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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람 Jul 15. 2024

초록


고삐 풀린 손은 펜을 쥐고 글을 쓰지만 그 글은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는다. 펜은 손가락을 밧줄 삼아 목을 매고 죽어버리지만, 금세 다른 펜을 집어드는 손가락 때문에 끊임없이 죽어나가는 펜의 무덤. 글을 안 쓰면 죽어버릴 사람처럼 기록을 덧입힌다. 시냅스와 수상돌기에 한바탕 난동을 피워 찍힌 자국을 낸 그 곳. 바로 그 위에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보여지기 위해 단장하는 손가락과 그 손가락을 온 몸에 이고 짊어진 채 빨간 구두처럼 자유롭게 춤추는 검은 잿가루. 재는 글이 되어 생명을 얻고, 그 대가로 제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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