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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왈JS Jul 21. 2023

주저하지 말고 즐겁게 살 것,

서평.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_김혜남

작은 병부터 큰 병까지, 아파서 병원에 가면 빼놓지 않고 듣는 말이 있다. “스트레스받지 말고 잘 쉬셔야 합니다.” 특히나 모두가 바쁜 한국 사회에서 이 말은 손에 잡히지 않는 환상처럼 느껴진다. 아등바등 무리하는 시간은 채무처럼 착실히 쌓인다. ‘조금만 견디면 되겠지’, ‘다들 그렇게 살아’ 하면서 여유 없이 살다가 어느 순간 닥쳐온 시련 앞에 주저앉는 사람들이 많다. 눈으로 보이는 신체의 병부터 허탈함과 무기력 등 마음의 병까지…


사랑은 분명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진정한 사랑은 우리를 훨씬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中



“지금까지 살면서 한 가지 후회하는 게 있다면 스스로를 닦달하며 인생을 숙제처럼 사느라 정작 누려야 할 삶의 즐거움들을 놓쳐버렸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여기 피로한 대중에게 진정한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책이 있다. 정신분석 전문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김혜남의 책,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이다. 그녀는 잘나가던 정신분석학 전문의이자 교수로,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딸과 며느리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던 43살, 파킨슨병을 진단받는다. 열심히 살아온 대가가 희귀병 진단이라니. 그것도 이토록 젊은 나이에. 그녀는 억울한 마음에 세상을 원망하다가 문득 어떤 사실을 깨닫는다. 침대에 누워 슬퍼해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이후로 하루하루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삶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병마와 싸우며 진료와 강의를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책을 썼다. 이러한 이야기가 2015년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라는 출간되었고, 독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2022년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이라는 이름으로 개정 출간되었다. 2015년 이후 병세가 악화되어 진료하던 병원도 닫고 회복과 건강 관리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고난에 휘청이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용기가 되어주고 있다.

 

개정되기 전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아프면서 ‘애써야 하는 삶’에서 ‘재미있는 삶’, ‘나 다운 삶’으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인생에서 모든 조건이 완벽한 때란 없다. 인생은 완벽히 계획된 설계도가 아니라 점을 찍어가며 완성해 가는 그야말로 체험형 예술에 가깝다. 어떨 때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이대로 가면 망하지 않을지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나만의 그림을 그리며 저 멀리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저자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에서 너무 고민하지 말고 재미있게 살 것, 지치고 힘들더라도 버텨볼 것을 이야기한다. 지친 인생에 위로를 전하는 많은 책이 때로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 책은 치열하게 살다가 큰 고난을 맞닥뜨린 저자의 회한이 진하게 녹아 있어 다른 차원의 위로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인생의 주인인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의무와 책임감에 치여 뭐든지 잘해 내려다보면 정작 누려야 할 삶의 작고 소중한 즐거움들을 놓치기 마련이다. 인생은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따로 주지 않는다. 일도 가족과의 관계도 내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즐겁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중으로 미루다 놓치지 말고, 잘 익은 열매를 따 먹듯 순간순간의 행복을 누려야 한다는 사실을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바쁜 일상에서 나는 얼마나 삶을 누리고 있는가. 바쁘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면서 작은 행복들을 놓쳐왔던 것은 아닐까. 나를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과업에 짓눌리면서 삶을 즐기기란 어불성설이다. 무엇이든 잘 해내려는 욕심은 내려놓고, 할 수 없는 것은 인정하고 도움을 청하기도 하면서, 주변을 돌아보고 여행도 다니면서 조금 더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며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하게 되었다. 저자는 주어진 역할들을 충실히 해내면서 인간관계에서도 숱한 노력을 해왔지만 정작 고난의 시기를 지날 때 곁에 있어 준 사람들은 소수였다고 고백한다. 인간관계는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마음의 병을 앓는 이들도 상당하다. 그러나 저자는 시선을 달리하라고 말한다. 내 곁에 늘 남아주는 진짜 내 사람들에게 집중할 것.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실망하거나 목매지 말 것. 일, 사람, 기회와 포기… 아픈 시간을 보내온 저자가 건네는 담담한 이야기들은 진주알처럼 하나하나 꿰어지며 진정한 삶의 가치를 그려보게 한다.

 

저자 김혜남 박사는 어느 인터뷰에서 토머스 모어의 말을 빌려 ‘모든 병은 스승이요, 은혜’라고 말했다. 과연 그의 책을 읽다 보면 투병 경험에서 우러난 보물 같은 삶의 통찰을 만날 수 있다. 15년 이상 살기 힘들다는 파킨슨병과 벗하며 삶의 구석구석을 환기하는 그의 담담한 듯 여유로운 태도는 독자들로 하여금 용기와 희망을 준다. 또한 절절하게 보내온 시간들로 쓰인 메시지는 같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준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하나의 문이 열린다. 그러니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재미있게 살라.” 아마도 작가 자신에게 했을 법한 이 말은 인생의 겨울을 지나는 많은 이들에게 버틸 힘을 준다. 그렇다. 캄캄한 새벽을 지나면 동이 튼다. 오늘 하루가 지나면 내일이 온다. 이 단순한 희망에 기대어 우리는 살아간다. 과거에 얽매여서, 또 미래의 불안에 사로잡혀 살기에는 지금 이 시간 우리의 삶은 너무나 소중하다. 시간이 흘러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스스로 물었을 때 나는 어떤 답을 할까. 아마 저자와 많이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책임감과 의무에만 사로잡히지 말 것. 인생을 즐길 여유를 가질 것. 주변을 돌아보고 챙길 것. 무엇보다 나의 시간과 나의 사람, 나의 인생을 사랑할 것.

 

산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성장의 과정이며, 그 성장의 목적은 우리 삶에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배우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특히 마지막 장의 제목이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부분은 모든 문장이 절절하게 와닿았다. 더 많은 실수를 저질러 보고, 나이 듦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상처를 입더라도 더 많이 사랑하는 삶. 유머를 잃지 않고 스스로를 신뢰하며 조용한 죽음을 소망하는 삶. 작가가 다짐하듯 쓴 글들에 나 또한 내게 주어진 생의 시간을 떠올려 본다.

 

투병 생활 가운데 하루 하루 용기를 내어 써내려간 저자의 글들은 독자 저마다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위안과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친구에게, 동생에게 전하는 듯한 담담하고 친근한 글들은 언제 읽어도 편안하게 느껴지겠지만 살면서 어떤 어려움을 마주할 때 꺼내 읽으면 특별한 위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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