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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은선 Jul 22. 2020

뉴 노멀 시대,
핀란드 디자이너 마인드가 Key(1)

김윤미 비즈니스핀란드 수석상무관, '왜곡' 벗기면 한국이 일등 선진국

'김윤미' 하면 자동적으로 핀란드를 떠올리게 된다. 1998년 주한 핀란드 무역대표부(비즈니스핀란드, 구 FINPRO)의 상무 보좌관으로 입사한 이후 대표, 현재의 수석상무관으로 재직하기까지 23년째 한 자리에서 활동해온 그는 자타공인 한국에서는 핀란드의 얼굴이고 핀란드에서는 한국의 얼굴이다. 누군가 핀란드와 관련된 일을 뭔가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그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북유럽의 인구 550만 명, 작은 나라 핀란드. 우리는 노키아로 대표되는 이미지와 어린이 교육이 잘돼 있는 나라 정도로 알고 있고 최근 들어 헬싱키 여행이 늘고는 있지만 그 외에는 사실 북유럽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는 습성이 있고 개별 개별로는 잘 알지 못한다. 그중 핀란드는 우리와 공통점이 많은 나라다. 남의 나라(러시아)의 지배를 당했고 전쟁을 겪었으며 빠른 시간 안에 안정된 국가를 이뤘다. 100년이라는 국가 이력에 비하면 여러 가지 제도들은 놀라울 만큼 선진적이다. 


하지만 커다란 차이가 있다. 철학과 마인드다. 김 대표는 그것을 국가가 정립한 철학이라고 설명한다. 그들보다 우리가 열등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의 탁월함을 가리고 있는 '왜곡'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걷어내면 진심 우리의 빛나는 DNA를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찾아내고자 하는 열망이 늘 있었는데 그것을 디자이너 45인의 인터뷰를 통해 정리한 것이 바로 최근에 출간한 책 <디자이너 마인드>이다.


핀란드 속에 깊이 내재된 지속 가능한 가치와 철학을 정리하기 위해 그는 꽤 오랜 시간 출장 일정 틈틈이 45명의 디자이너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들의 육성을 통해 '모두 함께'라는 핀란드의 라이프스타일 철학, 지속 가능한 생산, 사람과 환경의 공존,  느리고 단순한 삶의 미학, 휴머니즘 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앞으로 내가 걷는 길을 어떻게 디자인하면 좋을지 윤곽이 보이는 것 같아요."라며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자기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집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핀란드와 만나게 된다. 핀란드 디자이너 가구와 작품이지만 실생활에서 사용 가능한 소품들로 집안이 가득 차 있다. 거의 갤러리 느낌의 집 안에서 보면 창밖으로 보이는 경운궁(덕수궁) 풍경도 하나의 액자 오브제 같다. 그녀의 세계(생각과 일, 삶)가 하나로 통일된 것임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


-어떤 기준으로 이런 작품(제품)들을 선택하시나요?

“저는 작가와 디자이너의 스토리를 보고 선택해요. 단순히 오브제나 가구, 혹은 집에 있는 제품과의 매칭보다는, 작가를 집에 들인다, 디자이너를 픽한다는 느낌? 핀란드 제품만 있는 건 아니고 함도하 작가의 벤치와 협탁 작품, 컨테이너 5-1의 거실 테이블 등 국내 제품도 꽤 있어요. 거실 테이블은 공예 트렌드페어에서 만났는데 아버지가 목공을, 자제 셋이 디자인 스튜디오를 하는 분의 작품이어요. 아버지 목공 장인이 직접 테이블을 갖다 주셔서   정말 감동이었죠. 집의 창밖 느낌과 어우러지는 테이블을 선택한 것이었어요. 나머지는 거의 핀란드 작품들입니다.”


-디자이너 마인드 책을 쓴 계기는 무엇인가요?

