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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면역력 기르기 100
by 에피스테메 Apr 11. 2018

1. 회사 근처 나만의 '혼밥 식당' 찾기

그냥, 오늘은 혼자 먹고 싶어요

 

사람이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일까? <행복의 기원>을 쓴 서은국 교수는 책 한 권에 걸쳐 이 질문을 던져놓고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라고 결론냈다.


서은국 교수의 정의대로라면 신입에겐 '행복 추구권'이 없다. 11시 55분쯤부터 눈치보다 선배들 일어날 때 엉거주춤 일어나 부장님이 정한 백반집에서 김치찌개를 '마시고' 들어오는 식사가 대부분일 것. '사랑하는 사람'은커녕 '싫은 사람'과 먹지 않으면 다행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먹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둘 중 하나 하기도 버겁다. 하루쯤은 두 가지 다 해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란 인간과 좋은 밥을 먹어보자.


수습을 떼고 1년간 내근 부서에 있었다. 신문사에서 내근 부서라고 하면 출입처로 취재하러 가지 않고 주로 회사 안에 앉아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기사 작성을 하거나 전화 취재를 하는 곳으로, 일반 사무직 직장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근무 환경이라고 보면 된다. 고로, 외근할 때보다 점심 시간이 더없이 소중해진다. 유일하게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는 시간이므로.


"소연씨 약속 없지?" 하면서 술과 밥을 사주는 선배들이 감사했지만 그래도 가끔은 혼자 있고 싶었다. 하루 종일 시달려서 밥 먹을 때 만큼은 내 입을 사교 행위가 아니라 음식물을 씹는 행위에만 쓰고 싶은 그 마음, 직장인이라면 잘 알 것이다. 난 당직 날 저녁 때 자주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때 가던 스시집이 있었다. 혼자서 특 초밥 세트를 시켜 놓고 가게서 제일 비싼 생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면 도심 한복판에서 고독한 미식가가 된 듯한 기분! 취기가 적당히 오르면 '오늘도 나는 성실히 내 임무를 해내고 있다'는 자신감도 불쑥 올라온다. 이런 날은 밥값을 아끼면 안 된다. 혼자서 배터지게 먹어봤자 3만원 안팎. 이 정도는 써줘도 된다. 그 스시집은 광화문에 있는 나만의 아지트였다. 광화문에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위안이 컸다.


스타강사 진정석(배우 하석진)은 퇴근 후 의식처럼 혼밥을 한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을 필요도 없고 오롯이 나만을 위한, 나만의 힐링타임" /tvN

 

나만의 혼밥 식당을 찾자. 불쑥 문 열고 혼자 들어가도 "혼자 오셨어요?" 아래 위로 훑으며 눈치 주지 않는, 그런 단골집을 만들어보자. 첫째 조건은 회사 '높은 분'들이 자주 가는 식당은 안 된다는 것. 이건 말하지 않아도 본능으로 알 게다.


나에게 꼭 맞는 혼밥 식당의 불운한 점은 수명이 짧다는 것이다. 적당히 맛도 있고 서비스도 나쁘지 않은데 손님은 많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추억의 스시집도 지금은 사라졌다. 그 집이 사라지자 야근을 하는 내 마음도 전보단 공허해졌다.

 

 '팀장과 밥 먹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광화문 혼밥 식당'을 차리면 어떨까? 입구에서 명함 검사를 해 한 회사당 손님 한 명만 받는 거다. 각자 혼밥하러 온 손님끼리 업무 얘기 하지 않고 시답잖은 얘기나 하며 밥먹다 조용히 자기 사무실로 사라지는 풍경. 회전율 빨라야 하는 오피스 타운에선 적자나기 십상이니 상상만 해본다.


요즘 나는 새로운 혼밥 식당을 발굴 중이다. 이쯤되면 내 아지트로 삼아도 되겠다 싶은 곳이 하나 있긴 했다. 회식 다음 날 자주 가던 국밥집인데 며칠 전 '명함 이벤트 당첨! 국밥 한 그릇 공짜!'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아마 사장님은 내가 혼밥하러 오는 단골임을 이미 알고 계실지도, 어디서 뭘 하는 인간이라 이런 곳에서 처자 혼자 국밥에 소주 까고 있구나, 꿰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명함 넣지 말걸...) 괜스레 부끄러워 다른 식당을 찾아봐야겠다.


모두가 우르르 나가서 20분 만에 구내식당 밥 먹고 들어오는데 어떻게 혼자 빠져나올 수 있겠냐는 하소연을 예상 못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이 정도 용기는 내보자.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 한 번쯤 맘 편히 밥 좀 먹어도 되지 않을까? 오늘만큼은 '약속 있다', '은행 가야한다', '속이 안 좋다' 핑계대지 말자. 미친 척 하고 진심을 말해보자.


"그냥, 오늘은 혼자 먹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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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직업기자
신문기자. <차마 하지 못했던 말> 저자. 요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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