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강제 쇼핑

역시 내가 필요하지?

by 여름

남편의 2박 3일 출장날이다. 주말부부를 하니 출장이 별 의미가 없다. 평일에 못 보는 건 똑같으니까. 남편이 윗지방까지 다녀오려면 피곤하겠다 생각할 뿐이었다. 저녁쯤 광명역에 도착한 남편이 사진을 한 장 보내 왔다. 탑텐 종이가방에 뭔가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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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바지 샀어. 필요한 걸 다 챙겨두고 마지막에 가방에 담는 걸 깜박했잖아. 충전기도 두고 오고 바지도 빠뜨리고. 하마터면 내일 내복만 입고 출근할 뻔했어.


남편의 호들갑스러운 하소연에 피식 웃음이 났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옷을 입으려는데 내복과 추리닝만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면. 순천에 두고 온 바지를 떠올리며 난감해했을 표정이 상상되었다. 남편에게 무심한 위로를 전했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진짜 다행이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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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남편이 인천에 2박 3일 출장을 간다고 했다. 기차표를 예매하고 연습장에 준비물 목록을 써서 짐을 꾸렸을 거다. 바지와 휴대폰 충전기를 가방에 넣으려고 선반 위에 꺼내뒀을 테고, 챙겨야지 생각했다가 결국은 여행 가방에 담는 것을 깜박하고 부랴부랴 나왔을 거다.


아쉬웠다. 차분하게 잘 챙겼겠지 생각했는데. 내가 옆에 있었으면 빠뜨리지 않게 잘 챙겨줬을 텐데. 남편 혼자 역에서 허둥지둥했을 걸 생각하니 짠해졌다. 마흔이 넘은 어른이니 스스로 잘 챙기는 것이 맞지만, 떨어져 있어 챙겨주지 못하는 것들에는 괜스레 안쓰런 마음이 든다. 그러면서도 역시 내가 필요하다니까, 괜한 뿌듯함도 느낀다. (어쩌면 그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다.)


덕분에 남편이 오랜만에 쇼핑을 했다. 어쩌면 새 옷을 잘 사지 않는 남편에게는 잘된 건지도 모르겠다. 짐을 덜 챙긴 덕분에 강제 쇼핑을 하게 됐으니까. 다음번에는 출장 가기 전, 한번 슬쩍 물어봐야지.


여보, 옷이랑 충전기 잘 챙겼지?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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