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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Jun 16. 2023

외부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한 똘이

자폐스펙트럼 아이가 길에서 개미를 발견했어요!

똘이에겐 등산이 매우 좋은 치료이다. 다양한 자극을 느낄 수 있고 손발을 골고루 쓸 수 있는 데다, 자기 조절력도 기를 수 있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똘이에겐 평지보다 울퉁불퉁한 돌길이나 흙길이 좋고, 아무것도 없는 운동장보단 풀, 꽃, 곤충 등 다양한 자극들이 있는 장소가, 차 소리와 사람소리가 가득한 거리보단 정적 속에서 가끔씩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들리는 장소가 좋다. 모든 아이에게 다 그렇겠지만, 자페스펙트럼을 가진 아이에겐 더더욱 그렇다.




(‘자폐(自闭)’는 스스로 자에 닿을 폐, 말 그대로 스스로를 가둔다는 말이다. 최근 들어, 이 단어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가져올 낙인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공론화되고 있다. 아마 언젠가는 ‘자폐’라는 진단명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게 될 날도 올 것이다.)




똘이는 한 곳에만 몰두하여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 ‘자폐’적 성향과 외부자극에 쉽게 집중이 흐트러지고 산만해져 때때로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adhd의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런 똘이에게 등산은 최고의 운동이다.




숲은 아이에게 과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자극을 준다. 청각적 자극이 있으나 시끄럽지 않고, 시각적 자극이 있으나 화려하거나 번쩍이지 않으며, 촉각적 자극이 있으나 부담스럽지 않다. 적당한 소리와 정적, 평화로운 풍경, 싱그러운 자연의 냄새, 조용히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있는 숲은, 조그만 자극에도 쉽게 산만해지고 흥분하는 똘이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눈총을 받지 않고 비교적 평화롭게 놀 수 있는 곳이다. 사람 많은 백화점이나 과한 조명, 시끄러운 음악으로 채워진 번화가보다 훨씬 무해하면서도 안전한 곳이다.



발을 얼마큼 내밀어야 내가 밟고 싶은 돌에 닿을지를 생각하는 것, 어떤 돌을 밟아야 몸이 흔들리지 않을지를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발을 뻗는 것, 미끄러운 낙엽을 밟거나 모래가 있는 내리막을 걸을 때도 넘어지지 않기 위해 몸의 균형을 잡는 것. 이 모든 게 전정감각 발달이 느린 똘이에게 너무나 좋은 훈련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부부는 자주 똘이를 숲에 데려갔다. 주변을 요리조리 둘러보고 “이건 무슨 풀이야? 이건 무슨 곤충이야? 이거 집에서 키워도 돼?”하며 끊임없이 재잘대는 첫째와 달리, 똘이는 늘 땅만 보고 걸었다. 이것이 하나의 놀이가 아니라 해결해야 할 과업인 것처럼 묵묵하게, 그 어떤 것도 궁금해하지 않고 그 어떤 풍경에도, 생명체에도 관심 갖지 않고 걷기만 했다. 나비를 잡으려고 잠자리채를 들고 뛰어다니는 아이, 솔방울이나 도토리를 줍는 아이, 풀 숲의 곤충이나 개미를 관찰하는 아이들 틈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땅만 보고 걷는 똘이를 보며 나는 마음으로 많이 울었다.




‘똘이야, 너에겐 이 숲이 보이지 않니? 나뭇가지 사이로 네 이마에 스미는 햇살과 네 볼을 간질며 얼굴의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느껴지지 않니? 갓 알에서 깨어난 올챙이의 귀여운 움직임과 꽃사이를 춤추듯 유영하는 나비의 날갯짓이 보이지 않니? 긴 시간 번데기에서 숨죽이다 비로소 세상에 나온 매미의 힘찬 울음이 들리지 않니?’




차라리 힘들다고 투덜거렸더라면 업어달라고 조르기라도 했더라면 ‘우리 똘이가 힘들구나. 정말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힘내자.’라고 말하며 꼭 안아주었을 텐데, 똘이는 선생님이 내준 재미없는 과제를 해내듯 언제나 땅만 보고 걸었다.




