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DeNA의 AI 올인 1년, 생산성 20배의 역설

직원 3,000명의 일본 IT 기업이 AI에 올인한 뒤 발견한 것들

"보안 때문에 회사에서 정책적으로 AI를 제한하고 있다". 현장에서 많이 듣는 말입니다. 그런데 직원 3,000명 규모의 일본 IT 기업 하나가 AI에 올인한 뒤, 실제 활용 사례 100건을 공개했습니다. 이 중 59%는 보안 걱정 없이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기업의 AI 전환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이 회사의 1년은 참고할 만한 사례가 될 것입니다.



일본 IT 기업 DeNA가 AI에 올인하기까지

3,000명의 일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선언

DeNA는 포켓몬 카드 게임 포켓,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 포코차(Pococha) 등을 운영하는 일본의 중견 IT 기업입니다. 직원 수 약 3,000명, 연매출 약 830억 엔 규모로, 한국으로 치면 카카오게임즈나 크래프톤 정도의 포지션에 있는 회사입니다. 이 회사가 2025년 2월, 남바 토모코 회장의 주도로 전사적인 AI 올인을 선언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선언의 구체성이었습니다. 단순히 "AI를 잘 활용하자"는 수준이 아니라, "3,000명이 하는 일을 절반의 인원으로 유지·발전시키고, 나머지 절반은 신사업에 투입하겠다"는 명확한 방향을 제시한 것입니다. 절반을 해고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을 시키겠다는 뜻이었지만, 실무자 관점에서는 상당히 과감한 선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결정적인 관점의 전환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기업이 '사람이 하던 일을 AI가 돕는다'는 방식으로 접근하는데, DeNA는 이것을 뒤집었습니다. 'AI가 일을 하고, 사람이 승인하는 구조'로 업무 설계도 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그린 것입니다. 기존 프로세스 위에 AI를 얹는 것이 아니라, AI를 전제로 프로세스를 새로 만든 것이죠. 이 차이가 이후 1년의 성과를 갈라놓게 됩니다.


1년 뒤, 숫자가 말해준 것

2026년 3월, 남바 회장은 도쿄 시부야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1년간의 성과를 발표합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완벽한 성공 스토리입니다. 특정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에서는 AI가 95%를 담당하고 인간이 5%만 관여하면서 생산성이 20배 높아졌습니다. 법무팀의 계약서 검토 업무량은 90% 줄었고, 품질관리 테스트 시간은 50%, 라이브 스트리밍의 유해 콘텐츠 모니터링 비용은 60% 절감됐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이 수치들은 전사 평균이 아니라 최적 조건에서의 피크 성과라는 점입니다. 남바 회장 본인도 '프로젝트에 따라서는'라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수치의 절대값이 아닙니다. AI를 보조 도구로 쓴 것이 아니라, 업무 구조 자체를 AI 전제로 재설계했을 때 어떤 수준의 변화가 가능한지를 보여줬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 성과 발표에는 경영진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숨어 있었습니다. 효율화는 분명히 이루어졌는데, 정작 사람이 남지 않은 것입니다.


효율화했는데 사람이 안 남는다는 역설

남바 회장의 원래 시나리오는 이랬습니다. AI로 효율화한다 → 인력이 남는다 → 그 인력을 신사업에 투입한다. 논리적으로는 그럴듯한 순서였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각 부서에 확인을 해보니, '인력이 남았다'고 보고한 곳이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생산성이 올라간 건 숫자로 증명됐는데, 왜 사람이 남지 않았을까요?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AI 덕분에 시간이 확보되자,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그 시간을 채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못 했던 일, 품질을 더 높이고 싶었던 작업들을 스스로 찾아서 하더라는 겁니다. 경영진이 위에서 지시한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자발적으로 빈자리를 메운 것이죠. 남바 회장의 표현을 빌리면, 그 일들은 "하지 않아도 사업이 돌아가던 것들"이었습니다.


이 발견은 기업의 AI 전환 전략에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남바 회장은 결국 순서를 뒤집었습니다. '효율화 → 잉여 인력 → 재배치'가 아니라, '먼저 사람을 옮기고 → 빈자리를 AI로 채운다'로 전략을 수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관리자 평가 KPI에도 '얼마나 많은 인력을 기존 업무에서 해방시켜 신사업에 투입했는가'를 포함시킬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것은 개인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AI가 만들어준 시간을 기존 업무의 품질 향상에 쓸 것인지, 완전히 새로운 역량을 만드는 데 쓸 것인지. 의식적으로 선택하지 않으면 기존 업무에 흡수되어 버린다는 것을 DeNA의 사례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안 걱정 없이 시작할 수 있는 59%

기업에서 AI 도입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보안입니다. AI에 내부 자료를 넣으면 학습에 사용되는 것 아닌가, 기밀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이 우려 자체는 타당합니다. 그런데 DeNA가 공개한 AI 활용 사례 100건을 분석해보면, 이 우려가 AI 도입 전체를 막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00건 중 59건, 거의 60%가 별도의 인프라 구축이나 보안 심사 없이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공개된 법률이나 가이드라인을 AI로 빠르게 검색하는 것, 해외 법령을 조사하고 번역하는 것, 인터넷의 트렌드를 분석해서 리포트를 만드는 것 같은 업무들입니다. 애초에 공개 정보만 다루기 때문에 기밀 유출의 가능성 자체가 없습니다. 회의록 작성, 슬라이드 오타 체크, 100페이지짜리 자료의 목차 정리 같은 업무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특히 주목할 패턴은 비개발자가 AI의 도움으로 직접 업무 도구를 만들어낸 사례들입니다. 프로그래밍을 전혀 모르는 비즈니스 담당자가 AI에게 요청해서 크롬 확장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코딩 경험이 없는 사람이 에러 화면 스크린샷을 AI에게 보내가며 업무 관리 도구를 완성했습니다. "이건 개발팀에 요청해야 해"라는 말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업의 AI 전환은 거창한 인프라 투자가 아니라, 보안 걱정이 없는 영역에서 작게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인 첫 걸음이 됩니다.

DeNA AI 올인 성과.png 일본 DeNA AI 올인의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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