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할 때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 중 하나는 ‘책’이었다. 책 욕심이 많은 남편은 어디를 가든 책을 사 모았고, 특히 유학 시절 여러 지역을 여행할 때도 헌책방은 우리 가족이 꼭 들르는 필수 코스였다. 여행지가 늘어날수록 그의 서가는 영국의 고서들로 점점 채워졌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그 책들을 보내기 위해 내 짐 대부분을 포기해야 했다. 결국 배편으로 보낸 3큐빅의 이삿짐 중 2.5큐빅이 영어 원서들로 채워져 한국에 도착했다. 돌아와 보니 한국에 원래 있던 책들과 새로 들여온 대량의 원서들로 집은 금세 공간이 부족해졌고, 결국 모자란 공간은 친정 집 창고에까지 빌려 채워야 했다.
그렇게 여러 사연을 품고 모아진 책들은 집 안을 점점 좁게 만들었고, 답답함은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책이 너무 많아 어떤 책이 어디 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았고, 필요한 책을 찾으려면 먼지 쌓인 박스를 뒤적거려야 했다. 집에 책이 산더미처럼 놓여 있음에도 나는 오히려 도서관으로 향했다. 빌릴 수 있는 최대 권수를 채워 빌린 뒤, 반납일을 맞추기 위해 속독을 하거나 필요한 부분만 급히 읽고 다시 반납하는 일을 반복했다.
이사를 거듭하며 고서들은 망가지기 시작했고, 친정 집 창고에 보관한 책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훼손되어 갔다. 책이 많아질수록 그것들은 ‘읽는 것’이 아닌 ‘장식’으로 변해갔다.
그러다 미니멀 라이프를 접하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나는 몇 달 동안 남편을 설득했다. 정말 읽을 책만, 책장 한 칸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는 정리하자고. 오랜 시간 설득 끝에 결국 남편도 동의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책이 집에 쌓여 있으면 ‘언젠가는 읽겠지’라는 마음만 남고, 결국 책들은 제자리에 놓인 채 먼지만 쌓이게 된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반납일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지금’ 읽게 된다. 나에게는 이 방식이 훨씬 자유롭고 가벼운 삶을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