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칙폭폭, 헤호(Heho)까지 기차여행

깔로(Kalaw), 헤호(Heho), 버마(미얀마Myanmar)

by 엄용선
깔로(Kalaw), 헤호(Heho), 버마(미얀마Myanmar) _ Ⓒ엄용선



깔로의 마을을 걷는 길, 지척으로 기차역이 보인다. 마을도 작지만 그보다 더 작은 깔로역은 우리네 시골 간이역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간밤의 서늘함은 어둠과 함께 자취를 감추고 밝은 햇살은 다행히 따뜻한 온기를 전해오니 오늘은 인근 헤호(Heho)까지 기차여행을 하기로 한다. 간헐적으로 지나는 열차가 순간의 굉음을 뿜어 낼 뿐, 아직 때가 아닌지라 제법 한산한 역사는 적막감마저 감돈다. 티켓을 발권하러 들은 사무실에는 초로의 사내가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을 무료하게 달래고 있었는데, 나를 향한 다소 과장된 환대는 어찌할 바 모르는 황송함이다.


색색이 화려한 플라스틱 의자를 앞에 두고 낡은 나무의자에 엉덩일 붙인다. 겹겹이 쌓인 페인트 자국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통으로 까지기 일쑨데 표면을 더듬자 손끝으로 만져지는 까칠함이 찌릿하다. 목마른 목이 탄다. 톡 튀어나온 광대로 따나카(thanakha)를 바른 아낙이 다가와 생수 한 통을 건네니 꼬깃한 잔돈의 찰진 주름을 펴는 것은 오롯이 생수를 받아 든 이의 몫이다.

그곳의 간이매점에는 깡마른 할머니 한 분이 바지런한 손놀림을 이어간다. 묵직한 비닐 천막을 돌돌 말고, 주렁주렁 매달린 과자들은 제법 풍성하다. 헤호를 향하는 기차는 매일 아침 11시 30분에 이곳 깔로 역사를 출발한다. 오후 2시경 헤로를 도착할 예정이라니 여정은 약 2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돌아오는 기차편이 따로 없는지라 헤호에서는 버스를 타야 한다는데 구체적인 방법은 그곳을 가면 자연히 알게 되리라.


출발 시각이 임박하자 하나 둘 모여드는 사람들로 어느새 역내도 제법 분주하다. ‘빠앙~’ 경적 소리가 가까워 오면 칙칙폭폭 기차가 철로로 접어든다. 가까스로 멈춘 차체는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품고 불안한 덜컹거림을 지속한다. 열린 창문으로 고개만 빼꼼한 사람들, 초점을 알 수 없는 무심한 시선들이 창밖으로 던져진다.

만남과 이별이 공존하는 역사, 그곳에서 사람들은 기쁨과 슬픔을 나누면서 아이들은 뛰어놀고 개들은 킁킁댄다. 그리고 상인들은 어쨌든 밥벌이에 여념 없는 모습이니 틈새를 파고드는 소란함은 깔로 또한 매한가지인 풍경이다.




헤호까지의 여정은 눈이 부셨다. 기차는 느리게 움직이고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들은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아름다움이다. 끝없이 펼쳐진 너른 평원, 그곳을 덧입은 알록달록 색채들 감탄을 자아낸다. 풍경을 가르는 길 위에서 덜컹이는 리듬에 몸을 맡긴다. 그러자 이리저리 차이는 흔들림은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두둥실, 간간히 멈춰서는 역사의 번잡함에 2시간 30분이 어찌 지났는지 모를 파노라마의 연속에서 기차는 어느새 헤호로 접어든다. 깔로만큼 작고 소박한 풍경이다.




헤호의 시골길을 걷는다. 작은 황톳길, 소는 누워 낮잠을 자고 닭들은 총총총 발걸음이 바쁘다. 동네 아이들은 삼삼오오 전쟁놀이에 빠져있는데, 무기라곤 길바닥의 돌멩이가 전분 지라 제 몸 보호해줄 방호벽 뒤에 숨어 절호의 찬스를 엿본다. 외국인이 좀처럼 출몰하지 않는 이곳에서 마을 사람들과 나는 서로의 구경꾼이 되어 적나라한 눈길을 주고받는다. 그들의 멀뚱한 표정에 '밍글라바' 약효는 신통하니, 금세 웃는 표정에 사이의 벽을 허문다.


‘밥 먹었어요?’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청년은 한국과 인연이 깊다. 대전 등지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그는 약 6년을 한국에서 지냈다고 한다. 때문에 제 집 앞을 지나는 한국인을 그냥 보내 줄 수가 없나 보다. 거의 잡아끌리 듯 초대된 내가 어쩌지도 못하는 환대 속에 있다. 그가 내온 음료수를 멀뚱히 받아 들고, 미처 첫 모금을 넘기지도 못한 채 눈알만 굴려댄다. 작은 공간, 단출한 살림살이, 벽에 걸린 가족사진은 이집의 식구를 나타내니 필히 대가족이 분명하다. 앞치마를 두른 늙은 노모가 방긋 웃는 인사를 건네 온다. 이어서 청년의 형과 누나들이 등장했다. 어설픈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 오는 그들은 청년보다 앞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미얀마를 여행하면서 한국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현지인을 만날 때가 종종 있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이 한국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갖고 있는지 몰라 조금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한국에서 물론 좋았던 기억, 나빴던 기억 다 있어요. 하지만 저는 되도록 좋았던 것만 기억하려고 해요.”


한국 사람이라니 무조건 반겨주는 그의 허물없음이 해피 바이러스가 되어 어느새 같이 조잘대고 있다지만, 이면의 죄스러움은 어쩔 수 없는 불편함으로 존재한다.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 임박했다. 돌아갈 땐 버스를 타라 했으니 무작정 흙길을 따라 걷는다. 터미널이나 정류장이 딱히 없는 이곳에서 그 길을 걷다 보면 그 끝에 큰길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깔로를 향하는 버스를 잡아타면 된다고 했다. 특별한 표식이 없는 버스는 대게 봉고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대게 빈자리는 고사하고 차 지붕까지 승객들로 빼곡한 형국이다. 그래도 타겠다니 사람들은 서로의 엉덩이를 좁혀 기어이 나를 위한 한 자릴 마련해 준다.


버스는 약 한 시간을 달려 깔로에 도착했다. 예정보다 늦어진 귀가에 저물어가는 해는 어슴푸레 기운을 몰아오고, 피부로 닿는 공기는 벌써부터 서늘하다. 내일은 자전거를 빌려 깔로 인근을 좀 돌아볼 생각이다. 다음날 인레를 향하는 트레킹을 생각하면 무리는 금물이기에 슬슬 미얀마의 속도로 다니련다. 숙소를 오는 입구 적당한 가격의 마사지샵도 봐 둔 참이다. 오늘은 그만 방으로 돌아가 따뜻한 차 한 잔에 몸을 좀 녹여야겠다. 칙칙폭폭 깔로의 하루가 저문다.



깔로(Kalaw), 헤호(Heho), 버마(미얀마Myanmar) _ Ⓒ엄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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