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 그리고 지구의 안녕을 빌며_모아
안녕한가요?
꼭 이번 인터뷰만큼은 당신의 안부를 물으며 대화하듯 열고 싶었어요.
각자의 안부를 챙기기에도 바쁘단 핑계로 우리는 지구의 안부는 돌보지 못한 것 같아요. 지구의 안녕이 곧 나의 안녕임을 알면서도 당장 돌아볼 엄두가 나질 않았는데, 탈이 나버릴 대로 난 지구의 문제를 내 앞으로 가져와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는 ‘모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묻고 싶었어요. 내 자리, 내 지역에서 지구의 안녕을 비는 방법과 살뜰히 그리고 꾸준히 지구를 살피는 ‘모아’ 자신은 안녕한지 까지도.
‘모아’님을 먼저 소개해주세요.
‘모아’는 ‘모악산의 아침’ 줄임말이에요. 성별이나 나이와 상관없이 불리고 싶어서 모아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게 되었어요. ‘모악산의 아침’이라는 제로 웨이스트 숙소를 운영하고, 쓰레기 만들지 않는 장 ‘불모지장’을 기획하면서 환경 이야기나 캠페인을 진행하는 ‘제로 불모지’ 단체도 꾸리고 있어요. 앞으로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쓰여질 ‘지향집’까지 하나 더 추가될 예정이에요.
요즘은 전주에서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놓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제가 하는 활동들을) 누군가와 어떻게 하면 더 잘 나누고, 알릴 수 있으면서 제가 마음 편하게 어디로 훌쩍 떠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모아님을 먼저 소개해달라고 했지만, 역시나 모악산의 아침을 안 물어볼 수가 없어요.
모악산의 아침은 사실 제가 7살 때부터 살던 집이에요. 가족 모두 전원주택 생활에 지쳤던 와중에 어머니가 프랑스 여행을 가셨어요. 거기서 에어비엔비라는 플랫폼을 처음 써보신 거예요. 저도 그때 여행 중이었는데 갑자기 ‘너 에어비앤비 해라’라고 어머니가 메세지를 보내셨어요. 긴가민가한 와중에 아파트로 이사를 가시고 귀국했더니 이미 공사가 들어가 있고 (웃음) 그게 3년 전 9월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무작정 친절하게만 시작했는데 다들 좋아해 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런데 숙소만 운영하는 게 아니에요. 제로 웨이스트를 지향하고 불모지장을 기획하고, 제로 불모지를 운영하고 등등! ‘굳이’ 숙소만이 아니고 여러 활동을 함께 하시는 이유가 있어요?
저희 어머니의 뜻은 이 공간을 다른 사람과 ‘공유’ 하는 거지 숙박업이 초점은 아니었어요. 제 또래들이 힘들잖아요 사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래서 이 공간을 ‘또래와 같이 꾸려나가고 활용할 수 있는 도화지가 되면 좋겠다’라는 표현을 하셨어요.
일단 제가 사람을 좋아하고 사회에 관심이 많아요. 부당하고 불평등한 것들. 그래서 끊임없이 그런 것들을 공간에 채워 넣으려고 했죠. 아무래도 숙박업이다 보니 제일 먼저 쓰레기가 많이 나와요. 2019년 말 제로 웨이스트를 고민했고, 2020년 4월 1인 가구들이 필요한 만큼만 소분해서 구매할 수 있는 ‘쓰레기 만들지 않는 장’이 필요하지 않냐 해서 그렇게 ‘불모지장’을 기획하게 됐죠.
얘기를 들을수록 영화에서 세계관을 정리하듯 ‘모아의 세계관’으로 한번 정리를 해봐야겠다 싶을 만큼 진행되고 있는 게 동시다발적으로 많아요. 그것들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모아님은 자신은 안녕한가요? 안녕하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나요?