“핀란드 출장을 자주 가고 한번 가면 오래 머무르게 되는데 한국의 누구보다 제가 접근성이 좋으니까 알고 경험하는 것의 나눔을 하고 싶다 생각했어요. 원래는 핀란드 독립 100주년 기념인 2017년 12월에 맞춰 책을 펴낼 생각이었어요. 핀란드는 러시아로부터 1917년 러시아 혁명 때 독립했는데 독립이라기보다 국가 형성을 한 것이 그때죠. 


그전에는 스웨덴과 러시아의 일부로 있었고 국가로 존재한 적이 없어요. 마침 제가 일한 지도 20주년이어서 나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고 20년을 함께해온 핀란드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고요. 국내에서 핀란드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데 그에 대한 답은 아무도 주지 못하고 있어서 제가 쓰자 한 것이 이제 나왔어요."


-핀란드= 디자인인가요? 핀란드의 상징을 디자인으로 한 이유가 뭘까요?

“핀란드는 전자산업이 발달돼있고 휴대폰 노키아도 있고, 푸드는 국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는데 저희가 너무 열심히 해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것이고, 핀란드 교육이 또 유명하고.. 사실 핀란드 디자인에 대한 책은 제가 처음은 아니여요. 


‘디자인 산책’도 있고 이후 한국 디자이너들이 핀란드 디자인 디스트릭트나 디자이너에 대해 쓴 책은 있으나 이렇게 디자이너, 그것도 45인이나 직접 인터뷰해서 쓴 책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핀란드에서도 첫 책일 거예요. 핀란드 디자인이라는 하나의 맥을 짚어주기 위해 디자이너들을 인터뷰하고 에세이로 기록한 것은 처음입니다.



저는 23년간 한국과 핀란드 간 여러 가지 산업을 경험하고 연결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났어요. 디자인 관계자들을 만난 것은 불과 5년 전입니다. 디자인을 잘 알아서라기 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디자인을 차용했다고 할까요. 이 책에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오디언스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모든 우리나라 일반인들입니다. 일을 하면서 느끼고 경험한 핀란드 사람들의 생각을 한국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수직적이거나 독립적인 산업이기보다 하나의 수평적인 인에이블러(Enabler, 도와주는 사람)인 것처럼 디자인도 똑같습니다. 경영부터 모든 과정에 디자인이 필요하고 그 주제로 여러 산업을 터치할 수 있으므로 디자인 전문가들의 디자인 작업이나 결과물보다는 그 뒤의 생각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일하면서 만난 핀란드 사람들을 경험하고 느꼈던 것과 함께요.


그것은 평등하고 개방적이고 과시하지 않고 자연을 아주 아끼고, 자연을 아끼는 것이 곧 사람을 아끼는 것이고.. 휴머니즘이 강하고 실용적이고.. 이런 것들을 많이 느꼈습니다. 참 좋은 사람들이구나.. 때문에 이곳에서 23년간이나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느낌들을 공유해서 우리가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주로 B2B로 산업 속에서 일하다 보니 그동안 이런 것들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대중적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 테크놀로지와 관련되는 것들은 기업의 보안사항도 있고 해서 함부로 얘기할 수도 없고.. 디자인이란 것은 대중적으로도 좀 쉽게 다가갈 수 있고 해서 그 툴을 책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한국인들에게 아주 좋은 근본이 있는데 우리가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물질, 나쁜 불순물들이 많이 끼여있다고 생각해요. 이걸 잘 걷어내면 우리가 세계에서 훨씬 더 인정받을 수 있고 존중받고 우리의 목소리가 잘 전달되리라 생각합니다. 그 불순물이라는 게 뭐냐면 너무 경쟁 지향적, 성장지향적이고, 너무 갑을 관계인 데다 폐쇄적이고 차별하고.. 이런 것들이 주로 소득을 통해서 이뤄지는 데다가 과시욕 구도 강하고..


