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차 홈스쿨러의 일단락
조금 떨린다는 아이에게 호흡법을 가르쳐 주며 내 떨리는 가슴도 함께 진정시켰다. 내 시험도 아니고, 초등 졸업 검정고시일 뿐인데 왜 이렇게 떨리는 걸까. 엄마도 떨린다고 하면 괜히 애를 더 긴장하게 만들까 봐 말은 못 했다. 아닌가, 오히려 나도 떨린다고 솔직하게 말해주는 게 도움이 될까? 이런 사소한 선택에는 정답도 없다.
두 동생들은 외가에 맡겨두고 남편과 나, 아이 셋이서 인천으로 갔다. 검정고시를 개별 접수했다면 수원으로 가야 하는데, 학교 밖 청소년 센터를 통해 단체 접수를 해서 인천으로 가게 됐다. 석천 초등학교는 차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다행이었다. 9시부터 시험인데 30분 전까지 교실에 들어와 준비를 하라는 공지가 있었다. 우리는 수험표를 받아 들어가야 해서 조금 더 일찍 도착하려 했으나 예상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교문 앞에는 시험을 응원하러 온 학교 밖 청소년 센터 직원분들과 부모들, 홍보하러 나온 학원 직원들로 제법 북적였다. 수험표와 센터에서 준비해 준 물과 간식을 들고 함께 들어가려 하는데 안내자가 막아섰다. 홈스쿨링을 하는 다른 친구들은 모두 4월에 시험을 봤는데, 물어보니 시험 보는 교실 앞까지 데려다줄 수 있었다고 했다. 여기는 규정이 다른 모양이었다. 학교생활을 안 해본 아니라 교실을 잘못 찾아가는 건 아닐까,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아이를 홀로 들여보냈다.
남편은 이후 일정이 있어서 떠나고 나는 근처 카페에서 아이를 기다리기로 했다. 날씨가 좋았다. 한여름은 지난 모양인지 카페 안 에어컨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바깥 테이블에 앉아 8월 독서모임 도서인 『안 느끼한 산문집』을 읽으며 기다리기로 했다. 시험 날이 평일인 화요일이라 지나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책이 재밌어서 키득키득 웃다가, 공감이 가서 눈물도 짓다가 했는데 시계를 보니 겨우 5분이 지나 있었다. 책을 다시 폈다, 덮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시계를 보면 겨우 2분. 다시 책을 읽자. 얼마나 지났지? 이런 맙소사, 1분 지났네.
시험 과목은 6개, 시간은 3시간. 2시간까지는 어떻게든 버텼는데 더 이상 책도 안 읽혀서 일어났다. 그때 얼마나 초조했으면 모기가 목덜미를 열한 군데를 무는 걸 몰랐다. 나중에 간지럽고 보기 창피해서 혼났다. 아무튼 앉아 있기보다는 학교 근처를 걷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가까운 곳에 꽤 큰 시청이 있었다. 시청 외에도 온갖 행정 기관이 한 데 몰려 있는 모양이었다. 시청을 크게 둘러 걷다가 도서관이 있길래 들어가 물을 마시고 1층만 한 바퀴 돌아본 후 다시 나왔다. 조금 후면 아이들이 나올 시간이었다.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하긴 대안학교 다니는 아이들도 시험을 볼 테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외국인은 보지 못했고,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학생들도 꽤 있었으며,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분도 계셨다.
그들 틈에 섞여 우리 아이도 걸어 나왔다.
두 달 동안 준비한 시험이 끝났다. 국어, 음악, 영어는 평소 실력으로 보았고 사회, 수학, 과학은 따로 공부를 해야 했다. 아직 6학년 1학기 수학을 풀고 있었던 터라 진도상 6학년 2학기 수학 범위가 나올 때마다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사회와 과학은 검정고시 책을 구입해서 주요 내용만 공부를 했는데, 조금 더 일찍부터 천천히 공부해왔다면 좋았을 뻔했다. 급하게 하느라 시험을 위한 공부밖에 되지 않았던 게 아쉽다. 2017년도 기출문제부터 2025년 1회차 기출문제까지 풀어보고, 틀린 문제만 따로 모아서 다시 풀기도 했다. 나도 참 수고했다.
처음 홈스쿨링을 결정하고 한동안, 내가 잘 가고 있는지 끝없이 의심하며 자기 검열을 하던 때가 기억난다. 세상에게 내 판단이 잘못된 게 아님을 증명해 내야 할 것만 같았다. 양육자이면서 학습을 지도해야 하는 역할을 둘 다 감당하느라, 되려 이도 저도 잘하지 못하는 것 같은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었다. 그러다 어느새 익숙해지고, 편안해졌다. 벌써 6년이 흘렀다니. 홈스쿨링의 한 단락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사실 둘째와 셋째가 아직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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