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배드파머스가 인기를 얻으면서 우리 회사도 분위기가 좋습니다. 언론에도 자주 나오고 인스타그램 성지라는 말도 쓰이고, 온라인 스토어도 좋은 상황이고, 여러 면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고객들이 소풍오는 마음으로 오는 것도 좋습니다. 정말 그렇게 '칠링하는 샐러드 매장'을 꿈꿨었거든요.
이렇다 보니 요즘 주위에서 '어떻게 이런 브랜드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매번 뭉뚱그려서 말을 하곤 하는데, 이참에 글을 한 번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배드파머스의 본질'에 대해 써봅니다.
배드파머스는 어떻게 만들었나?
모든 것의 시작은 건강입니다. 바다 건너에서는 전쟁과 기아가 늘고 환경이 파괴되고 있지만, 시선을 우리 현대인의 삶으로 돌린다면 건강만큼 심각한 문제도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패스트푸드를 먹고 자란 우리 세대는 어느새 가공식품이 너무 익숙해져버렸습니다. 건강 문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게 하고, 삶의 일수를 한순간에 줄여버리는 '행복'과도 직결된 문제이니까요. 하지만 이 세상엔 너무 맛있는 것이 많고, 건강한 음식만 찾아 먹기엔 우리의 절제력은 그렇게 강력하지 않습니다.
작년에 뉴욕 출장을 갔을 때 우리는 샐러드의 대유행을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보고 지구 반대편의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도 통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죠. 우리도 의문을 떠올렸습니다. '한국에서 샐러드는 파스타 중간에 놓고 먹는 거일 뿐이잖아!' 문화간 장벽이 너무 크지 않을까? 대기업의 실험적인 사업도 아니고, 한 번의 선택이 회사의 운명을 끝장낼 수 있는 스타트업에서 모험을 하기엔 쉽지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공동창업자인 우리 노 대표는 평소처럼 강남역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다가 의심으로 가득찬 우리 앞에서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죠. 문화적 장벽을 가볍게 뛰어넘은 사례들은 이미 많이 있으므로, 우리의 의심은 두려움에 따른 감정적 발현이지 객관적인 수치에 의해 나온 판단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단지 샐러드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에만 따라 결과가 판가름 날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죠. "이러한 도전쯤 되어야 동기부여가 나지 않겠어?"
엘론 머스크는 전기자동차를 '그저 멋지게' 만들었을 뿐이다
노 대표는 우리의 창업 초기 때부터, 대중이 어떤 문화를 흡수하기까지에는 '피라미드식 이론'이 적용된다고 늘 강조해왔습니다. 제가 편의상 피라미드라고 붙였긴 한데, 문화 혹은 유행의 단계에서 가장 맨 위, 꼭짓점에 위치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즐기는 모습이 보이면 낙수효과처럼 점점 대중으로 퍼져나간다는 뜻입니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모두 좋은 기술와 인프라 속에서 탄생한 것이지만, 이것이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 관점에서는 '저스틴 비버'나 '제이지'가 사용했던 시점부터 기폭제였습니다. 작년에 유행했던 아이스버킷 챌린지도 대표적인 예입니다. SNS가 발달한 시대엔 불과 며칠 만에 이슈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그것을 선망하도록 만듭니다.
이 관념은 사례를 취합하길 좋아하는 제가 '엘론 머스크'에 관심을 가지면서 좀 더 명료해졌습니다. 머스크는 환경 개선을 위해 전기자동차를 만들겠다고 선포하고는, 수억 원대의 수제 전기 스포츠카 '로드스터' 만들어서 대중을 어리둥절행으로 보내버렸습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전기차를 이용해야 하는데, 비싼 부자들만 타게 하는 비즈니스를 하다니!'와 같은 의구심이 있었죠.
하지만 엘론 머스크는 저렴한 전기차보다 '그냥 좋은 차'를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최고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엔지니어와 최고로 멋진 차를 만들 수 있는 디자이너를 영입했죠. 오랜 시도 끝에 결국 페라리보다 빠른 걸로 인정받고, 조지 클루니 등 할리우드 스타가 타는 걸로 유명세를 얻으면서 전기차 시장의 판도를 바꿔버립니다. 그전까지 전기차는 '힘없는 골프카'와 같은 이미지였던 터라 자동차광들에겐 인기가 없었습니다. 엘론 머스크는 마초적인 진정한 자동차 마니아들이 사랑하는 차가 되어야, 그 다음에 비로소 사람들이 전기차를 사랑할 거라 생각했지요.
결과는 생각대로 흘러갔습니다. 엘론 머스크는 전기차의 인식을 바꾸었고, 1억원 대의 양산형 전기자동차 모델S를 출시해 매진 기록을 이어갔고, 마지막으로 3-4천만 원 대의 서민형 모델x 출시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한때 파산의 위기도 있었지만, 이제 테슬라 모터스는 독보적인 전기자동차 브랜드가 되었고, 많은 대중이 모델X의 출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엘론 머스크는 기업가가 세상을 바꾸는 원리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정으로 세상을 바꾸려면 좋은 의미보다 '좋은 브랜드'
엘론 머스크의 전기자동차 이야기는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좋은 가치를 가졌다고 설명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먼저 호기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궁극의 브랜딩입니다. 완성도가 높고 비즈니스적으로 성공한 브랜드라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속도로 대중의 마음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냥 멋져서' 다가와 경험하게 되면 마음의 벽을 쉽게 허물어지고, 브랜드가 이야기하는 가치에 귀를 기울입니다.
