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안타까운 몸짓이었을까

수로보니게 여인과 귀 먹고 말 더듬는 자

by 이요셉


아내와 요즘 자주 이야기하는 문장이 있다.

"너가 별나고, 내가 별나고, 우리가 별난거야."

내 관점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아닌 모든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내 관점이 일반적이지 않고,

나아가 별나기까지 하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 수로보니게 여인, 이방의 여인은

유대인들이 개처럼 여긴 이방인이었지만

오늘 구원을 경험하게 된다.


흔히, 나의 관점으로 상대를 바라본다.

하지만 이 여인은 예수님의 관점으로 자신을 대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 (막7:27)

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옳습니다" 라고 대답한다.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은

성경 전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상 아래 있던 개는 이제 자녀와 함께 빵을 먹고

이방에 구원의 빛이 비쳤다.


내가 옳아 보이는 상황까지도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

내가 옳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을 구하겠습니다.

그러면 내게도 주님의 구원의 빛이,

땅 끝에 있던 내게도

날마다 주님의 빛이 임하지 않을까


예수님은 귀먹고 말 더듬는 자에게

특별한 행동을 하신다.

그를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신다. (막7:33)

특별한 주님의 만지심.

어쩌면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시대,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제자들조차 도무지 알아 듣지 못하는

그들을 향한 주님의 상한 마음,

안타까운 몸짓은 아니었을까?


에바다.

이는 열리다라는 뜻이다. (막7:34)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

아버지의 마음을 빛 비추어

보이길 원하시는 주님의 소원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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