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핑 도는 그 자리에서, 내가 다시 배운 것들.
첫째 날, 나는 시드니 공항에 도착해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울릉공으로 향했다.
창밖으로는 화창한 날씨 아래, 키 작은 가정집들과 크리켓인지 럭비인지 모를 야외 경기장이 보였다.
여행의 묘미는 셀 수 없이 많지만, 가장 짜릿한 순간은 출국 직전과 입국 직후의 그 설렘 아닐까.
반구를 가로지르는 긴 비행 끝에 익숙한 배경에서 벗어나 마침내 호주의 공기와 풍경이 몸에 스며들기 시작하니, 그제야 스스로에게
‘이제는 한국에 두고 온 일거리와 걱정거리들을 잠시 잊어도 괜찮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시드니 남쪽으로 1시간가량 내려가면 나오는 해안마을인 울릉공에 갔다. 울릉공은 호주 원주민어로 ‘바다의 소리’라는 뜻을 가진다. 볼드힐 전망대에서 와타몰라 해변을 보니 근교 투어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복학 전 여행을 통해 정신을 맑게 하고 몸과 마음을 휴식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 모토에 딱 맞는 여행지는 단연 호주였다. 지난번에 왔을 때 브리즈번과 시드니를 여행했는데 완전히 도시 관광이었다면 이번에는 시드니를 중심으로 근교를 도는 일정이라 더욱 마음에 들었다.
호주의 은퇴자들 중 다수가 이 마을에 와서 노후를 꾸린다고 한다. 평화롭고 한적한 자연과 나쁘지 않은 인프라 때문인 듯하다. 나는 시드니 중심보다 탁 트인 하늘과 언덕,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근교가 참 마음에 들었다. 광안리 앞바다에 거주했어서 해안마을의 매력을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붕이 있는 낮은 집들과 푸릇푸릇 한 언덕이 바다와 함께하는 자연경관은 또 색달랐다.
해안마을의 시내를 둘러보지 못하고 바로 보우럴마을로 이동했다. 이곳에서의 식사가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버거앤칩스로 허기를 달래주고 마을을 둘러보던 중, 깜짝 놀란 일이 생겼다. 공원이 있어서 무심코 들어가 드넓게 펼쳐지는 전경에 반해 사진을 수차례 찍었다. 그러고 나서 웬 기념비지, 하고 봤더니 세상에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였다!!!!! 호주의 한국전쟁 전투로 가장 잘 알려진 건 1.4후퇴 이후 벌어진 가평전투이다. 호주 3대대가 가평 전선을 사수하고 중공군을 물리친 전투인데 지금까지도 호주의 3대대는 가평부대로 불린다고 한다. 하여튼 시드니도 브리즈번도 캔버라도 아닌 이 작은 알지도 못했던 보우럴 마을이라는 곳에서 갑작스레 만나게 된 참전용사 기념비는 반갑기도, 가슴이 미어지기도, 뜨거워지기도 했다.
최근 한국사 자격증 공부를 했는데, 내 MBTI가 극F라서인지, 생일이 하필 6·25라서인지, 성격이 정 많고 여려서인지, 애국심이 넘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원 간섭기, 일제강점기, 6·25전쟁 같은 장면들을 공부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분해서 울고, 감동해서 울고, 그래서 결국 원하는 점수를 못 받았다는 핑계도 댈 만큼 몰입했었다.
그렇게 진심을 다해 공부하고 떠난 여행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국전쟁 기념비라니. 나에겐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핑 도는 눈물을 감추려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애국가를 4절까지 열창했다.
해외여행을 다니며 “아,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해봤지만, ‘애국심’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한국사 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과몰입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기념비의 글자를 읽지 않았더라면 그저 스쳐 지나쳤을 기념비 하나.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걸 ‘기념비 하나’로 넘길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자유로운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감사한 마음. 우연한 배움의 복기에서 비롯된 새로운 배움의 갈증. 어디서든 배우고 느끼려는 나 자신이 대견하고, 그런 마음을 품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까지—모두 놓칠 뻔한 소중한 감정들이었다.
여행은 단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면서 쏟아온 시간과 감정들까지 데려오는 일인지도 모른다.
첫째 날, 뜻밖의 감동과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