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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몫은 누구인가

뮤지컬 <사형수는 울었다>

by 포트너스

1977년 4월, 활활 타오르는 판자촌.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22세 박흥숙은 무등산 덕산골 무허가촌에서 철거반원 4명을 둔기로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3년 뒤, 그는 1980년 12월 24일에 살인죄에 의한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세상이 그를 잊어갈 무렵, 2020년 11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무등산 타잔 박흥숙'이라는 제목의 콘텐츠가 방영되면서 그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다시금 주목받게 됩니다.


70년대 박정희 군부정권 시절, 전 국민의 1/3이 판자촌에 살아가는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고 있었습니다. 박정희 정부의 도시 개발 정책에서 빈민촌은 철거되어야 할 눈엣가시였죠. 특히 대통령의 헬기 순방경로에 판자촌이 걸려있으면, 당장 철거당하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박흥숙의 가족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무등산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철거대상으로 통보받았지만, 당장 오갈 데 없는 신세였죠. 1977년 4월 20일 광주시 동구청 소속의 건설반장인 오종환 반장과 동구청 소속 일용잡급직의 철거반원 7명은 판자촌에 불을 지르며 남아있는 사람들을 강제로 내쫓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집이 불타는 모습을 보면서도 철거반원들도 상부 명령에 따르는 사람이라고 두둔하던 박흥숙은 병에 걸린 노부부의 집을 태우는 무자비한 행동에 분노해, 산짐승을 쫓아내기 위해 만든 딱총으로 철거반장을 향해 위협사격을 가했습니다. 박흥숙은 철거반장을 위협해 철거반원을 불러와 포박한 뒤, 이들을 미끼로 광주시장에게 항의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여동생이 묶은 포박은 헐거웠고, 철거반원들이 다시 대항하자 박흥숙은 망치로 공격해 현장에서 2명이 숨지고, 나머지는 치료를 받다가 2명이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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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현장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하고, 박흥숙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놀라 도망쳤다가 추후 자수했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와 동생들을 보살피던 젊은 청년이 한순간에 살인자가 되어버린 사건. 씻을 수 없는 중범죄를 범한 그에게 재판정은 사형을 판결하고, 사건 발생 3년 뒤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당시 언론은 그를 흉악 범죄자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광주시청의 무리한 철거 집행이 가려져야 했죠. 무당의 잡일을 도우며 생계를 유지했던 어머니를 '무등산에서 거대한 굿판을 벌여 광주시내의 돈을 긁어가는 무당'이라고 보도했고, 산짐승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총알이 나가지 않고 소리만 나는 딱총을 사회에 불만을 품은 박흥숙이 만든 사제 총기라고 부풀렸습니다. 살인 사건의 원인을 빈민촌 철거가 아닌 흉악범죄자에 중점을 두어야 광주시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수가 빈민 생활을 했던 시대에서 대중의 공감을 차단해야만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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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국가의 품에서 보호받지 못했던 시절. 지금은 어떨까요. 권력에 눈이 멀어 사회 시스템을 마비시킨 계엄령을 발동시킨 전직 대통령. 하나라도 빵을 더 만들기 위해 2조 2교대로 안전장치 없이 근무하다 사망한 근로자. 모두 최근에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관심 있게 바라보아야 비극적인 일들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획 의도로 '무등산 타잔 박흥숙' 이야기를 모티브하여 만든 창작 뮤지컬 <사형수는 울었다>가 작년 2024년 '스타스테이지' 초연 이후, 4호선 길음역 인근 '꿈빛극장'에서 재연합니다.


가난과 국가의 역할, 인간의 기본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이번 공연은 박흥숙 사건의 판자촌 철거 당일을 묘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뮤지컬에서 박흥숙 역을 한 주인공 박현석의 최후 진술을 남기며 글을 마칩니다.


먼저, 저의 지난날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저의 울분 때문에 안타깝게 희생되어 버린 그분들의 영령을 위로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저의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
미친 정신병자의 개소리라 해도 좋고, 빗나간 영웅심의 궤변이라 해도 좋습니다. 하오나 다음번에 이 같은 불상사가 되풀이되지 않는다면 죽어가는 몸으로서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방 한 칸 의지할 데가 없어서 남의 집 변소를 들여다보지 않고, 남의 집 처마밑을 들여다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지금 말씀드리는 저의 고충 조금이라도 이해하시기 어려울 겁니다. 저는 돼지 움막보다도 못한 보잘것없는 집이었지만 짓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세상에 돈 많고 부유한 사람들만이 이 나라의 국민이고, 죄 없이 가난에 떨어야 하는 사람들은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니란 말입니까? 허물어진 담장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그들을 타오르는 불길 속에 발을 동동 구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불쌍하지도 가엾지도 않단 말입니까? 저는 그들도 국민이고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부디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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