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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과 Apr 07. 2020

'고양이 액체설'에 대한 아주 자세한 이야기

프랑스 과학자의 일탈에 대해 직접 물었다

“이 상을 받겠다고 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노벨상을 거절하는 것은 멋있지만,
이그노벨상을 거절하는 건 전혀 멋있지 않으니까요”

- 마크 앙투안 파르딘의 2017 이그노벨상 수상소감-



세상을 가장 귀엽게 달군 가설, 고양이 액체설


고양이가 액체인 이유

1. 액체의 정의 : 용기에 따라 모양이 결정되지만, 부피는 변하지 않는 물질을 말한다.

2. 그러니 고양이는 액체이다.



상자 안에 들어간 고양이는 네모지고, 어항 속 고양이는 동그랗다. 고양이들은 자기가 몸담고 있는 통 모양에 꽉 찬다. 이 장면이 마치 녹아내린 것 같아서 고양이 액체설이 시작됐다. 고양이 액체설은 역사상 세상을 가장 귀엽게 달군 가설이었을 것이다. 집에 고양이를 키우든 아니든 관계없이, 전 세계 사람들은 고양이 액체설의 귀여움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한 사람은 고양이 액체설에 의문을 가졌다. 프랑스의 물리학자 마크 앙투안 파르딘 박사였다. 그는 물질의 흐름을 연구하는 유변학 분야의 전문가였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온라인을 뒤적거리던 파르딘 박사는, 우연히 ‘고양이 액체설’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됐다. 그는 곧바로 고양이 액체설의 허점을 발견했다. 꼿꼿이 모양을 유지하고 걸어 다니는 고체 상태 고양이를 배제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 유명한 가설의 허점을 역으로 이용해 사람들에게 유변학을 소개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당장 고양이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는 본격적으로 박사급의 딴짓을 하기 시작했고, 디테일한 말장난을 곁들여가며 논문의 탈을 쓴 이과의 농담을 써 나갔다.


고양이 액체설의 허점


고체, 액체, 기체는 뭘까. 고체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유지’이다. 그릇의 모양이 어떻든 자기 모양과 부피를 모두 유지한다. 말랑말랑할 수도 있다. 고무나 탱탱볼처럼 누르면 모양이 변하더라도, 다시 자기 모습으로 돌아오면 고체이다. 이런 성질은 탄성이라고 분리해서 말한다.


액체는 ‘적응’이다. 어디에 담든 부피는 일정하지만, 모양은 그릇의 모양과 같아질 때까지 흘러내려 딱 그만큼 적응한다. 평정을 찾은 고양이들한테서 자주 보이는 모습이다. 다만 고양이들은 물보다 훨씬 점성이 강하다. 꿀보다도 더 끈끈하게 뭉쳐있고, 쉽게 흐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기체는 ‘팽창과 압축’이다. 기체가 밀폐 용기에 담겨있다면, 기체의 부피는 용기의 부피와 같다. 열면 팽창한다. 열지 않고 용기를 누른다면, 압축된다.


고양이 액체설의 증거는 고양이 목격담과 사진들이다. 다양한 용기 모양대로 적응한 고양이 사진들은 온라인상에 넘쳐난다. 심지어 어떤 고양이 액체설 신봉자는 이렇게 말한다. 고양이는 계속해서 상자, 세면대, 냄비 등에 뛰어들어 녹아내리면서 자기가 액체임을 증명하는 것을 좋아하기까지 한다고.


근데 여기서 고양이 액체설의 허점이 드러난다. 냄비에 뛰어들고 있는 고양이는 액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튀어 다니는 걸 보면, 탄성 있는 고체처럼 보인다. 이제 조금 혼란해진다. 그렇다면 고양이는 고체인가 액체인가? 돌아다니는 고양이는 고체, 다 녹은 고양이는 액체? 그렇다면 녹아내리고 있는 고양이는 어떤가? 모순이 생긴다.



물질의 상태는 시간문제다


‘모든 것은 흐른다.’

유변학자들의 농담이자 모토이다. 단단한 물질이라도 결국 흘러내린다는 뜻인데, 나름의 근거도 있다.


