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10주기를 맞았다. 교실 TV의 대형화면으로 접한 뉴스. 전원구출이라는 소식에 안심하고 먹던 점심. 전원구출이 아니래, 어떡해? 쉬는 시간마다 초조하게 뉴스를 지켜보던 오후, 저녁과 야간자율학습 시간. 기숙사 침대에 누워 숨죽여 울었던 밤. 아무렇지 않게 지낸 다음 낮과 또 눈물이 나던 다음 밤. 그다음 밤까지. 늘 수면 위에 있지는 않지만 언제든 건져 올릴 수 있는 깊이에 세월호 참사의 기억이 있다.
10주기를 맞아 기획된 세월호 참사 관련 인터뷰를 봤다. 일부러 찾아본 것은 아니고,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시사인의 게시물을 띄워줬다. 몇 개의 인터뷰를 연달아 읽으며 울었다. 그날 자려고 누우니 자꾸만 생각이 났다. 물이 차오르는 배에서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그 생각을 하면 나도 눈물이 나고 몸이 떨리는데 유가족들은 대체 어떤 심정으로 긴 밤들을 버텨왔을까. 물건을 더 실으려 안전을 내려놓은 배. 가만히 있으라는 말. 먼저 탈출한 선장. 오지 않는 구조대. 나타나지 않는 책임자. 생명을 구하려다 또 떠나버린 안타까운 목숨들. 도무지 이해 가지 않는 상황에 당연한 의문을 가지던 사람들을 향해 쏟아지던, 여전히 쏟아지고 있는 혐오의 말들. 깜깜한 방이 갑자기 너무 무서워져 이불로 어깨를 감쌌다. 내가 불안과 트라우마에 취약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꼈다. 이렇게 취약한 내가 아직 큰 트라우마 없이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 생각했고, 앞으로 큰 재난을 겪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개인의 '운'과 '기적'에 맡겨야 한다면 사회의 의미와 역할은 대체 무엇인지 생각했다.
운이 좋아 스물여덟이 되었으면서도 하루하루 혼자 살아내기 급급했던 나의 삶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고, 10년이 지나도,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동갑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 나조차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고, 한 사람의 기억이라도 더 보태고 싶어 이 글을 적는다.
함께 스물여덟이 되었을 친구들을 비롯한 세월호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