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이 사라진 설 연휴, TV
내가 어렸을 땐 설 연휴가 너무나 기다려졌다. 왜냐하면 하루 종일 TV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만 해도 TV는 정오까지 방송을 하고 컬러바만 송출하다가 오후 4시쯤이 되면 다시 방송을 시작했다. 하루 종일 쏟아낼 콘텐츠가 없었다. 채널도 KBS, MBC, EBS 뿐이었고 SBS는 추후에 생겼다. 지금은 채널 수를 셀 수도 없다.
설 연휴에는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쇼 가리지 않고 편성되었다. 다시 보기 같은 첨단(?) 기술이 없었기에 신문을 펼쳐 놓고 꼭 봐야 하는 프로그램들을 체크하는 것이 설렘 포인트였다. kbs와 mbc에서 동시에 재미있는 것이 방송되면 난감해졌고, 누나와 가위바위보를 해야만 했다. 그때 그 신문지 냄새가 아련하다.
2020 원더키디 보다 더 시간이 지난 지금, 설 연휴는 그저 일요일의 연속인 것 같은 빨간 날이 되었다. 설과 추석에 만날 수 있었던 성룡 형님, 이연걸 형님, 브루스 윌리스 형님. 유명 가수들이 총 출동해서 게임과 노래를 펼쳤던 올스타 쇼는 설 연휴의 아이콘이었는데. 이젠 그 마저도 사라졌다.
뻔한 것 마저도 하지 않는 설레지 않는 설이 된 것이다.
정규 프로그램을 맡은 PD라면 프로그램의 구성과 내용을 명절에 맞춰서 이른바 내용 특집을 제작한다. 이를테면 1박 2일 멤버들이 세뱃돈을 많이 모으는 게임을 한다든지, 살림남 가족들이 명절맞이 음식을 마련한다든지, 불후의 명곡이 인기 있는 트로트 스타들만 모아서 안방 공략에 나서는 것이다.
나는 예능센터 산하에 대형이벤트사업단이라고 하는 특집 혹은 대형 쇼를 담당하는 부서에 있다. 이 부서에서는 정규 프로그램이 아니라 계기성, 이벤트성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그리고 이번에 설특집 프로그램 기획, 제작이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케데헌에서 힌트를 찾다
2025년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해였다. 사실 케이팝은 이전부터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BTS로 그 정점을 찍고 현재 블랙핑크, 스트레이 키즈, 세븐틴 등 대형 아이돌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혹자들은 마이너 한 서브 컬처의 한 부분이라느니, 언제고 시들어버릴 일시적인 유행이라느니 하는 폄하도 했다.
그런데 케데헌으로 인해 이런 폄훼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냥 전 세계적인 열풍과 현상이다. 케이팝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친숙하고 쉽게 제시하니 인종, 문화를 떠나 전 세계인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몇몇 마니아층만 알던 음악이 아니라 이젠 누구나 따라 부르고 어디서나 흘러나오는 음악이 된 것이다.
다들 국뽕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케데헌 주제가에 섞여있는 한국어 문장을 외국인들이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케데헌의 주목할 점은 우리 민족 전통문화를 K-POP의 뿌리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음악으로 악을 물리치고 공동체를 지켜내며 하나가 되는 경험을 과거 전통에서 찾아낸 것이다. 혼문이라는 개념으로 현재 전 세계 곳곳에서 강력하게 결집되는 K-POP 팬덤을 아주 정통성 있게 그려냈다.
전통문화와 K-POP의 접목은 과거 K-POP 아이돌들이 때때로 시도했던 것들이다. 2017년부터 빅스, BTS, 스트레이 키즈의 한복 무대의상과 음악에 전통악기나 멜로디를 넣는 것은 과거 선배 가수들도 시도했던 것들이다.
케데헌을 만든 매기강 감독도 이들의 작업물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인터뷰에서도 그런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상상력으로 우리 전통과 K-POP의 결합. 그 세계관을 완성했다.
나는 또 여기서 영감을 받았다. 전통과 K-POP의 결합.
설이 되면 설빔(새해를 맞아 가장 좋은 옷을 입는 것)을 입고 세배를 다니며 가족과 이웃, 친척들에게 인사를 한다. 새해를 맞은 우리 한민족의 풍습이다. 이런 전통을 세계에 보다 쉽게 알리기 위해서 설빔을 Soul Beam이라고 영문 제목을 지었다.
영혼의 빛이라는 뜻인데. 언뜻 두 단어의 연관성은 없어 보인다.
Soul Beam은 외국인에게 설빔을 쉽게 발음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프로그램 구성상 필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추후 설명하기로 하고...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