이런 것들이 원래 우리를 규정하는 게 아니고 우리의 알맹이는 아주 좋은데 불순물들이 끼어 있어요. 일종의 왜곡이죠. 이걸(불순물) 제거하면 우리는 아주 보석 같은 사람들이고 좋은 나라, 국민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결국 이런 생각과 생활을 하는 핀란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불순물을 좀 정화하고 제거할 수 있다면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고 그렇게 하는데 기여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한 사람이 한 국가와 관계되는 일을 이렇게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기회가 잘 없지 않나 이런 것도 제게는 특권이었고 제가 누린 경험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45명의 디자이너와 인터뷰하면서 많이 배웠고 책을 쓰면서 제가 생각해온 것들이 실제 디자이너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생활하는구나 라는 것을 다시 재확인했습니다.” 


-디자이너 마인드 책에 대해 좀 더 얘기해주세요.

“책의 제목을 고르느라 힘들었습니다. 요즘 ‘디자인 싱킹’이라는 말이 너무 많이 나오고 실체가 모호하기도 해서 일부러 이 단어는 피하고 싶어서 '디자이너 마인드'로 결정했어요. 중요한 것은 디자인 자체보다는 디자이너 마인드는 철학이고 곧 사람이며, 삶에 녹아있는 것입니다. 사회의 환경, 역사, 국가의 철학 이런 것들이 디자인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차 대전 이후 핀란드의 1세대 디자이너라 하면 알바 알토 등으로 대표되고 지금 중견작가로 활동하는 분들은 그들에게 사사를 받은 나이 때이지만, 지금 신진작가들은 알바 알토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훨씬 덜 받았겠지요. 하지만 놀랍게도 그 흐르는 정신세계가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 어쩌면 이만큼 확고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나라도 드물지 않을까요.


우리는 늘 성장에만 목을 매고 살아왔는데 이들은 성장보다는 상존, 공존, 합의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확실히 세대를 넘나들어 흐르는 거대한 맥이 있습니다. 형태나 색깔에 있어서는 일부러 “제 디자인에 알바 알토의 헤리티지는 없습니다”며 살짝 거부감을 나타내는 디자이너도 있지만 그건 결과물적인 것이고 그 뒤의 생각에 대해 한참 얘기하다 보면 대체로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어요. 


책 속의 인터뷰이 디자이너중 시계장인 사르파네바가 있는데 핀란드에서 가장 고가의 시계 브랜드를 만들어 파는 시계 장인으로 핀란드에 보기 드문 럭셔리 브랜드입니다. 이 분은 1년에 시계를 50개 만듭니다. 일주일에 한 개 만드는데 수제품이라 더 만들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대량 생산이 안되고 이게 사업적 측면에서 보자면 매우 난감한 일이지요. 만약 이 시계를 한국에 수입해 팔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1년에 과연 몇 개나 팔 수 있을까요. 끽해야 서너 개 파는 걸 텐데 그 사업을 어떻게 하겠어요. 


*참고; 사르파네바  https://thejewelry.tistory.com/314


이런 어려움이 있지만 막상 본인들은 더 이상 만들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물론 한 개 가격이 1억~4000만 원 엄청 고가입니다. 그는 해외에 수입유통사를 두지 않아요. 그게 자신의 방식이고 그 방식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방식으로 커스토머가 직접 연락하면 그와 1;1로 직접 직거래하지, 누구를 통해 팔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시계 잡지나 시계 페어 정도만 가끔 나가고 마케팅도 별도의 세일즈 활동도 하지 않지요. 50개 외에 더 이상 팔게 없는데 마케팅이 무슨 필요 있으랴 하는 거죠. 그럼에도 그는 핀란드 디자인계의 명가 중의 명가입니다. 


알바 알토 뒤에 몇 명의 아주 유명한 장인 디자이너들이 있습니다. 이딸라(핀란드의 대표적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버드(Bird)의 오이바 토이카, 카이 프랑크, 티모 사르파네바, 타피오 비르칼라 이 네 사람이 알바 알토와 함께 지금의 이딸라를 만든 디자이너들입니다. 모두 글라스와 관련된 디자이너들로 조금씩 다른 시기에 이딸라에서 일했습니다. 


