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능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에밀리 와프닉, 「모든 것이 되는 법」을 읽고

by 페르소나

고등학교 때 반 친구들끼리 했던 롤링페이퍼에 지금 고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라고 답했다. 어떤 친구는 자기는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고민이라 내가 부럽다고 했다. 누군가는 하고 싶은 게 많다는 건 결국 하고 싶은 게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문과인지 이과인지를 선택해야 했던 고등학교 2학년. 정말 오랜 고민 끝에 문과를 선택했다. 생물과 화학을 좋아했지만, 심지어 잘 하지도 못했던 수학조차 좋아했지만, 들쑥날쑥한 수학성적이 영원히 내 발목을 잡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 결국 문과를 선택한 것이다. 도대체 왜 문과 이과로 나눠 배워야 하는지 학교 제도에 남모르게 반항심을 갖기도 했지만 나는 학교 제도에 잘 순응하는 착한 학생 1에 불과했다.


고민은 해결되지 못한 채 내 삶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문과생이었던 나는 예술이론을 전공하여 예술기획사에서 일을 하다 늦은 나이에 개발자가 되었다. 여가시간엔 글을 쓰며 언젠가 책을 내어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도 한다. 무대에 서는 배우가 되고 싶기도 하고, 마음의 상처가 깊은 사람들을 상담해 주고 싶기도 하다. 한 번 뿐인 인생 한 가지 일만 하며 살기엔 너무 재미없는 거 아닌가, 생각하면서.


나와 비슷한 지구인이 있을 거라고 늘 생각하곤 한다. 지구 어딘가에는 분명 나와 같은 종족이 있을 거라고. 가끔 눈에 띄기도 하는데 그럴 땐 나의 모든 감각과 신경이 그 사람에게로 향하는 기분이 든다.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의 방향에 대한 응원과 격려를 받고 싶은 마음으로 그들이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듣는다.


어떤 일에 능숙해 지면 새롭고 흥미로운 다른 분야에 관심이 가고 결국 그분야로 옮겨가는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저자. 관심사가 다양하고 특유의 열정으로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그는 확실한 다능인이다. 그는 책에서 다능인 선배로서 자신과 같은 종족에게 응원과 격려는 물론 다능인으로 살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까지 알려준다. 나는 저자와 같이 관심사도 다양하고 호기심이 많지만 어느 한 분야라도 ‘완전히 몰두’하거나, ‘아주 열정적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완성해 본 경험이 없는 게으른 지구인이다. 어떤 일에 능숙해 지기까지의 과정을 잘 견디지 못하는 지구인 중 한 명이다.


능숙해 지기위해선 일정 수준의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어쩌면 머릿속에 돌아다니는 그 하고 싶은 일들은 결국, 연습과 훈련의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는 나의 나약함이 만들어낸 도피처 같은 걸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하고 싶은 일들을 나열하며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 뿐일지도 모른다.


다능인으로 나아가는 길도 그리 만만치 않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소심하게 외쳐본다. "다능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어쩌겠나. 그렇게 살고 싶으면 살아야지. 물론 남들보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할지도 모르고 이 분야 저 분야를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산만해 보인다며 남들이 손가락짓 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애초에 나와 같은 종족들은 적은 돈으로도 삶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산만함이 잠재력이라 믿으며 남들이 정한 기준에 맞춰 살지 않으려는 종족들이다. 그러니 다능인으로 살고자 하는 나에게 필요한 건 오늘의 사소한 힘듦을 이겨낼 수 있는 근력 뿐. 나와 비슷한 많은 사람이 다능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말고, 남들이 정한 기준에 맞춰 살기 위해 애쓰지 말고, 부디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는 용기를 내기를 바라본다. 모든 다능인들에게 진심의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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