파르딘 박사는 오묘한 물질을 연구하고 있었다. 장난감 슬라임같이, 만지면 묘하게 단단해지다가 가만히 두면 주르륵 흘러내리는 물질이었다. 고체와 액체 사이, 혹은 고체이면서 액체인 성질을 가진 것들이었다. 유변학에선 이런 성질을 ‘점탄성’이라고 말한다. 

점탄성 물질에 대한 설명은 고양이에 대한 묘사와 비슷하다. 탄성 있는 고체처럼 상자에 뛰어든 고양이가 조금 시간이 지나면 상자모양으로 흘러내리는 장면 말이다. 이걸 토대로, 파르딘은 ‘고양이는 점탄성이다’라고 일축할 수 있었다.


파르딘은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그는 고양이가 얼마나 액체에 가까운지, ‘정도’의 문제를 따져보기로 했다. 이 질문은 고양이가 얼마나 빨리 녹아내리는가? 라고 바꿀 수 있다. 금방 녹아내릴수록 액체에 가깝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고양이를 들어서 상자에 내려놓았을 때, 고양이가 상자 모양이 되며 늘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따져보아야 한다. 파르딘 박사의 관찰 결과, 보통 고양이는 1초~1분이면 녹아내린다고 하나, 아기고양이의 경우 수 시간동안 뛰어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즉, 고양이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액체에 가까워진다.


과학자들의 관점에서 고양이가 어떤 물질인지 안다는 것


유변학으로 고양이라는 물질을 이해한다는 건, 고양이가 흐르는 규칙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태어난 지 365일 된 5kg의 고양이를 상자에 내려놓았다’라는 조건이 주어졌을 때 ‘고양이가 다 녹을 때까지 3초가 걸릴 것이다.’라고 예측할 수 있게 된다면 인류는 고양이의 흐름에 대해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고양이와 규칙은 애초에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실제로 많은 고양이 집사들은 고양이를 점성과 탄성의 관점에서 분석하지 못한다. 언제 녹아내릴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파르딘은 고양이가 보이는 여러 현상을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 콧물 같은 고양이, ‘묘’세관 다리(‘cat’pillary bridge)


벽과 침대 사이에 고양이가 끼어있는 상황. 파르딘은 이걸 모세관 다리 현상으로 봤다. 모세관 다리 현상은 코푼 휴지를 확인할 때 흔하게 관찰할 수 있다. 콧물은 벌린 양 면에 붙어 쭉 늘어지면서 얇은 관 모양으로 늘어진다. 이런 현상을 모세관 다리라고 한다. 휴지를 계속 벌리다 보면 어느 순간 콧물 다리는 탁 끊어진다. 끊어질 때의 물리적 상황을 정확히 측정한다면, 콧물의 표면장력을 구할 수 있다.


고양이가 끼어있는 침대를 밖으로 살살 빼면 어떻게 될까? 바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고양이 양 옆구리 사이는 길어지고 머리와 다리 사이는 점점 가까워지면서 어느 지점까지는 고양이가 벽과 침대를 연결하고 있을 것이다. ‘묘’세관 다리가 생기는 장면이다. 고양이와 닿은 벽면과 침대는 각각 콧물이 묻은 휴지의 양 면과 같으며, 고양이는 그 사이 콧물과 같다. 이 상황에서 고양이는 점성 있는 액체처럼 군다.

침대와 벽이 더 멀어지면 고양이는 점점 옆으로 길어지다가, 더 이상 그 사이를 잇지 못하게 된다. 이건 콧물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는 묘세관 다리 현상을 이용해 고양이의 표면장력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2. 케첩같은 고양이, 항복 응력


한번 병에 담긴 고양이는 병을 웬만큼 기울여도 잘 흘러나오지 않는다. 탈탈 털어야 나오는 케첩처럼,  힘을 많이 줘서 흔들어야 가까스로 빼 낼 수 있다. 이런 성질을 항복 응력이라고 부른다. 마치 표면에 고무 막 이라도 만들어지는 것처럼, 어느 정도까지는 힘을 받아도 원상복구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3.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


