요." 하면서 따라 웃더니 밥 위에 향처럼 거꾸로 꽂혀있던 젓가락을 양손으로 뽑아 들었다.
잠시 후 내가 소스를 좀 갖다 줬을 때 아저씨가 나한테 자기 휴대폰을 건네줬다.
"나 먹는 거 사진 찍어줘요. 뒤에 배경 나오게."
부탁하는 문장에서 예의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새침하게 한숨을 짧게 쉰 후 전화기를 건네받으며 이렇게 말했다.
"De rien" (상대가 고맙다고 할 때의 대답이다. 천만에요- 이런 의미.)
그랬더니 아저씨가 뒤늦게 고맙다고 하더니 또 따발총처럼 요구사항을 쏟아낸다.
"요기 가게 이름이 배경에 나오게 찍어줘요. 그리고 지금 밥 먹는 것도 같이 보이게. 그리고 또 이쪽에서..."
이 아저씨 뭐지ㅋㅋㅋ
나는 또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하면서 엄청 열심히 찍어줬다. 내가 또 사진은 대충 찍지 않는 사람이라... 이쪽저쪽 왔다 갔다 하면서 신경 써서 찍어주었고 아저씨는 또 이리저리 포즈를 바꾸면서 이렇게 저렇게 웃고 젓가락도 들고 팔도 높이 들고 난리가 났다. ㅋㅋㅋ
저쪽에서 긴장하고 있던 웅이는 갑자기 내가 하나 둘 셋 하면서 사진을 찍는 소리를 듣고 혼자 웃었다고 한다. 응 나도 웃었어.
"자, 사진 엄청 많이 찍었어요. 그중에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를 수 있게요."
아저씨는 방금 전까지 짜증 냈던 건 까맣게 잊고 환하게 웃으며 고맙단다.
잠시 후 아저씨 테이블 앞으로 다시 지나갈 때 내가 "맛있어요?"라고 물었더니 양쪽 엄지를 치켜세우면서 "진짜 맛있어요!!" 란다.
참내 밉상인데 안 밉네ㅋㅋㅋ
웃기다고 같이 웃던 웅이한테 한 번 더 오늘의 교훈을 강조했다.
여긴 한국이 아니야. 상대가 예의를 차리지 않으면 굳이 나 혼자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어. 그냥 똑같이 대하면 돼. 그리고 저런 말투 대부분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야. 오히려 친근하게(?) 대해주면 더 좋아함ㅋㅋㅋ 저 아저씨처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