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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수이 Apr 27. 2023

스타트업 주니어, 레벨 업하지 않고 성장하기

4월 회고, 자기계발 북살롱부터 우당탕탕 크로스핏까지



히든 스테이지를 

발견한 기분



나는 경기도민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시 상계동이지만 지난 20여년 간 쭉 경기도 수원시 남부의 작은 동네에서 자라왔다. 내 삶에서 장거리 이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고, 서울에 있는 직장에서 인턴 생활을 하고, 서울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서울에서 할 일은 많아지면 많아졌지 결코 줄어들지는 않았다.


  하루에 약 서너 시간을 대중교통에서 보내는 일이 마냥 수월했던 건 아니다. 그렇지만 남들에 비해서는 괴로움의 정도가 덜한 편이었던 듯하다. "낭비되는 시간이 아깝지 않아?", "면허라도 따서 운전하고 다니는 게 어때?" 같은 말을 들어도 이젠 별 감각이 없다.

  주변의 경기도민들은 서울에 정기적으로 드나들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기숙사나 자취 등의 선택지를 취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지하철과 버스에 몸을 맡기면서 나의 일상을 짜임 있게 꾸려가는 데 아직까지 별 무리는 없다. (물론 대학 생활 때는 늦게까지 술자리에 참여할 수 없어 억울한 마음도 있었다.)


  내가 아직까지 한 번도 집을 떠나 생활하지 않은 채 서울에서 대학과 직장을 다닐 수 있었던 건 스무살 때, 처음 서울로 통학을 시작했을 때부터 스물여섯 살이 된 지금까지 이동 시간을 알차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하게 개발하고 실천해왔기 때문인 것 같다.


이동의 희망을 버리고 대신 이동시간 동안 할 일을 알차게 준비하기. 그것이 경기도민의 기본 소양인 것이다. ―송지현, 「원래는 파리 생활을 쓰고 싶었다」 中


  장거리 이동에는 콘텐츠가 필수이다. 독서, 영화, 웹툰, e-book, 유튜브를 거쳐 최종적으로 정착한 콘텐츠는 팟캐스트였다. 시선을 빼앗기거나 두 손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아도 시간을 죽이기 좋은 즐길거리가 귓전에 쏙쏙 꽂히는 매력 때문이었다.




듣기를 통해 배운 것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팟캐스트는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이하 여둘톡)>이다. 이 팟캐스트의 공동 진행자인 황선우, 김하나 작가님은 화제의 에세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써내며 '조립식 가족'이라는 형태의 공동 생활을 제안하며 많은 2030 여성들의 힘이 되어 주기도 했다.

  <여둘톡>에는 나보다 앞서 지구별 생활을 시작한 두 여성이 선배로서, 언니로서, 선생으로서 나직하고 우직하게 들려 주는 값진 이야기들이 흘러 넘친다. 가장 유의미한 건 두 진행자가 '갓생'을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이 내 삶의 레퍼런스로서도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때의 갓생은 자기 자신의 상태와 역량을 무시한 채 몰아붙이는 번아웃과는 거리가 멀다. 두 진행자가 말하는 갓생은 황량함 대신 너그러움과 여유로움으로 일상을 가꾸어나가는 스킬에서 비롯된다. <여둘톡>을 구독한 뒤의 나는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선 채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여둘톡>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지혜를 배운다.


