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라고?
“그동안 네가 일을 했다고 생각하니?”
신입사원한테 무언가를 가르칠 생각이 없는 곳이었다.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 힘쓰는 잡일을 시키거나 10분 넘게 걸어가야 하는 마트에서 커피와 아이스크림 심부름을 시키는 회사다. 아찔하다. 심지어 나는 커피믹스도, 아이스크림도 먹지 않는다. 끝까지 본인들 잘못은 모르는 파렴치한 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회사원 박진권, 참고 자료 주관적이고 편향적인 머릿속
나는 방 기자에게 배운 것이 없다. 허황한 헛소리만 늘어놓았을 뿐 실속은 없었다. 출근도 하지 않으면서 출퇴근으로 3시간을 넘게 허비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시도 때도 없이 구글 드라이브를 들어가야만 했다. 언제 작업을 했는지 혹은 언제 작업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조급한 마음으로 주말에 잠도 못 자고 교정교열 작업을 해서 올렸다. 그러나 누구도 확인하지 않았고, 결국 그 일은 다음 주 월요일이 되어서야 진행됐다.
"이번 주는 휴일에도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한 마디를 누구도 해주지 않았다. 반대로 마음 놓고 약속을 잡은 날 갑작스레 연락이 왔다.
"점심 전까지 교정 보고 파일 올려주세요."
이곳에서 배운 것은 디자인 능력이다. 잡지 이미지로 활용할 사진을 모두 디자인해야만 쓸 수 있었다. 전속 사진작가도 없었고, 사진을 구매할 의향도 없었기 때문이다. 쓸만한 카메라도 당연히 없었다. 자기가 사진을 잘 찍는다고 착각하는 국장 한 명이 있긴 했지만, 당연히 아마추어 사진작가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그 수준에서도 하위급이었다. 절대로 쓸 수 없는 사진이었으나, 사장은 흡족해했다. 물론 국장도 만족스러운 몸짓을 보였다. 짧게 표현하자면 꼴값, 대환장 파티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회사에 있는 카메라는 김 국장이 용산 전자상가에서 100만 원 정도 눈퉁이를 맞고 사온 기기였다.
디자인 말고 또 배운 것이 있다. 반면교사, 사람 보는 방법, 사람이 아닌 상황을 믿어야 하고, 상황을 믿더라도 보호 장치 하나는 꼭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통감했다.
상무는 마지막까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일도 안 하고 면접 보러 다녔잖아. 95만 원도 감지덕지해라.” 잡지사 일대기에 쓴 모든 대화 내용은 녹음과 문서화 되어 있다. 주말 약속도 잡지 못하고 멍청하니 노트북 앞에 앉아 있던 일, 연차와 휴일마다 연락받고 노트북을 펼쳐 들었던 날, 8시에 출근하고 17시 30분에 퇴근하며 30분씩 더 할애했던 나날이 후회스럽다. 강 사장, 강 상무, 김 국장, 방 기자에게 나는 일하지 않은, 일한 적 없는 사람일 뿐이었다. 뼛속까지 제 잇속만 챙기는 괴물 같은 사람들이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인간들이다.
마지막까지 상무는 “우리가 통장이 압류당해서 돈이 없는 상황에서도 네 월급은 챙겨 줬잖니”라는 개소리를 뱉어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보통 월급 석 달 정도는 밀리기도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말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1년을 채우자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한심하다. 좀 더 빠르게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한 어리숙한 나를 반성한다.
방 기자는 자기가 500만 원 이상 번다며 자랑하며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만히 두면 내가 수정할 칼럼을 본인이 하겠다며 가로챘다. 그 작업은 10만 원 정도의 인센티브가 떨어졌다. 나에게는 돈이 일절 되지 않는 칼럼만 넘겼다. 500만 원 번다며 자랑하고, 뿌듯해하던 방 기자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김 국장은 더한 사람이다. 내가 직접 인터뷰하고, 글을 작성하고, 사진까지 편집한 작업물이 있다. 내 작업물에 등장하는 선수의 부모님들이 감사하게도 잡지 몇 부를 주문하셨다. 그러나 김 국장은 그 몇 푼 안 되는 인센티브마저 가로챘다. 교통비가 132,000원 나오는 곳에서 출근도 안 하는 놈이 10만 원을 가로채고, 교통비 무료인 노인이 몇 만 원을 빼앗는다.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즐비한 회사다.
일주일 만에 그만둔 국장이자 전 사수가 내게 했던 말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여기 도둑놈들 많은 곳이니까 조심해요.
오래 일 한 사람도 쉽게 뒤통수 때리는 놈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