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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현 Oct 13. 2020

엄마 집엔 있고, 내 집엔 없는 것.

     두 달하고 보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수원 친정집에서 7주를 산호세 시댁에서 3주를 지냈다. 나에겐 참으로 긴긴 여행이었다. “한동안 어른들 집에서만 지내다가 너희 집으로 돌아가면 많이 낯설 거야.”라는 시어머님의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인사드리고 나올 때는 몰랐다. 집을 떠나온 지가 오래되었기에 그저 내 집으로 빨리 돌아가고픈 마음뿐이었고 내 집도 목이 빠지도록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토록 그리웠던 우리 집이었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희한하게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반가워서 와락 안기려는 나를 데면데면한 얼굴로 어색하게 맞이하는 우리 집. 분명 모든 건 떠날 때와 다름없이 그대로인데 어머님 말씀처럼 어딘가 모르게 낯설었고, 무언가가 확실히 빠져 있는 듯 보였다. 친정집과 시댁과는 달리 우리 집에는 집을 집답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없어 보였다. 남편과 내가 3년 동안이나 살았던 공간인데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 없는 채로 살았길래 우리 집이 이렇게 허전해 보이는 걸까. 10주 만에 드디어 돌아왔는데 폭 안기고픈 포근함이 어째서 느껴지지 않는 걸까.


     짐을 풀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면서 낯선 우리 집에 구석구석 눈을 맞추며 생각했다. 엄마 집에는 있고 내 집에는 없는 그 무언가를. 그러다 우리 집에는 사람 사는 곳이라 할만한 질서가 없다는 것이 보였다. 3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만큼 우리 집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없었다. 30년 살림 내공이 쌓여 있는 친정집과 시댁에 어느새 익숙해진 눈으로 새롭게 들여다본 나의 세간은 말하자면, 에어비앤비 하우스에서 구색만 맞춰 진열해놓은 소품 같았다. 집안 곳곳에 놓인 살림살이 하나하나가 뭐랄까. 집에 착 달라붙어 있지 않고 여기 있어도 그만, 저기 있어도 그만인 자세로 궁둥이를 제대로 못 붙이고 있는 형상이었다. 가구는 대충 그쯤이면 마땅해 보이는 위치에 놓여 있고 청결도는 대략 이 정도면 깔끔해 보이는 수준으로 정리 정돈되어 있었다. 거주인이 온전히 녹아들지 않아 집다운 안락함이 없는 집이 바로 우리 집이었다. 이 집에서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실은 정 붙일 마음 없이 살았는데, 그게 이렇게 티가 날 줄이야.




     북가주에 위치한 산호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내 남편은 나랑 부모님 댁에 다녀올 때면 ‘적어도 2~3년 안에는 꼭 산호세로 올라오자’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오는 순간이면 더 뿌듯한 표정을 짓기도 하면서. 아마 나였어도 그랬을 거다. 내 성장 과정이 오롯이 남아 있는 옛 동네에 부모님께서 여전히 살고 계시고, 언제라도 부르면 기꺼이 나올 수 있는 고향 친구들 모두가 그곳에 있다. 더군다나 산호세와 가까운 샌프란시스코에는 남편이 이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더불어 이 핫한 도시는 집값이 날로 오르고 있기 때문에 나였어도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부부에게는 샌디에고에서 산호세로 가는 계획이 당연해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발 붙이고 있는 남가주의 샌디에고, 그리고 우리 집을 나는 단 한 번도 오래 머무를 곳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래 정 붙이지 않을 요량으로 살면서 언제 짐을 꾸려도 상관없는 심상으로 지냈다. 마치 미니멀 라이프를 실현한 듯이 말하지만 실상은 겉으로 보이는 곳만 대강 치웠으며 속은 엉망이었다는 거다. 예를 들어 서랍장은 엄격한 구분이라던지 우리만의 질서 없었기 때문에 아무리 정리를 한다고 해도 흐트러지기 십상이었다. 오늘 당장 무빙 박스에 서랍장 그대로털어 넣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주방도 사정은 마찬가지. 딱히 눈에 띄지 않으면 유심히 살피지 않았기에 부엌 구석에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바닥에 늘러 붙은 양념 따위를 힘들여 닦는 일은 당연히 없었다. 남편과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청소하는 걸 최선이라 여기며 웬만한 무질서는 서로 눈감아주며 살았다. 속으로는 내가 눈감고 지나간 얼룩을 남편이 언젠가 나 모르게 닦아주길 바랐지만 그런 착각은 그 역시 나를 향해 품고 있었고, 그걸 결혼 3주년이 다가오는 이제사 서로 알았다. 곧 이사 나갈 그날이 얼마나 가까운 미래일지도 모른 채로, 남편의 직장 상황에 따른 불확실한 사정은 애석하게도 매년 반복됐다. 그럼에도 매해 우리는 ‘내년 말’쯤이라 어림잡아 생각하면서 우리 집에 정 붙이기를 계속 미뤄왔다.


     나만 매정하게 살아온 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우리 집을 샅샅이 살펴보니 이 집에도 싸늘한 구석이 꽤 많다. 쓸고 닦고 소독하고 팔팔 삶기까지 하면서 온기를 조금씩이나마 채워 넣고 나니까 꼬질꼬질하던 곳들이 이내 반질거리고 흐트러져 있는 게 일상이었던 곳들은 나름의 제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거실은 제법 포근하게도 보인다. 눈길 준 적 없던 자리에 일일이 눈을 맞춰보고 나니까 내가 우리 집 구석구석을 오래 바라본 적이 별로 없었다는 걸 알았다. 이곳에 정 붙이고 살면 떠나왔을 때 그리워서 마음 닳을까 봐,라고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최소한의 애정만 쏟았던 것이다. 그런다고 이 집에서 우리가 빚었던 추억과 할퀴었던 상처가 덜 기억날 일도 없을 텐데 참으로 괜한 짓이었다. 얼마나 금방 샌디에고를 떠날지 모르지만 남은 시간이 일 년이 되었든 한 달이 되었든 내 하루가 쌓일 공간인데 내가 참으로 함부로 대했다.


     떠날 생각만 하면서 곁을 주지 않은 나를 그래도 품고 살아준 우리 집에게 새삼 고마울 지경이다. 이 집을 계약할 때 집이 지어진 시점이 내가 태어나고 후년이었다는 걸 듣고서 그저 낡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애틋해진다. 서른 살 먹은 우리 집. 이 집을 이제는 새로이 보면서 열렬히 사랑해볼 참이다. 정들지 않으려는 헛된 노력이 후회로 남지 않도록 말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 집도 울엄마 집처럼, 시어머님 댁처럼, 사람 사는 집처럼 포근한 냄새로 안락해지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미국이란 땅에 착 달라붙어 뿌리내리고 살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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