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은 선민의식을 가질 수 없다

나는 여전히 모른다

by 박진권

서민은 선민의식을

가질 수 없다


평균보다 많은 혜택을 받고 사는 이들은 ‘선민의식’이라는 말을 타인에게 사용할 자격이 없다. 설령 선민의식이 진해 보이는 사람을 만났대도 말이다. 개인이 또 다른 개인을 설명할 땐 고도의 세밀함이 필요하다. 차라리 개인이 다수를 정의하는 게 훨씬 쉽다. 단 한 명의 타인을 볼 땐 그날 날씨와 기분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상황과 위치도 포함해야 한다. 심지어 시기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개인이 타자를 ‘평가’할 땐 너무도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사소한 변수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예도 있다. 인간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인 우월감을 선민의식이라고 말할 수 없다. 우월감은 다수가 가질 수 있는 아주 사소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하나, 선민의식은 그 정의 자체가 다르다.


박진권




나는 여전히 모른다

독서 모임에서 온실 속 화초를 만난적이 있다. 그는 평생 여의도에서 살았으며, 아버지는 사업가였다고 한다. 그 사실을 매 모임마다 공공연하게 밝히며 '내가 이룬 것 은 아니다'라고 자랑아닌 자랑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사는 아파트의 현 시세는 약 20억~40억쯤 되는 곳이다. 그런 사람이 타인의 선민의식을 지적했다. 그는 태어나서 직장을 다녀본 적도 없다. 부모님의 돈으로 유학을 다녀왔고, 연애 또한 해본 적 없는 말 그대로 온실속 화초였다. 그렇게 가꾸어진 화초가 야생의 잡초에게 '선민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비하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떤 사람은 세계 30위권의 GDP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에서 초등학생 때부터 유학을 다녀왔으면서 가난을 이야기한다. 선민의식이란 한 사회에서 특별한 혜택을 받고 사는 소수의 사람이 가지는 우월감을 뜻한다. 재벌의 기부도 선민의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일부 존재한다. 이스라엘의 종교적 선민의식은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한민국은 ‘휴거지’, ‘200충, 300충’과 같은 주거 구역과 급여 수준을 비하하는 신조어가 숨 쉬듯 나온다. 여기서 소수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서 선민의 반경이 달라질 수는 있으나, 그곳에 서민이 끼어들 공간은 없다.


돈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의도에서 20억이 넘는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사람이 일반 서민에게 ‘선민의식’을 지적하는 것은 희극이다. 자신의 우월성을 계속해서 피력하는 사람에게는 어긋난 자존감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다. 선민의식은 서민에게 붙일 수 있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전적 의미마저 바꾸려고 드는 인간이 진정한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단어마저도 ‘디토 소비’를 한다. 유명인의 말에 휘둘려 물건을 사는 것처럼. 유튜브에서 저명한 학자가 하는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한다.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가 유행했고, 심지어 전문 용어도 아닌 가스등 효과, 즉 가스라이팅 사용을 남발한다. 이들은 견해의 전달과 세뇌의 차이를 전혀 알지 못하면서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를 분별력 없게 사용한다. 그저 자기의 뜻에 동조하지 않고 무조건 ‘어화둥둥’ 하지 않으면 가스라이팅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게 편하고 쉽기는 하지만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비난과 비판도 구분하지 못하고, 단어의 적확한 사용을 혐오하기도 한다.


모르는 것은 축복이고, 배우는 것은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의 무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어, 매번 탄식한다. 그럼에도 배움의 나날이 최소 50년 이상 남았음에 감사하기도 하다.


멋지고 위대한 사상이나 천재의 걸작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머리가 형편없고 빈약하거나 모자란다면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온 시대의 현자들이 이런 사실을 이구동성으로 한탄하고 있다. 예컨대 예수스 시락은 “바보와 이야기하는 것은 잠자는 자와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이야기가 끝나면 그런 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반문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햄릿은 “익살맞은 말도 바보의 귀에서는 잠들어 버린다”라고 말한다. 또한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훌륭한 말이라도 듣는 자의 귀가 일그러져 있으면 조롱받는다. (『서동시집』 4, 1) 또한 그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애쓴 보람도 없이 다들 아무 반응이 없다고, 슬퍼하지 마라! 늪에 돌을 던진다고 파문을 일으키지 않으니.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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