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사수는 언변이 좋은 사람이었어요. 근데 생각해 보면 말이 아니라 사고방식이 대단했던 것 같아요. 얘기를 듣다 보면 '거기까지 간다고?' 싶은 집요함 때문에, 회의 중인 것도 잊고 막 사심이 터져 나왔죠.
"건님 변태 같아요.. 좋은 의미로."
그런 그변태가 설계한 UX 라이팅이 종종 회자되는 토스증권의 [판매하기], [구매하기] 버튼 레이블이에요.
건님은 읽기를 '노동'에 비유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읽기를 싫어하는 거라고 했죠. 대가 없는 노동이 싫은 건 본능이라구요. 적절함을 넘어 인상적이었어요. 묘하게 일치하는 과학적 근거도 너무 많았거든요.
영국에 리타 카터라는 뇌과학 칼럼니스트가 있는데, 한 번은 리 선생님이 TED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말하기 능력은 우리가 태어날 때 유전자에 가지고 태어납니다. 근데 읽기는 그렇지 않아요. 가령 새 소설을 한 편 읽기 시작하면, 우리 뇌도 새 길을 내야 하죠. 매일 30쪽씩은 꾸준히 봐야 그 길이 점점 진해져요. 읽기를 하려면 뇌도 훈련이 필요한 거예요. 게다가 인류가 '독서'라는 걸 한 지 100년도 채 되지 않았죠.
그러니까 읽기는 의사소통 수단 중에서도 인지적 수고가 가장 많이 드는 행위인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은 술술 읽히는 글을 편안해하는 것을 넘어 좋아까지 하는 거죠. 쉬운 글은, 노동이 들지 않으니까요.
여기에 테크닉을 입혀서 'UX 라이팅'이란 이름을 붙여준 건 Google이었어요. 2017년에 이런 UX 라이팅 모델을 발표했고, 그때부터 한국 회사들도 비슷한 가이드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했죠. 그럼, Google이 쉬운 비즈니스 글의 원조였을까?
아니요. 2023년에 등록된 UX 라이팅 논문을 보면, 제니스라는 사람은 회사까지 차려서 쉬운 글쓰기 프로젝트를 했대요. 무려 1985년도, 40년 전이에요. Microsoft에 에이미라는 UX 라이터도 Medium에 이런 글을 올렸는데:
Windows 2000이 나왔을 때 UI Text Writer라는 포지션이 처음 생겼다는 거예요. 그게 1999년이니까... 뭐 MS는 20 몇 년 전부터 읽기 편한 글에 대한 투자를 해왔던 거죠.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쉬운 글에 돈을 들이기 시작한 건 통신사들이었어요. 2018년도 기산데, 이때까지만 해도 'UX 라이팅'이라는 이름이 전파되지 않아서 '고객 언어'라는 이름을 썼죠. 읽는 사람을 배려한 글쓰기를 연구해 '고객 언어 가이드'를 제작하는 TF팀이 있었어요.
그중 한 크루가, 나중에 글을 쉽게 써주는 회사를 차렸어요. 쉬운 글의 경제적 파급력에 확신이 있었던 거죠. ‘첫 프로젝트를 누구와 해야 할까’ 고민했대요. 낙수효과를 기대할만한 회사여야 했거든요. 그래서 이 회사로 메일을 보냈습니다:
받는 사람: toss
제목: 글 쉽게 써드립니다.
본문: 서비스의 텍스트를 쉽게 읽히도록 바꾸면 매출도 오르고, 기업 가치도 오를...
거라고 필력을 팔았어요. 이 대범한 메일의 작성자는 건님이었고, toss의 이승건 대표님이 수많은 스팸메일들 속에서 저 글을 클릭했어요. 그렇게 toss의 UX 라이팅 프로젝트가 시작된 거예요.
1. TED, 2018. Why Reading Matters. YouTube, 6월 27일. Available at: https://www.youtube.com/watch?v=muuWRKYi09s [Accessed 2025년 3월 4일].
2. Google I/O, 2017. How Words Can Make Your Product Stand Out. YouTube, 5월 20일. Available at: https://www.youtube.com/watch?v=DIGfwUt53nI [Accessed 2025년 3월 4일].
3. 정지현. (2023). UX 라이팅을 위한 프로세스 및 워크숍 도구 개발에 관한 연구. (석사 학위논문). 서울여자대학교.
4. Lanfear, A., 2019. The Evolution of UX Writing at Microsoft. Medium, 5월 13일. Available at: https://medium.com/microsoft-design/the-evolution-of-ux-writing-at-microsoft-f3bd4ee7badc [Accessed 2025년 3월 4일].
5. 안호천, 2018. [LG유플러스, 고객가치혁신 앞서간다]〈상〉모든 용어를 고객이 이해하기 쉽게. 전자신문, 3월 19일. Available at: https://www.etnews.com/20180316000140 [Accessed 2025년 3월 4일].
6. 전상현, 2018. SKT, '고객 최우선 서비스' 눈길… '고객언어연구소' 운영 나서. 뉴데일리 경제, 6월 29일. Available at: https://biz.newdaily.co.kr/site/data/html/2018/06/28/2018062800190.html[Accessed 2025년 3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