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작법 시간에 시인이 책장 모서리를 접는 걸 ‘강아지 귀’라고 표현하는 걸 듣고 손뼉을 치며 웃었다. 사서교사로 일하는 지금은 물론이거니와 어릴 때에도 나는 책장을 접지 않았다. 책을 훼손하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아지 귀라니! 귀여워서 당장 책 귀퉁이를 접고 싶어졌다. 그러다 문득 귀엽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재민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제일 먼저 한 요구는 검도를 배우는 것이었다. 예비소집일에 학교 앞에서 받은 수많은 전단지를 훑어보던 재민이가 말했다.
“나, 검도를 하기로 결심했어.”
태권도, 합기도, 수영 등 많은 운동 중에서 검도의 무엇이 재민이의 눈길을 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검도장에 등록했다. 그리고 4월 중순쯤 재민이가 이번에는 구몬수학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친구들이 다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
처음에 집에 온 선생님은 말을 할 때, 어금니를 악물며 치아를 드러내는 버릇이 있었다. 당시 살던 집은 주방을 거쳐서 방으로 들어가는 구조였는데,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가스렌지 앞으로 가더니 냄비 뚜껑을 열며 말했다.
“어머니, 뭐 맛있는 거 하셨어요?”
한 번은 퇴근길에 다른 집에 수업하러 가던 선생님을 마주쳤는데, 나를 위아래로 훑고는
“어머, 어머니, 멋쟁이시다.”
하며 과장되게 웃었다. 아이 앞에서 태연하게 거짓말을 할 때도 있었다. 수업 중에 걸려 온 전화를 받더니, ‘402호에서 수업 중인데, 마치고 바로 차를 빼겠다’고 말했다. 우리 집은 3층짜리 다가구 주택 2층이었다.
얼마 후 이사를 하면서 구몬 선생님도 바뀌게 되었다. 이사한 집에서 만난 선생님의 첫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작다’였다. 작은 키, 작은 몸집, 조그만 얼굴에 작은 눈코입이 오종종했다. 목요일에는 현관에 재민이의 운동화보다 조금 큰 단화가 가지런히 놓여있던 게 떠오른다.
선생님은 목소리도 작았는데, 과장된 친근함을 표하지도 쓸데없는 말을 하지도 않았다. 선생님이 안방에서 접이식 책상을 사이에 두고 재민이와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주방 바닥에 앉아 냉장고에 기댄 채 책을 읽거나 휴대폰 시계를 들여다보며 묘한 평화로움을 느꼈다.
그 무렵 나는 취미로 초크아트를 배우고 있었다. MDF 블랙보드에 오일파스텔로 그림을 그려서 찻잔 받침, 연필꽂이 등을 만들었다. 오일파스텔은 번지거나 지워지기 쉬워서 그림을 보존하기 위해 스프레이로 바니쉬를 뿌려 코팅했다. 신문지를 깔고 작업을 했는데도 접이식 테이블에 바니쉬가 묻었다. 몇 개월이 지나고 테이블이 너무 지저분해져서 쓸 수 없게 되었다. 새 테이블을 들인 뒤, 선생님이 재민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책상 바꾸니까 너무 좋다, 그치? 전에 쓰던 건 끈적거려서 싫었거든.”
재민이는 선생님을 잘 따랐다. 한문도 배우고 싶다고 해서 두 과목을 수강하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지겨워하며 과제가 밀리게 되더니 구몬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당시에 형편이 좋지 않았던 나는 내심 반겼다. 선생님께는 월말쯤 조심스레 말씀드릴 생각이었는데, 다음 수업 시간에 재민이가 먼저 말했다.
선생님이 돌아간 뒤, 재민이가 선생님께 사표를 냈다기에 무슨 소린가 했더니 책상 위 찢어진 시험지 귀퉁이에 연필로 ‘사표’라고 적혀 있었다.
“얘가 무슨 소리야?”
라며 못 들은 척했다는 선생님이 안되겠던지 다음날 나에게 전화를 해서 말했다.
“어머니, 재민이가 이상한 소리를 해요.”
나는 재민이가 좀 쉬고 싶어 한다고 얘기했다.
“재민이 마음이 바뀌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하지만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거라는 건 나도, 선생님도 알고 있었다.
처음 재민이의 ‘사표’를 보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아이의 엉뚱함에 웃음이 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날의 기억이 씁쓸하게 떠오른다. 찢어진 시험지 귀퉁이. 사표를 낸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해고 통보였던 셈이다. 선생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체구가 작은 사람이 지나가거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들리면 지금도 나는 뒤를 돌아본다. 다시 만난다면 그때 미안했다고 얘기하고 싶다. 아마도 서로 알아보지 못할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