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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습관 사이

매일글쓰기 4: 최근에 잃어버린 것 혹은 잊어버린 것

by 여름

외출할 때마다 몇 번씩 집안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외출하고 돌아온 뒤 혼자서 빈 거실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전등을 봤을 때, 가스불을 켜놓고는 다른 일을 하다 냄비 물이 바닥까지 졸아 지글지글 끓고 있는 것을 봤을 때, 깜박하고 선풍기 끄는 것을 잊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숨어있던 불안이 고개를 내밀었다. 어쩌려고 그래, 확인을 제대로 했어야지, 탓을 하는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외출 전 집안 곳곳을 확인하려고 머무는 시간이 10분쯤 더 늘어났다. 큰방 전등을 확인하고, 서재방 스위치를 한 번 더 눌러보고, 주방 가스레인지를 확인한 후 밸브가 잠겼는지 보고, 아이들 방으로 향한다. 큰방을 확인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서 다시 들어가 본다. 주방이 어땠는지도 잊어버렸다. 아, 외출한 사이에 혹시 비가 올 수도 있으니 베란다 문도 닫아둬야겠다. 갑자기 화분이 시들어있는 게 눈에 띈다. 호스를 들어 시원하게 물을 준다. 서너 차례 집안을 종종거리며 둘러보고 확인한 후에야 종종거리며 현관으로 나설 수 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도어록이 잠기는 소리를 듣고서도 손바닥으로 다시 문을 꾹꾹 눌러본다. 직접 만지고 확인해야 마음이 안정돼서다.


습관과 불안 사이에서 갈팡질팡이다. 한 번만 확인해도 충분할 텐데, 방금 전에 본 것이 기억나지 않는다. 가스 불이 꺼져 있었나, 밸브를 잠갔던가, 베란다가 활짝 열려 있지는 않았나, 현관문은 잘 닫혀 있는 거겠지.


가족들은 밖에서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는 왜 맨날 늦는 거야? 아이들과 남편은 의아하게 생각한다. 집안을 여러 번 돌아다니고 확인을 해야 마음이 편해진다는 걸 말하기가 왠지 쑥스럽다. 엄마를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면서도 확인하는 습관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글을 쓰면서 내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불안한 마음과 적당히 타협하고 싶다. 시간에 쫓기며 종종거리는 게 버겁기도 하니까. 전등은 켜져 있어도 괜찮으니, 이제 가스레인지만 두 번 확인하고 나가는 건 어떨까? 불안을 담은 채 문을 나서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어쩌면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모른다.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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