배드파머스를 만들 때 우리의 첫 목표는 건강이 아니라 그냥 최고의 '핫플레이스'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젊다는 것의 장점은 단순히 넘치는 열정 때문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뭔가를 취사선택하는 의식의 구조를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거나, 맛집에 가는 이유는 좋은 영양소와 재료 때문이 아니라, 그곳을 선망하기 때문이고, 그곳에 있으면 멋지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시절 우리를 강타한 수많은 패스트푸드와 패밀리레스토랑은 우리의 혀를 강하게 자극하기도 했지만, 그곳에 있어야만 우리 세대의 존재 가치가 증명되었습니다.
그런 문화 안에 잘 들어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미래에 곧 찾아올 흐름이라면, 뭔가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영역이 아닙니다. 강남의 신사동에서 첫 매장을 연 것, 원색적인 빨간 색으로 시선을 사로 잡은 것, 터프한 로고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브랜드의 이름까지, 핫플레이스가 되는 것에 배드파머스의 모든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본질에만 몰입하기 - 상대적 건강
사업을 할 때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제품을 좋은 가치로만 도배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캔들SCNDLE의 실패에서 좋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기부 향초 만들고자 했던 우리는 좋은 성능을 위해 ‘기부’라는 본질과 다른 편백나무 우드심지, 100% 소이왁스, 좋은 퀄리티의 포장 등에 힘을 쏟았죠. 이 때문에 단가가 턱없이 올라가면서 마진이 기형적으로 줄었고, 제대로 된 유통구조를 갖출 수 없는 구조가 나왔으며 많은 노동력이 투입되면서 지속적인 발전 기회를 잃었습니다.
제품을 좋은 가치로만 도배하는 실수는 ‘비판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기인합니다. 요즘 흔히들 말하는 '더 나은 세상(Better Place)' 보여주고자 사업을 시작했는데, 다른 부분이 너무 비즈니스적이면 까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죠. 하지만 이 일을 시작한 미션만 떠올린다면 답은 명료해지고, 그것을 끝까지 몰아부치는 우직함이 필요합니다. 사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참혹한 비즈니스 현장에 선 것을 자각해고. 비판에 익숙해져야 하며, 저 멀리있는 롱텀의 비전을 계속해서 떠올려야 합니다.
본질만 지킬 수 있다면 그외에 요소는 다른 가치가 끼어들도록 해선 안됩니다. 오로지 그 한가지만을 말해야 합니다. 이것저것 좋은 가치를 끌어들인다면, 고객들은 오히려 브랜드가 뭘 말하려는지 헷갈릴 뿐입니다.
배드파머스의 본질은 건강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상대적인 건강’입니다. 최대한 덜 가공된, 자연 그대로의 건강한 로푸드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지요. 그외에 요소는 모두 트렌드에 녹아드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릇은 젊은이들이 당장이라도 들고 나가 자유롭게 칠링할 것만 같은 일회용 펄프 그릇을 사용했고, 포크와 숟가락은 젊은이들이 타코를 먹을 때 사용한던 일회용그릇을 가져왔습니다. 친환경적인 요소를 잃어버리더라도, 더 중요한 것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젊은이의 문화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로고와 네이밍은 기존에 건강한 식당이 가졌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터프한 요소를 넣어 좀 더 유쾌한 접근을 이끌어냈습니다. 매장 입구에는 커다란 로고를 달아 '포토존'이 되도록 했지요. 그 결과 수많은 인증사진 SNS에 떠돌게 됩니다. 주스 이름은 '미안하다 내몸아' '늙지 않아' 같은 친근감있는 메시지로 무장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샐러드를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는 때가 오면, 그 이후부터 좋은 가치를 하나 둘 넣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죠. 아니, 오히려 그때 해야 더 효과적입니다. (이번 달 안에 친환경 옻그릇이 출시됩니다)
키워드를 ‘상대적 건강’으로 잡은 이유도 젊은이 문화에 단계적으로 스며들기 위함입니다. 당장 가공식품을 끊고 로푸드를 먹으면 좋겠지만, 모든 사람은 간디나 제인 구달이 아닙니다. 우리를 비롯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건강을 떠올리면서도 약한 절제력으로 매번 무너집니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패에 대한 자괴감이 아니라 '생각보다 해볼만한 하다는 가능성'입니다. 점심에 치킨을 먹었으면 적어도 저녁에는 채소를 먹자는 배드파머스의 ‘1일1샐러드’ 운동은 그러한 의미에서 생겨났습니다. 하루 한 번쯤은 채소를 먹었더니 속이 편한 것을 경험하고 컨디션을 달라진 것을 경험하면, 그 다음에는 스스로도 가속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입니다.
이제 배드파머스는 단순히 멋진 브랜드를 넘어 우리 삶의 매순간을 함께 하는 브랜드로 나아갈 예정입니다. 그때는 또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인스타그램: @euddeum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