알바 알토는 사보이 꽃병의 곡선을 만들었고, 카이 프랑크도 여러 가지 테마(Teema) 라인을, 타피오 비르칼라는 아름다운 칸타렐리 글라스를, 오이바 토이카는 글라스 버드 시리즈와 카스테헬미(Kastehelmi) 시리즈를 만들었지요. 티모 사르파네바는 팬띠 사르파네바와 형제인데 사르파네바는 핀란드에서 우러러보는 디자인 명가입니다. 


*버드 바이 토이카 컬렉션은 핀란드 유리 공예의 대가 오이바 토이카(Oiva Toikka)의 무한한 상상력과 이딸라 장인들의 기술력이 결합해 탄생한 유리 공예품

https://www.iittala.co.kr/?doc_id=collection&de_no=9



앞서 말씀드린 시계장인 스테판 사르파네바는 일반인이 잘 알지도 못하고 전 세계 시계 콜렉터들도 페어에서 모니터링한 후 알게 되는 브랜드죠. (잠재) 고객과는 서로 연락을 주고받다가 그가 헬싱키에 도착하면 직접 보트를 타고 세일링 해서 마중 나가 자기 보트로 픽업해 모셔오죠. 영업을 하기보다는 같이 낚시하고 그냥 놀아요. 그러면서 하나씩 팔고.. 그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아갑니다.


클라이언트가 시계를 받으려면 거의 8개월을 기다려야 하니 이 디자이너는 완전히 갑 중의 갑입니다. 주문받고 나서 만드니까요. 거의 뭐 ‘내 마음이 내키면 만들어 줄게’ 수준입니다. 하지만 그에게 시계를 사가는 콜렉터들은 대부분 세계적인 갑부들입니다. 보고 그 자리에서 사는 물건이 아니다 보니 서로가 알고 사는 거고 좋아야 만들어 주는 이런 수준..? 저는 이들의 이런 방식이 부러워요. 무엇인가를 많이 만들어내고 많이 팔고 큰 성장을 이룬다고 해서 우리가 더 행복해지거나 채워주거나 나를 더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않더라는 거죠. 

 

우리는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이 갖고 있지만 더 가졌다고 우리가 더 위에 있는 게 아니지요. 이들은 절대 재력을 과시하지 않아요. 핀란드 부자는 스웨덴 계열의-스웨덴이 600년간 지배-귀족들이나 상업을 잘 아는 사람들이 넘어와 핀란드 산업을 일으킨 자본가들입니다. 이들이 부동산과 금융을 장악하고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이라 라스트 네임으로 서로 알아보는 사람들이죠. 

 

핀란드에서 스웨디시 스피킹이 전 인구의 6%에 불과한데도 이게 공용어로 통용될 정도죠. 스웨덴어를 반드시 핀란드어와 함께 써요. 길거리 표지판도 핀란드어와 스웨덴어가 같이 쓰여 있습니다. 그만큼 그들이 경제 문화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끼리의 확실한 이너서클이 있습니다. 이 외에 또 하나의 그룹은 스타트업을 잘 운영해서 엑싯 혹은 IPO를 잘해서 부자가 되거나 이 두 가지 부류가 핀란드의 상류층을 형성합니다. 

 

*참고; 핀란드의 역사  https://conversationstore.tistory.com/35


그 외에 나머지는 평범한 노동자들입니다. 핀란드는 농민이 부자입니다. 우리나라의 농민은 땅이 없어서 소작농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핀란드는 농민의 80%가 과거부터 자기 땅을 갖고 있는 지주농입니다. 농민들의 입김이 강해서 정치적으로도 세고 보호도 많이 받지요. 다만 이들은 절대 과시를 하지 않습니다.

