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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국 May 22. 2020

번아웃 초기 증상

5월의 산문 #4

잘하는 걸 하기에도, 하고 싶은 걸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해나가야만 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 취업을 위해서가 아마 가장 큰 이유일 테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그 사회에서 각자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끝없이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 하는 것이다. 보통 이런 삶을 살다 보면 힘들어서 도망치거나 울고 불며 난리를 피우는 게 정상이지만 그럴 수 없다. 내가 울고 불고 징징거리는 시간에 이미 타인은 또 나를 제쳐 나가고 있으니까. 


사실 요즘의 나는 정말 힘들다. '힘든 것 같다'라고 쓰려다 바꿨다. 해야 할 일들이 정말 이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고 하고 싶은 것들의 일환이지만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양으로 내게 밀려오고 있다. 읽어야 될 텍스트는 (코로나 때문이라고 치자) 평소보다 더 쌓이는 중이고, 즐겁게 시작한 유튜브도 해내야 하는 일종의 일이 돼버린 느낌으로 내게 다가온다. 당장 다음 주에 있을 토익 시험도 준비를 해야 하는데 점수는 생각보다 오르지 않고 한 달에 한 번 내가 속한 대학의 학생회 업무로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거기다 최근엔 인턴십 지원으로 머리를 싸맸으니...


매번, 정말 매번 나에게 다짐하는 게 있다면 '조금 덜 치열하게 살자'이다. 조금 덜 치열하게 살며 인생의 순간순간 장면을 담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 다짐이 무색하게도 힘들어 욕을 내뱉고 지독한 어깨 결림을 느끼며 글을 쓰고 있다. 도대체 이 해야 할 일들은 언제쯤 다 사라지는지를 생각하며. 가만 생각해보니 어쩌면 심플하게 살고 싶은 게 아닐까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크진 않아도 내가 먹고 살아갈 돈을 벌고 와중에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우고. 


지금의 나는 번아웃 초기 증상을 겪고 있다. 눈이 감기고 어깨와 등을 펴지 못한 채 모니터와 책을 쳐다보는 상태이다. 그리고 동시에 굉장한 스트레스로 머리를 쥐어뜯지 않으면, 한숨과 욕을 내뱉지 않으면 버티기가 어렵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그런 말을 했다. "나만 힘든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들도 다 각자의 힘듦을 겪고 있을 텐데" 현대사회라는 게 참 어이가 없다. 내가 힘든 것을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약한 인간의 표상이 되고 힘든 것을 참아내야만 진정으로 현실을 살아가는 사회인이 된다. 하긴 나조차도 어느 날에는 별 것 아닌 일로(별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계속 투정 부리는 몇 후배들의 모습을 친구와 같이 비판했고 나에게도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냐?' 라며 끝없이 채찍질했으니 그런 현대사회의 전형적인 인간임을 드러낸 셈이다. 


일이 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혹은 정말 잘하고 싶은 내 욕심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일지는 몰라도 나는 지금 번아웃 초기 증상을 겪고 있다. 그냥 내가 사랑한 어느 도시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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