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이라는 행위는 아무리 많이 반복해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퇴고가 끝났다고 생각한 소설도 반년 후에 읽어보면 미숙한 부분이 산더미처럼 발견된다. 작가의 꿈을 갖게 된 후 막연하게, 100만 자를 채우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쯤이면 내 이름 적인 소설집 한 권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제는 100만을 넘어 200만에 가깝다. 평생 글 쓰며 살겠다고 다짐했다가도, 이 짓을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는 막막함에 근본적인 두려움이 피어오른다. 이러다 1,000만 자를 채운 무명작가로서 생을 마감하진 않을까. 물론, 그것도 낭만 가득한 삶이다.
최근 중편 소설 한 편을 탈고 후 원하는 출판사에 투고했다. 하지만, 속 시원하게 무언가를 끝낸 기분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막막한 느낌이었다. 불안한 감정은 아니다. 마치 가려운 곳을 긁었는데, 조금도 시원하지 않고, 되려 피부 안쪽에서 더 심한 가려움이 느껴지는 그런 기이한 상태다. 당장은 이것보다 더 잘 쓸 자신이 없다. 그럼, 앞으로는? 정말 불안한 게 아닌지 자문했다.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감정은 분명 두려움이다. 창작, 작문, 소설, 글. 지겹지만, 미칠 정도로 원한다. 마치 마약처럼 자아를 좀 먹으며 흔들지만, 도저히 놓을 수 없다. 재능이 어떻든 나는 그렇게 태어났다. 쓰고, 또 쓰고, 좌절하고, 다시금 절망하다가, 어느새 무감각해지고, 글에서도 영혼이 사라졌다가, 결국 책상 앞에 앉는다.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려고 애쓰는 범부는 예술이라는 사막에서 평생을 헤매다 아주 가끔 나타나는 오아시스에 한정적인 샘물을 마음껏 들이켜고, 들개처럼 침을 질질 흘리며 여기저기 방황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며, 모래바람에 충혈된 눈을 껌뻑거리다 눈물을 뚝뚝 떨구며 나타난 신기루에 사막의 모래를 허겁지겁 퍼먹는다. 모래 안에 얼마나 많은 유리 조각이 섞여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