 

산업의 시스템이 농민들에게 부가 돌아가는 시스템이라 할까요? 농민들은 부자를 추구하지 않지만 거대한 땅을 갖고 있습니다. 보호받는 사람들이고 농민이라고 해서 절대 가난하지 않아요. 하지만 가진 자들이 티를 전혀 내지 않습니다. 유명한 집, 부잣집 아들도 자전거 타고 다니고.. 자기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 타인이 몰라요. 그건 정신세계가 고도화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뭔가 과시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은 그것밖에 없을 때 그런 행위가 나오는데 그들에게는 그게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뭔가 과시했을 때 남이 나를 달리 대하지 않으므로 과시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도 점차 그렇게 될 거라고 봅니다. 이들도 국가가 만들어지고 100년이니 그리 오래지도 않는데 왜 우리와 이렇게 다를까요? 그것이 바로 그들의 국가 철학인 것입니다. 

 

이들의 교육철학 역시 한 사람도 낙오시키지 않고 ‘모두 함께 데려간다’입니다. 우리는 상위 몇% 영재에 집중된 교육이지만 핀란드는 평균에 집중된 교육이고 하위 못하는 애들을 평균으로 끌어올리는데 집중된 교육이죠. 이런 것들이 대단한 건 아닌데 사회 속에 스며들 때에 사람들의 태도와 생각에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상위 몇%에 집중한다면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반짝반짝 빛나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근데 내가 상위가 돼도 아무도 큰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모두의 관심은 오히려 중간과 그 밑에 있는 애들입니다. 중간을 크게 탄탄하게 만들고 하위애들을 중간으로 올리려는 것, 그게 핀란드가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이게 사회적 측면에서 보면 전체적인 안정성이 매우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죄율도 낮고요.. 우리는 아래보다는 상위 몇% 가 중요하고 상위가 사회 국가 경제를 이끌어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일할 때 조직에서도 아주 분명해요. 절대로 퍼포먼스 좋은 사람들에게 스펙트럼을 맞추지 않습니다. 우리 시각으로 보면 아주 이상한 조직입니다. 그럼 무엇으로 평가를 하는 걸까요? 이 평가 역시 모든 사람들이 다 행복해야 한다를 중요시해요. 평가를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한다는 것이죠. 뭔가 실패가 있을 때 절대 개인에게 실패의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왜냐면 모두가 함께 한 거니까요. 한 명의 스타플레이어가 한 것을 따라간 게 아니니 아무도 혼자서 책임을 지지 않고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리지도 않습니다. 

 

뭔가 잘못되면 누군가 이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그들은 이유를 절대 찾지 않고 이 문제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나를 찾기 위해 전체 시스템을 들여다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소신대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직도 뭔가 퍼포먼스가 좋지 안다고 해서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습니다. 이게 아주 독특해요. 총대를 누가 메거나 그를 제거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우리는 그를 제거하고 그렇게 해결됐다고 착각하고 원인을 더 이상 찾지 않는데, 문제는 또다시 반복됩니다. 바로 이것이 개혁의 속도죠. 해결됐다고 묻어두지만 계속 진행 중인 거고, 그 문제는 반드시 다시 발생합니다. 이들은 한 개인을 제거하지 않지만 시스템의 어디가 잘못됐는지 살펴보기 때문에 결국은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게 100년이면 나라가 바뀐다는 거죠. 50년만 해도 두 세대 아닌가요? 

 

