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자의 예술 전시 관람법
예술의 전당 관계자는 아시아 최초 전시를 열기 위해 일본과 경합했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했다. 인구 수로 보나 미술 시장에서의 지위로 보나 여러모로 뒤처지는 한국이 어떻게 유치했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검색해 봤지만 인터넷에서 접근할 수 있는 자료로는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었다. 사실, 그림만 보면 됐기에 전모가 큰 관심사는 아니었다. 표의 일부분이 뜯기면서부터는 한가람미술관 뒷이야기를 까맣게 잊었다는 게 그 증거였다. 시간을 들여 눈여겨볼 작품 몇 개를 미리 정해놓은 터였고, 그중 유디트(Judith 1)를 볼 차례였다. 유디트가 걸린 벽면이 보이자마자 명절 연휴 마지막 날 경부 고속도로를 기어가는 차들처럼 서행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팜 파탈의 대명사이며 클림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유디트는 성서 속 인물이다. 그가 살던 사마리아 부근의 마을이 앗시리아 군대에 점령당하자 적장을 유혹했고 침실에서 죽이는데 성공했다. 마을을 그가 지켜냈다. 돈을 약속받고 주문받아 그린 인물화가 아닌 이야기 속 주인공을 해석한 작품이라 인기가 더 많으리라 짐작했다. 유디트 주변은 나들목에 정체된 차들처럼 관람객이 몰려있었기에 일단 멀찍이 떨어져 지켜봤다. 앞에 놓인 수많은 흉상의 뒷모습에 작품 아래쪽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유디트는 유디트였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물 대신 오렌지 주스가 나오는 대중탕에 온 듯했다. 한 욕탕의 해바라기 샤워기 밑에서 고개를 젖혀 주스줄기를 맞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단둘이 좀 더 가까이 있고 싶어서 몇 십분을 기다렸다. 그 시간 내내 그에게 반해 넋 놓고 우두커니 서있던 건 아니었다. 정면에서 볼 때만 미인은 미인이 아니다. 보는 각도를 달리해보았다. 이쪽에서 볼 때는 이렇네 저렇네 하며 머릿속에서 나름의 점수를 매겨보았다. 가까워지기까지의 무료함을 달래는 방법이기도 했다.
하나 고백하자면 잠시 정신을 딴 데 팔았다. 다른 여자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는 영국 코벤트리 지역에 얽힌 이야기의 주인공인 고다이바 부인이었다. 영주인 남편이 살인적인 세금을 부과하자 백성의 생활이 힘들어졌다. 마을 주민을 사랑한 고다이바 부인이 세금 감면을 부탁하자, 그녀를 비웃듯이 남편은 무리한 제안을 했다. 벌거벗은 채로 영지를 한 바퀴 돌고 오면 청을 들어주겠노라 했다. 알몸으로 성을 나선 부인의 마음에 감동한 주민들은 하루동안 그 누구도 거리로 나서지도, 창밖을 보지도 않았다. 이에 감동한 영주는 그녀의 청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유디트가 그려진 시기와 비슷한 때, 존 콜리어가 고다이바 부인을 묘사한 작품이 있다.
외적으로는 긴 곱슬머리의 뽀얀 피부를 가진 고다이바 부인이 여러모로 취향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반면 유디트의 헤어스타일은 아프로펌처럼 보였다. 펑크스타일의 머리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배꼽 위치도 거슬렸다. 왼쪽 젖꼭지와 희미하게 보이는 오른쪽 젖꼭지의 정중앙에 주욱 그어내린 가상의 선보다 배꼽이 왼쪽으로 조금 치우쳐 있다는 걸 발견한 이후로 도무지 그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남자로서는 ‘침실에서 관계 중에 죽는다’는 사실도 섬뜩하다고 생각했다. 별건 아니지만 섹스를 하는데 황금 초커(목 장신구)의 용도는 대체 무엇인가 신경 쓰이기도 했다.
작품의 한 걸음 앞에 섰다. 이제는 오렌지 향조차 나는 듯했다. 딴지를 걸던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다양한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둘 중에 어떤 그림에 최고 호가(呼價) 팻말을 들어 올릴 건지 묻는다면 단연 유디트였다. 그 이유는 태도였다. 둘 다 옷을 벗어 목적을 이뤘으나 과정에서 차이가 났다. 자애로운 고다이바 부인은 남편의 제안에 순응해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나체로 말을 타고 나섰을 때는 긴 머리로 자신의 몸을 가렸고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고개를 숙인 채였다. 표정 같은 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녀의 왼손은 고삐를 잡았다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없어 보인다.
유디트는 아니었다. 유디트는 수성(守城)에 성공했다기보다는 적국을 정복하여 무릎 꿇리고 돌아온 개선장군처럼 보인다. 살짝 치켜든 고개가 그 태도의 시작이다. 양눈썹뼈와 콧대를 연결한 T존이 빛나며 강인한 인상을 준다. 여체를 묘사한 그림은 보통 곡선이 대부분이다. 유디트는 다르다. 직선으로 턱선을 강조해 얼굴의 다른 부분과 잘 어우러진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투구를 씌워보고 싶게 생겼다. 가슴 따위는 드러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무심하게 반만 걸친 가운도 당당함을 나타낸다. 또 역사적으로 줄곧 전리품에 지나지 않았던 여성이 도리어 적장의 머리를 왼편 옆구리에 끼고 있다. 남자는 (남자의 머리뿐이지만) 유디트에게 악세사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잘린 머리통도 반만 드러나있다. 오렌지 주스가 쏟아져 내리는 샤워란 여기서 비롯한다. 승리의 달콤함과 여성 상위라는 전위의 산뜻함이 어우러진 맛과 향이다. 오렌지 주스를 마시면 그전엔 입안에 무얼 집어넣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유디트 앞에서도 그렇다.
그를 바로 앞에 두기까지 기다린 시간보다 마주한 시간이 좀 더 길어졌을 즈음이었다. 남자는 목욕탕에 오래 안 있는다. 그제야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졌다. 기다림과 독대가 몇 번 반복되었고 전시장을 나와서야 어두워진 하늘을 발견했다. 중간고사가 다음 주라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전시를 꼭 보러 가야겠다는 결심이 서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이유와 같았다. 향후 백년 이내에 같은 규모로 열릴 일이 없다는 주최 측의 설명이 한 몫했다. ‘같은 규모로 열릴 리가 없다’는 뜻은 가장 많은 그림을 보낸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과 클림트 작품을 소장한 전 세계 부호들이 합의를 본 의견이었다. 작품의 훼손 정도를 걱정해 이 전시가 아시아 최초이자 마지막인 세기의 전시회라는 게 홍보 꼭짓점 중 하나였다. 거기에 더해 나는 오렌지 주스 샤워를 맛보았기 때문이었다.
유디트1 - 구스타브 클림트 1901
고다이바 부인 - 존 콜리어 18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