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a Bersama)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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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는 잇몸만 남았을 때 먹어도 안 늦다.”
시엄마는 복숭아 철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시댁에 가기 전 나는 시엄마를 떠올리며 꼼꼼하게 복숭아를 골랐다.
뽀얀 표면을 꼭꼭 눌러 손톱이 쉬 박히는 거 말고 힘을 줘야 하는 것만 골라 담았다.
내가 뾰족해진 후로는 표면에 상처가 생겼다.
직원의 쏘아보는 시선이 느껴지면 나는 새로운 특기인 심해어 흉내를 내며 부유하듯 멀어졌다.
지척에 내가 환장하는 발간 황도가 나를 유혹했지만 그런 것쯤 모른척하며 떠다니는 일이 별일 아니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거기는 사장 사모처럼 사람 부리고 산다더라.”
소파 중앙에 앉은 시엄마가 좌우 시아버지와 남편에게 복숭아 조각을 건네며 말했다.
“인건비가 싸니까.”
마치 예상 답변을 준비한 것처럼 남편은 복숭아를 씹으며 답했다.
“망고가 그렇게 맛있대매? 실컷들 먹겠네. 우린 비싸서 쳐다도 못 보는데.”
시아버지 포크를 돌려받은 시엄마가 다시 조각을 찌르며 말했다.
“그 나라 과일이니까.”
“그래서 언제 간다구?”
티브이만 보던 시아버지가 크게 물었다.
시엄마가 말하려고 막 숨을 들이마시던 순간이었고 일부러인지 우연인지는 알 수 없는, 이미 답을 들으신 질문이었다.
짐 싸는 사람들은 언제 오고요 짐 실은 컨테이너는 언제 한국 뜨고요 우리 둘은 언제 비행기를 타고요.
남편은 이미 알려드린 일정을 주기도문 외듯 다시 줄줄 읊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소파 끄트머리에서 복숭아뼈를 뜯었다.
금세 울퉁불퉁한 돌에 이가 부딪혔다.
뾰족한 정수리 끄트머리에서는 모래 같은 것도 부서졌다.
나는 까슬한 걸 휴지에 뱉어냈다.
이래서 나는 딱복이 싫었다.
황도는 힘 안 주고 물기만 해도 과육을 쏟아내는데 딱복은 쓸데없이 노력과 주의를 요했다.
적어도 이 집에서 내게는 먹기 불편한 과일이었다.
남편이 송강호로 빙의해 발령 소식을 전한 날, 폐에 가는 빨대가 꽂힌 듯했다.
“장기 여행이다 생각해. 아는 사람 없잖아 여행지엔.”
웬일로 그의 말투가 담백했다.
클리닉과 요가원에서도 나오지 않던 숨이 오랜만에 쉬어졌다.
고립돼야지.. 고립돼서 자유로워져야지..
숨을 내쉬며 나는 중얼거렸다.
남편은 정대리라는 직원이 산다는 아파트 이름을 알려주었다.
데사, 버르사마.
마을, 함께.
내 의도와는 정반대 의미를 가진 아파트였다.
함께하는 마을에서 나는 홀로 있을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