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습을 깨야만 차별화되는 것일까?
우리는 남들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특별해야 하는, 모순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 평범함이라는 안전지대와, 그 너머의 혁신과 차별화라는 모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이 현대인의 숙명처럼 느껴진다.
나 역시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과제를 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남들과 다른 나만의 강점을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밤을 지새우곤 했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관습’을 깨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믿었던 적도 많았다.
이런 고민 속에서, 최근 케이팝 시장에 등장한 하츠투하츠(Hearts2Hearts)는 관습과 차별화의 경계에서 새로운 해답을 제시하는 팀으로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SM엔터테인먼트가 선보인 이 팀은, 치열한 경쟁과 빠른 변화가 일상인 케이팝 세계에서 신선한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하츠투하츠의 이름 뜻은 이러하다:
“다양한 감정과 진심 어린 메시지를 담은 자신들만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음악 세계를 통해 마음을 잇고 더 큰 ‘우리’로 함께 나아가겠다”
하츠투하츠라는 이름에는 “다양한 감정과 진심 어린 메시지를 담은 자신들만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음악 세계를 통해 마음을 잇고 더 큰 ‘우리’로 함께 나아가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처음에는 ‘하츠투하츠’라는 발음이 익숙하지 않아, 일부러 발음하기 쉽지 않은 이름을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추상명사(이달의 소녀, 소녀시대)나 명확한 키워드(에스파, 레드벨벳 등)가 아닌, 문장에 가까운 네이밍을 선택한 점도 이채로웠다.
그러나 이 불편함 속에는 SM의 전략적 의도와 미학적 시도가 숨어 있다.
‘우리끼리만 통하는 감정의 공유(from heart to heart)’에서 비롯된 친밀감과 연대의 내러티브를 표현하기 위해, 이 이름이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또한, 문장적 표현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오히려 케이팝 시장의 틈새를 노린 전략으로도 읽힌다.
사실 나는 소녀시대-이달의 소녀-트리플에스로 이어지는 다인원 그룹에 대한 애정이 깊다. 그래서 하츠투하츠에 대한 호감도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SM의 정통성을 계승했다는 점 역시 나를 더욱 매료시켰다.
일반적으로 아이돌 데뷔곡은 그룹의 콘셉트와 이미지를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것이 업계의 관례다. 그러나 하츠투하츠의 「The Chase」는 이러한 전형성을 과감히 거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형성의 거부와 정통성의 유지는 별개의 문제다. 에프엑스의 ‘알 수 없는 소녀’ 지향점, 그리고 레드벨벳의 조화로운 보컬이 느껴지는 「The Chase」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즉각 ‘이건 틀림없이 SM이구나’라고 직감했다. 그렇다면 ‘SM스러움’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곧 ‘전통과 계보’다. 음악적 정체성과 계보를 통해 전통과 실험을 함께 가져가는 이니셔티브의 결정체가 바로 SM이다.
하츠투하츠의 등장은 이 맥락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많은 이들이 「The Chase」를 처음 듣고 호불호가 갈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밋밋하다”, “아쉽다”(특히 후렴이) 등 다양한 반응이 있었다. 나 역시 플로리다의 기숙사에서 처음 곡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다.
"신기하네 “
"뭔가 낯선데 낯이 익는 듯? "
「The Chase」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받은 곡이다. 인트로에서는 묵직한 로우파이 신스 베이스가 주를 이루고, 벌스에서는 몽환적인 화음과 벨 사운드가 섬세하게 레이어링된다. 후렴에서는 패드 사운드가 빠지고 신스 베이스와 챈팅이 강조되며, 분위기의 반전을 준다. 다이내믹한 전개보다는 일관된 분위기를 유지하고, 멜로디라인이 다소 평이하게 들리기 때문에 청자들 사이에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이 곡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NCT U의 ‘일곱 번째 감각’이 떠올랐다. 무한확장이라는 콘셉트로 첫선을 보인 당시의 정예 멤버들이 선보인 실험적 음악에 대한 청자들의 반응이 엇갈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뮤직비디오에서 얼굴을 각인시키는 것이 중요한 상황임에도,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구도를 선택하고, 대신 춤과 음악에 더 집중하게 만든 전략이 하츠투하츠에서도 엿보인다.
티저 영상만 봐도 이미 심상치 않았다. 티저에 등장한 보컬의 주인공은 2010년생 막내 ‘예온’. 케이팝 산업의 관습이라면 트레블 음역대의 보컬과 강렬한 비주얼, 스타일링으로 대중에게 첫인상을 각인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하츠투하츠는 평이한 멜로디라인과 읊조리는 듯한 저음역대 보컬, 잔잔한 랩으로 다가오는 음악적 내러티브를 선택했다.
