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두려움이 아니라면

작은 반지하에서의 기도

by 이요셉
죽음과 삶속에서

귀국하고 다음 날인 어제

오랜만에 희철이네를 만났습니다.

며칠 뒤에 다시 인도로 나가게 되는데

그러면 얼굴 볼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서둘렀습니다.

막 씻고 난 뒤인데도

희철이 이마에 식은땀이 가득합니다.

여름 동안 몸이 많이 안 좋아졌습니다.


어머니도 몸의 이곳저곳이

아프셔서 하늘나라로 떠나기 전에

이것저것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희철이가 알아듣지 못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시는데

희철이가 고개를 숙이고 말합니다.


"가려면, 나도 데려가."


항암과 여러 병명으로

갈수록 몸이 안 좋아지고 있는 어머니와

파킨슨병과 여러 가지로

아픔을 겪고 있는 아이에게

죽음은 언젠가, 멀지 않은 시간에

만나게 될 두려움이었습니다.


"희철아, 나를 형이라고 부르지만

내가 25살 정도는 나이가

더 많은 건 알지? 순서상으로는 형이

희철이보다 25년 뒤에 죽겠지만.."


사람이라면

모두가 떠나가야 할 인생 앞에

희철이에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네팔에서 강진이 있었을 때

아내는 내가 한국으로 다시 못 돌아올 것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미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었기에

아내에게 죽음은 실재였지만

그것이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그것은 지독한 그리움이라는

말을 내게 들려주었습니다.


늦은 밤,

희철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세 명이서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에게 나는 더이상 무슨 말을

더 들려주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주님께 엎드리게 됩니다.


죽음이 두려움이 아니라

그리움일 수 있는 이유가

예수님의 은혜 때문이라면

그 주님의 은혜가

작은 반지하, 가냘픈 두 명에게

가득하기를 기도했습니다.


당장에 풀어내야 할 문제들도

손댈 수 없을만큼 가득하고

건강도, 형편도 쉽지 않습니다.

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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