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의 지배

시간은 어떻게 왜곡되는가

by ESG작가 오병호

우리는 개인의 선택이 사회를 만든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에 가깝다. 선택은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은 이미 정해진 구조 안에서 이루어진다.
문제의 핵심은 이 구조가 시간을 왜곡한다는 데 있다.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시스템은 현재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금융 시장은 분기 단위 성과를 기준으로 움직이고, 기업은 연간 실적을 중심으로 평가되며, 정부는 4~5년의 선거 주기에 따라 정책을 결정한다. 이 구조에서는 장기적인 결과보다 단기적인 성과가 훨씬 더 중요한 신호로 작용한다.
이때 시간은 균등하게 흐르지 않는다. 현재는 확대되고, 미래는 축소된다.
경제학적 할인 구조는 이를 수치로 보여준다. 연간 5%의 할인율이 적용되면 10년 뒤의 가치는 현재 기준으로 약 60% 수준으로 감소하고, 20년 뒤의 가치는 40% 이하로 떨어진다. 할인율이 10%에 가까워지면 이 효과는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결국 먼 미래는 의사결정에서 사실상 사라진다.
이 왜곡은 의도된 것이 아니다. 시스템은 효율성을 위해 설계되었고, 빠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시간 전체를 고려하는 기능은 점점 약화되었다.
기업을 보면 이 구조는 더욱 분명해진다. 주요 기업의 임원 보상 중 약 70%는 단기 성과에 연동되어 있다.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이나 구조적 안정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장기 투자는 비용으로 인식되고, 단기 성과는 보상으로 연결된다.
정부 역시 같은 구조를 따른다. 정책은 장기적 효과보다 즉각적인 체감 성과를 중심으로 설계된다. 교육, 기후 대응, 인프라 유지와 같은 분야는 중요하지만, 성과가 늦게 나타나기 때문에 후순위로 밀린다. 반면 단기적인 지원과 소비는 빠르게 효과를 보여주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누구도 장기적 선택을 할 유인이 없다.
개인이 미래를 고려해 소비를 줄이면 손해를 본다. 기업이 장기 투자를 늘리면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 정부가 미래를 위해 지출을 줄이면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결국 구조는 모든 참여자에게 동일한 방향을 강요한다.
그 방향은 명확하다.
지금, 더 많이.
이것이 구조의 지배이다.
우리는 선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선택당하고 있다. 시스템이 만들어낸 시간의 왜곡 속에서, 우리는 현재를 반복적으로 선택하도록 유도된다.
문제는 이 왜곡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는 성장하고, 기술은 발전하며, 삶은 개선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미래는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
이 구조는 스스로를 강화한다. 현재의 성과가 클수록 같은 구조가 유지되고, 그 구조는 다시 현재 중심의 선택을 강화한다. 이 순환이 반복되면서 시간의 왜곡은 더욱 심화된다.
결국 우리는 하나의 시스템 안에 있다.
현재는 과대평가되고, 미래는 체계적으로 축소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게 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언제나 합리적으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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