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과 정치

뤼번 파터르_디자인의 정치학_고트

by 박진권

디자인과 정치



《디자인의 정치학》



뤼번 파터르



고트




디자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감각적인 형태다. 건축, 내·외장 장식, 포스터, 잡지 등 디자인이라고 할 만한 모든 요소는 감각적이어야 하며 눈길을 끌어야 하고, 심지어 불편함을 주어서는 안 된다. 기괴함과 감각은 한 끗 차이고, 시대에 따라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과거엔 글씨체에조차 이념이 담겼고, 그로 인해 몇몇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들은 알파벳 대문자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상 고리타분하고, 귀찮음과 동시에 울화가 치미는 정치와 디자인은 물과 기름 같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특이한 관계다. 나라의 이념에 따라서 잘 팔리는 디자인, 자주 쓰이는 폰트, 과거부터 현대까지 꾸준하게 소비되는 색상까지 결정된다. 이슬람권처럼 여성을 터부시하는 나라는 디자인에도 엄청나게 보수적인 감각을 요구한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독재 등 폐쇄적인 나라에서는 디자인의 사소한 부분까지 검열 후 삭제한다. 그곳에서 디자인은 오롯이 선전으로 소비될 뿐이다.


우리나라에도 디자인할 때 사용하면 안 되는 게 생겼다. 자신의 이념을 과하게 투영한 제작물 때문이다. 특정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단어와 제스처 때문에 대형 편의점과 자동차 브랜드가 애를 먹기도 했다. 반응이 늦었던 기업들의 매출은 순식간에 반토막이 났고, 의도가 전혀 없던 몇몇 디자이너들은 직장을 잃기도 했다. 디자인과 정치는 떨어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이런 행태를 보면 혀끝에서 씁쓸한 맛이 느껴진다.


직설적으로 이념을 표현하는 방식은 디자이너가 할 행동은 아니다. 나만의 색을 입히고, 사상을 설파하는 것은 좋지만, 수많은 소비자에게 불편함을 안기는 행동은 직업의식이 떨어진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 인간들이 직업군 자체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진입장벽이 낮고 세분화한 직업일수록 직업윤리를 바로 세워야 한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성공할 수 없는 그런 직업군으로 발돋움하려면 말이다.


정답이 없는 행위와 공간에 마음이 끌린다. 창작에도 어떤 기조가 있는 것은 맞지만, 결국 어떤 사람이 하냐에 따라서 그 색이 많이 달라진다. 기조가 고여 썩기 전에 그것을 깨부수고, 새로움으로 향하는 예술가가 탄생한다. 정답이 없는 행위와 공간은 대중의 야유와 질책을 감수해야 한다. 의도보다 완성된 작품의 수준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흰 도화지에 점 하나 찍은 작품은 경외와 조롱을 동시에 받는다. 그러한 그림을 시도한 사람이 어떤 작품을 그려왔고, 그 그림을 전시할 수 있도록 용인한 미술관 관장의 생각은 도외시된다.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발걸음을 옮긴다. 틀렸다는 말 없이 그저 내면을 파악하려는 그 시선에 위로받는다. 그들은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던 어떤 의미를 찾아낸다. 논리적인 비판은 관심이 지대한 비평이기에 거부할 예술가는 없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저 부분 이 부분에서 지적받고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주저하고, 새로운 시도를 감출 필요는 없다. 디자인에서 창의력을 거세하면 흔하디흔한 독재자의 선전물이 될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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