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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권 Nov 28. 2024

잡지사 일대기: 무능력한 사용인

그만, 제발 그만.

무능력한

사용인     


얼추 생각나는 것들을 복기해 보니 끊임없이 떠오른다. 

새삼 대단히 끔찍한 공간이었구나 싶었다. 

이제 양재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 글로 모든 상황이 끝이었으면 한다.     


회사원 박진권, 참고 자료 주관적이고 편향적인 머릿속     




그만제발 그만.

강 사장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회사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사원들의 인사도 받지 않고 씩씩 거리며 사장실로 들어가 문을 쾅하고 강하게 닫았다. 채 3분이 지나지 않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박 기자!" 나는 속으로 또 무슨 일인가 싶어 대답하고 천천히 사장실로 향했다. 그때 강 상무가 일어나더니, "저기야, 빨리 좀 와라. 왜 굼벵이처럼 기어 오니?" 늘 있는 멍청한 말에 대꾸하지 않고 사장실 문을 두드리며 들어갔다.


강 사장은 대뜸 내게 역정을 냈다.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참고로 당시 나는 만으로 세 달이 채 되지 않는 신입 사원이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 눈에 초점이 사라진 채 강 사장을 응시하며 물었다. 강 사장은 내게 페이지를 던지고, 방언을 터뜨렸다. 재택에서 외주 근무하고 있는 40대 중반의 디자이너를 '이년, 저년'이라고 부르며 "이년도 문제야. 이딴 식으로 작업하니까 내가 욕을 하지. 아주 미친년이야"하며 폭언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바로 방 기자 욕으로 넘어갔다. "이 자식도 페이지네이션을 해봤어야 알지 아주 개판이야 이 새끼도. 편의 봐줘서 재택 시켜줬으면 똑바로 해야 할 거 아니야? 미친놈의 자식이." 그렇게 구수한 욕을 처먹은 방 기자는 엉덩이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사무실에 얼굴을 내비쳤다.


강 사장의 만행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떠오른다. 그의 명언을 몇 자 적어보자면...


"요즘년들은 전부 걸레들 같아."


"요즘 여자애들이 불임인 이유는 몸을 함부로 놀려서 그래. 피임약 먹고, 아무랑 잠자리하고 그러니까 불임이 생기지"


더 적으면 뇌가 더러워지는 느낌이라 그만 적어야겠다.


회사에서 강 사장과 강 상무가 재택으로 일하고 있는 디자이너에게 이년 저년 하며 불같이 화냈을 때의 일과 방 기자한테도 이 새끼 저 새끼 하며 욕을 실컷 하던 상황. 퇴사한 전 편집장에 대한 험담을 끊임없이 늘어놓던 상황과 김 국장이 이 국장을 매번 무시하던 일. 교정을 봐야 하는 사무실이 시장판보다 더 시끄러웠던 상황이 아직도 종종 꿈에 나온다.


사실 나도 마냥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잘못에 대해 나열하지 않은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객관화가 명확하게 되어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기사를 복사 붙여 넣기 하는 단순 작업이 싫어서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나의 잘못이다. 집에서 하면 10분이면 끝날 일이 사무실에서는 1시간이 걸렸을 만큼 느린 컴퓨터였다고 해도 조금 더 세심하게 볼 수는 있었다. 방 기자는 노트북을 들고 출근하라고 일러 주기도 했다. 참 대단한 조언이다. 하지만, 사람이 가장 많은 1, 2호선에서 미친 듯이 치이고 눌리는 숨 막히는 곳에서 평균 3시간 30분을 버텨야 했다는 게 문제였다. 회사의 정수기는 몇 년째 관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물 1L를 집에서 챙겨 가야 했다. 그 상황에서 노트북과 기타 용품을 챙기는 것은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어쩐지 회사에 정이 생기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곳에 내 물건을 하나, 둘 가져다 놓기 싫었다.


전 편집장은 “이곳에 도둑놈들이 많아요”라는 말과 함께 비싼 물건과 소모품은 두고 다니지 말라고 조언했다. 필요한 물건은 항상 가방에 욱여넣고 다녔다. 휴지, 물티슈, 물 1L, 커피 700ml, 슬리퍼, 마우스, 키보드까지. 회사에서 쓰라고 준 물건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애초에 받을 생각도 없었다. 자리에 준비되어 있던 키보드와 마우스는 이미 고장 나 있었다. 마우스는 좌 클릭이 잘 눌리지 않았고, 키보드 q, r, o, z, g, h가 뻑뻑하거나 눌리지 않았다. 사장과 상무에게 보고했지만,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유야무야 넘어갔다. 업무에 필요한 물품과 교통비는 모두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 밥 먹을 때 말이 없다고 이유로 핀잔을 듣고,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지 않았다고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다. 설탕이 과하게 들어간 콜라와 비슷한 음료는 먹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런다고 살 빠지는 게 아니라면서 조롱하기도 했다. 남자는 컴퓨터와 정수기를 고칠 줄 알아야 한다는 헛소리는 덤이다. 회사 전체가 물바다가 되어 맨손으로 걸레를 들고 몇 시간 동안 물을 퍼내고도 고생했다는 소리 한 번을 듣지 못했다. 그들에게 나의 잡일은 당연했다.


혹시라도 어떤 우연으로도 이들과 관계된 사람들은 평생 만나고 싶지 않다. 짧은 인생 통틀어 최악의 인연이었다고 확신한다.


아마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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