제가 한국과 핀란드를 비교하는 것은 거의 박사 논문감입니다. 공부를 더 한다면 이걸 쓰겠다 생각해요. 2차 대전 이후의 출발점이 우리와 너무 비슷해요. 핀란드도 내전을 겪고 사회주의와 비사회주의, 부르주아들 간의 내전이 장난 아니게 심했습니다. 내전을 겪었고 2차 대전 때 핀란드는 패전국이었고, 우리는 2차 대전 겪으면서 분단으로 나라가 무너졌다가 살아난 거고.. 스타트 포인트는 거의 비슷한데 어떻게 이렇게 두 개의 양 극단의 나라가 생겼을까.. 그게 바로 50년 동안 국가가 추구하는 바가 달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 그런 걸 느끼고 있고 지금부터 디지털 시대에는 훨씬 더 빠르고 많은 것이 빠르게 바뀔 것이니 앞으로 10년 20년이면 개조가 가능할 수 있고.. 그러면 우리가 현재 경제적으로 11위 하지만 정신세계가 고도화되면 경제도 더 따라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규모로 보자면 우리가 핀란드보다 10배 큽니다. 우리 5000만, 핀란드 500만, 경제 규모로 보면 10배 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선진국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핀란드를 선진국이라 생각합니다. 선진국의 기준이 결국 경제규모나 성장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진국의 기준은 경제가 아니라 정신세계인 것입니다. 우리의 그 ‘이물질’만 걷어내면 찬란하게 빛날 수 있으니까요.. 이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게 바로 그 얘기를 너무나 하고 싶었던 겁니다. 무명인 제가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는 책이었고.. 그래서 썼습니다.”

 


-우문인지 모르겠는데 핀란드 상위에 있는 영재들은 좀 손해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들은 미국이나 영국으로 유학을 갑니다. 평균에 있는 사람들은 핀란드 교육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상위에 있는 사람들은 답답해합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으니까요. 국가는 상위 사람들만을 만족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케어해야 할 사람은 중간과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인 거죠. 이런 면에서 저는 지금 우리 정부가 가고자 하는 큰 방향성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방법은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요.”

 

-핀란드 사람들의 심미안은 어디서 나올까요?

“일단 이들의 심미안은 평균적으로 굉장히 높아요. 저의 개인적인 해석은 주변에서 보는 것 때문, 즉 자연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일상에서 보는 자연이 너무 아름다워서 보는 눈이 자연스럽게 높아진다고 봐요. 그것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도 마찬가지고요. 

 

일례로 네이버 디자인하우스와 진행한 아트투어 때 디자인프레스(대표 이민형)와 함께 했고 이눅희 사진작가가 동행했어요. 덴마크와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는 이 작가에게 핀란드와 덴마크 시골이 어떻게 다른가 물었더니 핀란드는 온 국가가 잘 가꿔진 공원 같고 시골도 길거리도 조경을 해놓은 것처럼 놀랍게 깨끗하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데서 오는 온 국민의 심미안이라 할까요? 

 

본인들이 늘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자라고 깨끗한 관리 속에 살고 싶어 하고, 숲에서 목공을 직접 하고 손 훈련을 하면서 모든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디자인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여자든 남자든 목공 그림 뜨개질을 배웁니다. 초등학교 애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보면 그 수준에 깜짝 놀라요. 자연과 함께하는 교육에서 특히 손을 항상 사용하게 만드는데 이 손의 힘이 중요하죠. 


숲에 나가서 노는 것이 교육이라 계속 손을 쓰게 만들고 같이 보트 타고 생태 체험 다니고.. 아이들의 일상이 이렇기 때문에 자연 수과학이 발달될 수밖에 없습니다. 서머 코티지(휴가 별장)도 직접 만들어요. 이들에게 ‘중산층’이라 하면 집, 자동차, 보트, 서머 코티지를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직접 만들고 지을 수 있도록 모든 자재가 DIY로 나와 있습니다.   


한국 기성세대 남자들은 뜨개질하는 것을 이상하게(심지어 창피하게) 생각하지만 이들에게는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신기한 것은 요즘 한국 젊은 남자애들이 뜨개질을 배운다는 사실. ^^ 저희 아들도 학교에서 뜨개질을 배웁니다. 그만큼 우리 교육도 바뀌고 있는 거죠.” 


<다음 편 계속>



*김윤미 대표 프로필

현재 디지털라이제이션 담당 수석상무관

2015-2020 5월 : 주한 핀란드 무역대표부 대표

1992~현재 주한 핀란드 무역대표부(비즈니스핀란드코리아) 근무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정치학 석사

숙명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기타 :

Certified Management Consultant

<디자이너 마인드> 저자



사진 촬영; 전재호 Photograp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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