그래도 ‘안 가겠다고 떼쓰지 않는 게 어디야, 균형이 무너지지 않고 걷는 게 어디야, 조용한 숲에서 소리 지르거나 눕지 않는 게 어디야.’하고 위안하며 똘이를 데리고 다녔던 시간이 어언 2년이 흘렀다.




얼마 전부터 똘이는 아주 조금씩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똘이가 수십 번씩 갔던 그 숲에서 많고 많은 개미 중 한 마리를 ‘드디어’ 찾아내었을 때 우리 부부는 얼마나 기뻐했던가.



첫째가 “엄마, 여기 개미가 많아!”라고 말하자 똘이는 “개미는 어디 있어?”라고 특유의 단조로운 음으로 형에게 물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똘이는 다른 사람끼리의 대화에 끼어드는 일이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물론 대화의 맥락과 상관없이 자기 말만 하는 경우는 많다.) 타인이 자신에게 걸어오는 말과 주변의 소음을 잘 구분하지도 못했던 똘이가 자기한테 하는 말이 아닌 타인끼리의 말을 켓치 해서 그것과 같은 주제로 질문을 던진 것이다!



“OO야, 똘이가 물어보잖아. 얼른 대답해 줘.”

“똘이야, 개미 여기 있잖아.”

똘이의 병명은 모르지만, 똘이의 성향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첫째는, 얼른 똘이에게 대꾸해 주었다.

“엄마, 개미 잡아도 돼요?” 똘이는 나에게 물었다.



똘이야, 네 눈에 드디어 개미가 들어왔구나. 정말 잘했어. 정말 기특하구나.



“그럼, 그럼. 되지. 대신에 세게 잡으면 절대 안 돼. 세게 잡으면 개미가 아주 아프게 되거나 죽게 되거든.”

“그래? 개미 아파?”

“똘이가 세게 잡으면 아파.”

“똘이는 세게 잡으면 안 돼?”

“그래 똘이야, 살살 잡아 봐.”



똘이는 한참 걸려 개미를 잡은 뒤 자기 손에 올려놓았다.

“엄마 보세요!

“우와, 우리 똘이가 개미 잡았네. 정말 잘했다. 손에 느낌이 어때?”

“어? 개미 떨어졌네?”

“개미가 똘이가 잡아갈까 봐 무서워서 도망갔나 봐. 개미가 집에 갈 수 있게 인사해 주자. 개미야, 안녕.”

“개미 안녕.”



이는 달아나는 개미를 두고 쿨하고 등을 돌렸다.



“여보, 똘이 간다. 얼른 따라가”

“그래.”



그 순간 눈이 마주친 우리 부부는 서로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하다는 걸 깨달았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리 부부가 이 순간을 얼마나 놀라워하고 또 기뻐하고 있는지.



좁은 등산로에서 우리 부부는 앞 뒤로 살며시 손을 잡았다. 남편은 내 손을 꾹 꾹 두 번 힘주어 잡았다가 놓았다.

‘우리 똘이가 드디어 숲에서 개미를 발견했어. 앞으로 더, 더 많이 데리고 다니자.’

‘그래, 그러자. 우리 남편 정말로 고생 많았어.’

‘자기가 더 고생 많지, 늘 고마워.’



앞서가는 남편을 먼저 스치고 간 바람이 뒤 따라오는 나에게 남편의 마음을 내 귓속에 불어넣어 주었다. 내 마음도 아마 전해졌을 것이다. 똘이는 다시 평소처럼 땅만 보고 걷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끊임없이 똘이에게 말을 걸었다.



“똘이야 저기 좀 봐, 나무가 동그랗고 기다랗지? 저건 대나무라고 해.”

“똘이야, 까치가 깍 깍 하고 우는 소리 들려? 저기 봐. 나무 위에 앉아 있잖아.”




똘이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지만 나는 안다. 똘이는 조금씩 귀를 열고 있다. 눈을 뜨고 있다. 아주 조금씩 시선을 돌리고 있다.


아무리 애타게 외쳐도 내 언어는 똘이에게 닿지 못하고 메아리처럼 허공에만 흩어지던 시절은 지났다. 그 시절을 견뎌낸 나에게, 그런 나를 단단히 받쳐준 남편에게, 대답 없는 똘이에게 무수히 말을 걸어준 첫째에게, 그 시절을 뚜벅뚜벅 걸어 비로소 지나온 똘이에게 정말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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