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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호영 Oct 13. 2019

다섯 번째 계절을 찾아 나선 길

카즈베기 주타 트래킹 + 게르게티 사메바 성당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우스를 화나게 한 프로메테우스가 산꼭대기에 결박당하고 만 이야기. 매일 그의 간을 쪼아 먹는 독수리의 눈빛, 괴로워하는 프로메테우스, 그 뒤로 펼쳐지는 장엄한 산의 모습을 우리는 한 번쯤 상상해보지 않았을까?


이 이야기 속 배경이 된 '산'이 바로 카즈벡 산(Mt.Kazbeg)이다.


어쩐지 카즈베기(Kazbegi)라는 이름이 강렬하다. 하늘을 찌를 듯이 뾰족한 산꼭대기는 눈길을 사로잡는다. 산 중턱에만 올라도 산속에 푹 파묻혔다는 느낌이 든다. 산 발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은 샹들리에 마을이라고 불린단다.



카즈벡산을 오르는 여정은 주타 트래킹, 트루 소 밸리 트래킹, 게르게티 사메바 성당 트래킹으로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이 세 가지 여정은 다시 1) 마을에서부터 '오로지 걷기'로 시작하여 '걷기'로 끝내는 방법 2)'특정 지점'까지는 차로 이동했다가 그 지점에서 '원하는 만큼 걸어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방법 두 가지로 나뉜다.





산 정상이 보이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그래도 오른다.




다섯 번째 계절로 향하는 주타(Juta) 트레킹


유명한 트레킹 코스를 자랑하는 곳은 다 그렇듯 주타 트레킹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산 중턱에서 캠핑을 하며 쉬어가기도 한다. 오래오래 걷겠다고 나선 배낭여행객들은 등산화와 텐트를 등에이고 산을 오른다. 하지만 내가 떠나던 날 카즈베기 하늘은 흐렸고, 그래서 걷기는 3시간쯤으로 마무리하고 돌아올 생각이었기에 우비만 챙긴 채 가볍게 떠난다.


보드랍기 그지없는 카즈벡 산은 구름이 내린 수분 기를 푹 머금고 점점 어두운 색을 띠고 있었다. 영화 모아나(Moana)에서 보았던 땅의 여신(land goddess)이 금세 잠에서 깨어날 것만 같다.


fifth season (다섯번째 계절)

약 30분-1시간 정도 걷다 보면 산 중턱에 엄청난 뷰를 품은 카페 겸 게스트하우스가 보인다. 거대한 산맥이 지그재그로 겹쳐진 곳 중간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작은 집의 이름이 바로 ‘fifth season (다섯 번째 계절)’인 것이다. 이 세상, 지구 상에 다섯 번째 계절이 존재하고 있다 하니 푸른빛을 내는 구름이 로맨틱해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처럼 흐린 날이 아니라면 이 너른 산 중턱에는 햇살이 한가득 쏟아지는 곳인걸 알고 있기에 실은 아쉬움이 가득하다.


결국 쏟아지기 시작한 비를 맞으며 산을 내려가다.





게르게티 사메바 성당


다음 날은 룸스 호텔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게르게티 사메바 성당(Gergeti Sameba Church)’으로 향한다. 여전히 울상인 하늘 구름이 걷히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사메바 성당으로 가자!
사메바 성당에서 보는 카즈벡 산맥


조지아 사람들 80% 이상이 조지아 정교회에 속해있다. 그들의 신앙심이 꽤 깊다고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곳곳에 유명한 성당(교회)에 들를 때마다 성당 벽에 입맞춤하는 사람들을 보곤 했다. 14세기에 지어진 게르게티 사메바 성당 또한 여행자들과 현지인들 모두가 즐겨 찾는 성지의 역할을 한다.


*트레킹 코스 : 1시간 30분 소요

*택시 왕복 : 1인 40-60 Gel / 택시 대기 2-3시간



막상 성당에 오르니 바람이 더욱 거세진다. 혹시나 챙겨갔던 스카프를 칭칭 두르고 흩날리는 머릿결을 바로 잡느라 정신이 없다. 성당 내부를 둘러보려니 여자에게 해당하는 복장 조건이 꽤 까다롭다. 날이 개자 갑자기 몰려든 관광객들 틈에 정신이 없어질 참이었다.


우리는 성당 아래 산허리를 걸어 보기로 한다. 터벅터벅 걷고 있던 늑대처럼 큰 개와 눈이 마주친다. 낮게 날고 있는 저 커다란 새는 독수리임이 틀림 없다. 말이 풀을 뜯고 있다. 모든 동물을 방목하는 조지아에서는 흔히 보게 되는 그림인데도 매번 신이 난다.


말 옆에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꼬마 아가씨는 연신 말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부모님도 다가와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풀 뜯던 말이 고개만 들어도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던 나, 도망가는 말의 뒤꽁무니를 종종걸음으로 쫓아가는 꼬마, 휘익 불어오는 바람에 ‘나의 어린 시절에도 자연과 동물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면...’ 하는 생각을 실어본다.




 다섯 번째 계절을 오롯이 느끼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날씨의 변덕과 운(luck)이 아쉽다.

하지만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는 것도 여행이라서. 예상치 못한 일들과 처음 느끼는 감정의 버무림이 바로 여행이라서. 그래도 행복한 여행을 하고 있어서. 어제도, 오늘도 여전히 괜찮다고 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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