물질의 성질을 이야기할 때 ‘좋아한다’, ‘친하다’는 말은 잘 섞인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물과 잘 섞이거나 물이 잘 스며드는 것들을 친수성이라고 한다. 반대로 물과 잘 섞이지 않는, 물을 싫어하는 것들은 소수성이라고 부른다. 일단 고양이는 소수성이며, 물과 접촉면적을 최소로 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만약 어떤 물질이 물을 극도로 싫어한다면, 그 물질은 초소수성이라고 한다. 연잎은 표면의 독특한 구조 때문에 초소수성을 띤다. 연잎 표면에는 미세한 나노 돌기가 있는데, 이것 때문에 물방울이 면에 안정적으로 붙지 못한다. 따라서 연잎 표면의 물방울은 유난히 동그랗고 반짝거리다가, 기울이면 구슬처럼 굴러떨어진다. 고양이가 초소수성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4. 고양이를 싫어하는 바구니?

물의 경우, 고양이의 의식과 고양이라는 물질이 모두 물을 싫어한다. 그러나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몸보다 훨씬 작은 바구니에 들어가 있는 고양이가 그렇다. 

파르딘은 고양이를 가득 담다 못해 넘쳐흐를 것만 같은 바구니 사진을 하나 발견했다. 그런데 고양이는 넘치지 않고, 상당히 둥근 모양을 띠며 바구니에 담겨 있다. 컵에 물을 가득 따랐을 때 물 표면이 볼록해진 상황과 비슷한데 훨씬 극단적인 상황인 것이다.


어떻게 이 정도가 가능할까? 바구니가 초소’묘’성(super’felida‘phobicity) 물질로 만들어졌다면 가능하다. 연잎 위 물방울처럼 고양이가 둥근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을 보니, 바구니와 고양이 분자들이 서로 강하게 밀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고양이의 표정을 보면 바구니를 아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참 아이러니하다.


고양이의 유변학


‘고양이의 유변학’은 역사상 가장 말장난이 많은 논문일 것이다. 이 연구는 여러모로 일반적인 연구와 달랐다. 동물 연구 과정에서 단 한 마리의 고양이도 다치지 않았다는 점도 그렇고, 딱 하루 만에 이 연구를 끝냈다는 점도 그렇다. 파르딘은 이 논문 같지 않은 논문을 1,700명 정도의 회원을 가진 유변학 학회의 정기 회보에 기고했다.


그리고 보다시피, 반응은 그의 상상 이상이었다. 이 논문의 영향력은 유변학계 밖으로 흘러나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파르딘은 고양이를 매개로 사람들의 유변학 입문을 유도했을 뿐 아니라, 단조로운 과학계에 웃음이라는 파장을 일으키는 데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마크 앙투안 파르딘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 보았다, 왜 이 연구를 하시게 된건가요?>


2019.12.17 오후 6:28

From. 마크-앙투안 파르딘


안녕하세요!

제 고양이 연구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신 질문에 답변해드릴게요.


Q. 고양이의 유변학’ 아이디어가 떠오른 순간이 언제였나요?

A. 그때 전 일을 미루고 멍청한 블로그들을 사이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고양이가 액체인 15가지 이유’라는 기사에 도달했어요. ‘흐름’이 주 연구 분야인 과학자다 보니, ‘이 재밌는 예시들로 사람들이 유변학의 중요한 개념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쓰신 말장난과 농담들이 너무 재밌었습니다. 그런데 과학 논문에서 그런 말을 처음 봐서 충격을 받았거든요. 어떻게 이런 용기를 내셨어요?

A. 지루해서요. 과학 논문들의 형식은 굉장히 천편일률적이고, 지루합니다. 전 풍자적 논문을 쓰면서 이 틀을 잠시 벗어날 기회를 얻은 거죠.


Q. 이 연구를 끝내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리셨나요?

A. 하루가 채 안 걸렸어요. 글을 쓰기 시작한 그날 밤에 끝났습니다.


Q. 고양이를 키우시나요? 아니면 특별히 신경 쓰는 고양이가 있나요?

A. 키우는 고양이는 없어요. 다만 친구나 가족들이 키우는 고양이는 좋아해요.


Q. 고양이의 유변학을 제외하면, 어떤 분야를 연구하시나요?

A. 박사과정과 박사 후 연구원 때는 ‘점탄성’물질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지금은 파리 디드호대학의 자크 모노 기관에 연구원으로 있고, 여기서는 세포와 조직이 어떻게 붙어있고 움직이는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 마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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