‘사람’한테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제가 하는 기획에 공감해주시고 쉬고 싶다고 하면 ‘쉬어야죠’라고 말하는 사람이 주변에 굉장히 많고요. 그 안에는 어머니가 있어요. 어머니가 저보다 두 배는 더 시간을 잘 쓰시거든요. 그런 어머니를 보고 배우고 자랐고, 저에게 다 해보라고 하셨어요. (덕분에) 여행도 많이 다녔고 게스트하우스 스텝하러 제주도로도 떠났고. 그런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삼각형이 된다고 하셨던 말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아, 내가 점찍고 있구나.’ 그러면서 저희 어머니가 또 하시는 말씀이 톱니바퀴처럼 다 연결을 시켜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그러다 보니 모악산의 아침도, 불모지장도, 지향집도 하는 이 모든 게 제 머릿속에는 톱니바퀴처럼 굴러가요.
따로 도망가거나 충전하러 가는 ‘공간’은요?
없었어요, (이제야) 공간이 좀 재밌어요. 그 전에는 모악산의 아침이 커서 꾸며도 꾸며도 모자라고 커튼 하나 달아도 티가 안 나고, 어딜 가는 게 전혀 없이 오롯이 돈을 모으질 못하고 계속 이 집에 썼어요. 이번 연도 되어서야 사람들을 좀 만나고, 캠페인을 통해서 카페 같은 공간들을 가보면서 ‘여긴 이렇게 해놨구나, 이런 의자를 쓰는구나’ 이런 게 보이는 거예요. 이제 좀 ‘공간 투어, 숙소 투어를 해보고 싶다’ 그런 욕망이 생겨나고 있어요. 그 전에는 매 여름마다 울면서도 ‘마당에 풀 뽑아야 하는데’ 였어요. (웃음)
“저는 지리산 산내를 좋아해요. 고등학교 친구가 살고 있어서 고향집처럼 드나듭니다.”
아 – 숙소 촬영 왔는데도 풀을 뽑고 계셨다는 후문 (웃음) 내년엔 공간 투어, 숙소 투어, 한 달 살이 등등 말씀하신 모든 것들 꼭 하게 되면 좋겠어요, 뭐든. 이건 정말 온전히 자신을 위해 갖는 소망이잖아요.
내년 계획은 그런 것 같아요. 저는 다른 지역에 가서 저랑 비슷한 사람 만나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그게 또 저는 쉬는 거라서 내년에는 제가 3년 동안 구축해놓은 시스템을 믿고 한 달은 서울 가서 살고, 한 달은 강원도 가서 살고, 한 달은 제주도 가서 살고, 그렇게 할 거예요.
마지막으로 지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모아 자신에게도, 환경활동 측면에서도.
이 질문을 통해서 (되려) ‘지역에 살고 있구나’를 느껴요. 전주에서 나고 자라서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뿐인데, 누군가가 보기에는 서울로 안 가고 전주라는 지역에서 많은 것을 하고 있다는 걸 신기해하는 거잖아요. 저 스스로는 (지역을) 딱히 의식하진 않지만, 제가 하는 모든 것들이 지역에는 희소해서 누군가에게는 처음인 경우가 많으니까 더 와닿는 것 같아요.
서울이 가진 인프라가 궁금해서 더 배워보고 싶은 곳이긴 하지만 저는 무조건 전주로 돌아올 거예요. 지역에서 살아간다는 건 그냥 나고 자랐기 때문에 살아가는 거고,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는 건 전주에서 쌓아 놓은 인프라가 제게 만족감을 줘요. 어떤 일을 할 때 동조해주시는 분들이 주변에 있으니까 힘이 돼요. 각자 역할이 모여서 서로서로를 도우니까.
지역을 언제든 돌아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요.
저 같은 사람들(활동가)이 지역에 양성되고 활동들이 분배되면 좋겠어요. 정말 신기하게도 저는 숙소 운영에서만 수입을 얻고 있었는데 (활동하면서) 강의로 부수입이 들어오고 또 그걸로 비영리 단체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정말 삶이 어떻게 표현될지 모르니까 앞길이 막막한 사람도 저를 보면서 ‘이렇게도 풀리는구나’ 하는 그런 자리를 마련해보고 싶은 다양한 생각들도 들어요. 삶은 늘 변화하기 때문에 뭐가 되었든 제가 제일 좋고 행복한 쪽으로 선택하는 게.
그걸 스스로 알고 계셔서 다행인 것 같아요.
그래서 안녕하긴 한데 또 안 안녕하기도 하고(웃음)
*모아의 세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