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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람 Jul 07. 2024

모래사장에 행성을 심었다



안개 낀 여름을 맞아

서늘하고 진득한 바닷바람과 해무에 둘러싸인 채 

파도가 그려낸 선을 따라 걷던 오후 5시. 


모래사장에는 지구를 닮은 행성이 박혀 있었다.

반쯤은 게구멍을 틀어막은 채로

나머지 반은 코 앞에 닥쳐오는 파도를 맞이한 채로


생사불명

신원불명

원인불명


모든 것이 불명예인 이 행성에서

게 한 마리가 기어나왔다


모래사장의 색을 뽑아낸 듯한 몸통을 가지고

모래로 만든 제 몸집만한 공을 굴리고

도르륵, 도르륵


쉼 없이 미확인 행성의 한 켠에

자기만의 집을 짓고

몸을 숨기는 게

마치 행성이 자신의 집이었던 것처럼

살아 움직이는, 게


온 대기가 바닷물에 잠식되며

공기질은 소금기가 주를 이루고

표면은 얼음판처럼 미끄러워 파고들 수 없을지도 모르는

그 누구도 처음 만나는 행성


그곳에서도 어김없이 자리를 잡고

숨을 틔우는 생명을 보며

자리를 피할 수 밖에 없던 인간을 생각했다


어쩌면 인간은 

인간이 아닌 존재의 처음을 빚질 수 밖에 없다고

갚아나가지 않는 무례를 범하는 이상

인간의 존재는 무의미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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