아쉬운 점은, 많은 이들이 단순히 ‘좋다’와 ‘싫다’ 중 하나를 택하느라 감상의 본질을 놓친다는 것이다. 음악을 이분법적으로 평가하기 전에, ‘이런 선택을 한 의도는 무엇일까?’를 먼저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음악 감상에 이런 과정이 필수는 아니지만,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확장하는 데에는 이러한 접근이 더 풍부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이제 핵심으로 돌아가자. The Chase는 뮤직비디오 감독 윤송림이 언급했듯 '청사진'의 역할을 한다. 하츠투하츠가 지향하는 방향성을 암시하면서도 앞으로 서서히 펼쳐질 더 큰 그림의 일부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중의 예측을 비켜가는 시도는 필연적이며, 그 자체가 하츠투하츠의 미학이다.
윤송림 감독에 따르면, SM이 처음 제시한 키워드는 “미스틱(Mystic)”과 “걸후드(Girlhood)”였다.
Mystic: 미지성, 상징성, 실험적인 사운드, 그리고 궁극적으로 일상과 구분되는 머나먼 어딘가의 알 수 없는 이상향
Girlhood: 일상성, 정서적 연대감, 경험의 공유를 통한 대중과의 공감
이는 ‘Girlhood’의 대명사 소녀시대와 ‘Mystic’의 상징 에프엑스 사이의 중간지점을 모색하는 시도로 보인다. 또한, 컨셉츄얼한 에스파와는 달리, 자연스럽고 친근하며 따라 하기 쉬운 캐주얼함을 내세운다. 궁극적으로는 레드벨벳의 미학적 확장이자 변주라 볼 수 있다.
소녀시대의 ‘정’, 에프엑스의 ‘반’, 그리고 이 둘의 조화를 지향한 레드벨벳의 ‘합’을 넘어, 11년 만에 진화한 하츠투하츠는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탈관성을 제시한다. 바로 관성에 반하기 위해 오히려 관성을 택하는 역설적 전략이다.
뮤직비디오를 살펴보면 이런 전략이 분명히 드러난다. 초반 제주도의 자연 속에서 시작해 버스를 타고 점차 도시로 향하는 흐름은 기존 관념을 비튼다. 많은 아이돌들이 ‘자연’을 현실 탈출의 공간으로 그려왔다면, 하츠투하츠는 오히려 ‘자연’을 관성으로, ‘도시’를 탈출구로 설정한다. 이는 ‘탈관성’의 ‘관성’을 역으로 전복시키는 시도다.
특히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스쿨버스’는 이런 전략의 핵심 상징이다. 정해진 루트를 벗어나지 않는 전형성의 상징이자,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인 버스. 그러나 뮤직비디오에서 버스에는 운전자가 없다. 멤버들은 자유롭게 버스에서 내리고 타며, 스스로 목적지를 정한다. 이는 관습을 부정하기보다, 일상에서의 탈출 도구로 관습을 역이용하는 행위에 가깝다.
한편, 멤버들이 도착한 도시의 배경에 대해서도 주목해보자. 뮤직비디오에 나온 "도시"의 장면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의 중앙연구소 '한국테크노돔'에서 촬영하였으며, 소녀시대의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에 대한 오마주를 위해 SM에서 직접 로케이션을 요청했다고 알려져있다. 「다시 만난 세계」에서도 당시 아홉 명의 멤버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꿈을 향해 노력을 하는 모습이 따로 묘사된 이후에, 한 군데의 장소에서 하나가 되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 오마주는 SM의 오래된 팬덤 "핑크 블러드"에 대한 팬서비스를 넘어, 하츠투하츠가 SM의 30년 역사와 계보 안에 자신들을 명확히 위치시키는 전략적 행보라고 볼 수 있다. 소녀시대가 희망과 역동성이라는 '관습적' 메시지로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면, 하츠투하츠는 그 출발의 상징적 공간을 빌려와 자신들만의 '비관습적'이고 신비로운 서사를 시작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탈관성'의 미학이 빛을 발한다. 가장 상징적인 '관습'(선배 그룹의 유산)을 끌어와 가장 '낯선' 자신들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것. 익숙한 장소에서 펼쳐지는 낯선 꿈의 풍경은, 대중에게 안정적인 소속감과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신선함을 안겨준다.
결국, 하츠투하츠가 제시한 전략은 단순히 차별성을 위해 무작정 관습을 깨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을 혼합함으로써 대중의 예상 범위를 교묘히 비켜가는 방식의 '탈관성'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하츠투하츠가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펼쳐나갈지 기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습을 깨야만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전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부터 『탈관성』이라는 새로운 관성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츠투하츠는 관습이라는 버스를 타되, 그 목적지는 스스로 정한다.
예측 가능할 것 같은 도화지 위에 가장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
관습의 언어로 비관습적 서사를 그려내는 것.
이것이 SM이 11년 만에 선보인 진화의 정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