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가지는 책임감과 죄책감에 대하여
살면 살수록, 어른들이 했던 말씀 중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드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학창 시절에 많이 들었던 말인데,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 누구나 이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이 제일 좋을 때야. 밥 먹고 공부만 하면 되는데, 뭐가 어려워?
사춘기 시절, ‘반항기’가 기본값일 때는 이 말이 정말 듣기 싫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학교 가서 7,8교시 수업을 듣는 것도 힘들고, 그 이후 야자(!)까지 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소리를 꽥 지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는 미처 몰랐다. 공부하는 학생, 그 역할만 제대로 하면 칭찬받을 때가 얼마나 편한 시절이었는지.
가끔 사석에서 결혼이나 출산을 하지 않은 사람을 어른 취급(?)을 해주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런 대접이 그들 입장에서는 매우 탐탁지 않을 테지만, 나름 그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하나씩 내 역할을 늘리는 일이다. 결혼을 하면 내 남편의 배우자, 시댁의 며느리와 같은 새 감투를 얻게 된다. 그다음이 참 어려운데, 내가 어떤 지위를 얻게 되면 반드시 그에 맞는 책임이 뒤따르게 되는 것이다. 각종 시댁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그러니, 안부 전화를 조금이라도 놓친 것 같으면 이상한 죄책감이 몰려든다.
출산을 하고 나면 더 거대한 것이 몰려온다. 물론 아이를 키워보니, 아이에게 가장 영향을 주는 존재가 부모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아이의 모든 문제는 부모 탓이다.’는 시각이 강한 요즘, 그 무엇보다 큰 책임감이 나를 억누른다. 거기다 요즘 나에게 새로 생긴 걱정은 점점 노쇠해지고 계신 엄마에 대한 부양 의무감이다. 원체 당신 스스로를 잘 돌보는 분이셨는데, 아빠가 돌아가신 뒤 확실히 조금씩 약해지시는 게 보여 마냥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자꾸만 늘어만 가는 감투와 역할, 책임감에 가끔은 너무 답답하다. 20대에 엄마가 차려준 밥 먹으며 출퇴근을 반복하던 시절,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징징 울고 자빠졌었는지 그 당시의 나에게 가서 뒤통수를 한 대 갈겨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거 가지고 힘들다고 하면서, 집을 나오겠다고 덜컥 결혼을 다 하셨어?!라고 말하면서.
‘나’라는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참으로 하나하나 모든 일에 다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정작 무엇을 바꾸려는 파이팅은 한참이나 부족한 사람이다. 하나만 잘하라고 하면 참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여러 역할을 다 하려니 그 무엇 하나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꾸 죄책감만 늘어난다. 그러다 모두가 ‘엄치 척’할 정도로 다방면에서 잘하는 ‘어른’은 허구의 존재가 아닐까,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어쩌면 ‘어른’이라는 건, 이 모든 중압감과 책임감을 어깨에 모두 짊어지고 그저 묵묵히 삶을 버텨내는 게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퇴근길 지하철에서 무리 지어 내리는 수많은 어른들 틈에 끼어, 나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듯 종종걸음 친다. 그저 무사히 하루를 살아냈다며, 조금은 안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