  <여둘톡>에서는 매 회차마다 명언이 쏟아져 나온다. 각자 직장에서 커리어의 정점을 찍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생활하는 두 진행자가 주로 강조하는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자신을 볶아치지 말자", "'이것으로 충분하다' 만족력을 키우자".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인생은 레벨업이 아니라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다"이다. (진행자 중 한 명인 김하나 작가님의 저서 『말하기를 말하기』에 실린 문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2023년 4월은 스펙트럼을 넓히는 시기였다. 4월 초, 문토에서의 커리어를 아쉬운 마음으로 정리한 뒤 이직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간 스타트업의 주니어로서 레벨업만을 강조했던 나의 커리어 패스에 히든 스테이지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처음 취업 준비에 돌입하며 몸 고생, 마음 고생에 뒹굴었던 시기와는 무언가 많이 달랐다. 또, 감사하게도 예상보다 빠르게 뿌리를 내릴 직장을 만나게 되어 5월부터 출근을 시작하게 되었다. 오늘은 내가 지난 4월을 회고하면서 새로운 곳에서의 새 출발을 힘있게 시작해보려고 한다.






복닥복닥 생활



  퇴사 후, 코드아일랜드(참고)의 프로그램 세 개(!)를 동시에 신청했다. 코드아일랜드의 빌더 세 분께서 각각 진행하시는 프로그램이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대화하는 북살롱, 각자 독서 목표를 정해서 트래킹하는 북클럽, 4월 한 달을 되돌아보는 회고 모임까지. 코드스테이츠 수료생이라서 가장 좋은 점을 항상 네트워킹이라고 말하고 다니는데, 4월은 그 이점을 가장 적극적으로 만끽한 한 달이었던 것 같다.


① 제 2회 시온 북살롱: 타이탄의 도구들


  『타이탄의 도구들』은 2020년에 지인을 통해 처음 읽게 된 책이었다. 당시 나는 수원시 동네 책방에서 독서 겸 필사 모임의 진행자로 용돈벌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친해진 분께서 4회차로 구성되었던 모임 내내 좋은 구절을 공유해주셔서 『타이탄의 도구들』의 매력에 빠졌다. 그래서 나는 당시 계획되어 있던 뉴욕 여행에 400쪽에 가까운 『타이탄의 도구들』을 가져갔고, 3년이 지난 2023년 4월 북살롱 덕분에 다시 한 번 그 책을 읽게 됐다.



  그런데 2020년의 독서 경험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사이 대학도 졸업하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세 개의 회사를 거치면서 나름대로의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기에 재독을 할 때 비로소 이해되는 부분이 많았다. 또, 빌더 시온님이 미리 공유해주신 북살롱의 발제문을 고민해보면서 책을 읽다보니 보다 깊이 있는 독서를 해낼 수 있었다.

  실제로 『타이탄의 도구들』에 소개된 마음챙김 명상, 5분 일기 등 일상 속 작은 실천이 습관으로 자리잡았고, 위기 상황이 닥칠 때마다 책 속 명문장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방어막으로 삼기도 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장에 밑줄을 쳐가며 읽었다.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목표는 낮게 잡아라. 그리고 자신이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게임의 규칙을 조작하라.
한 번 천천히 생각해보라. 여러분이 갖고 있는 문제와 부정적 감정의 대부분은 아침을 좀 더 빨리 먹거나, 팔굽혀펴기를 10번 하거나, 잠을 한 시간 더 자기만 하면 해결됐을 문제들 아닌가? 그런 문제들에 대해 일기를 쓰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 않은가?
세상에 당신보다 더 현명한 사람은 없다. 그러니 찾아 헤매지 마라. 당신의 삶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당신이다. 그러니 당신이 스스로 현명해지면 된다. 언제나 당신 스스로를 향해 걸어라. 스스로를 찾아가라.


② 반성합니다 - 사 놓고 안 읽는 책 읽기


  두 번째로 참여했던 프로그램은 빌더 노바님의 독서 모임이었다. 첫 번째 주에 줌에 모여 인사와 대화를 나누고, 2주 동안 각자의 목표에 따라 독서 습관을 실천한 뒤, 다시 줌에 모여 책거리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책쟁이라면 한 번쯤 멈칫하게 되는 모임 제목이라서 망설이지 않고 실천했다.


  나는 ▲이노우에 타케히코, 『슬램덩크 챔프』 신형철, 『인생의 역사』 애시 모리아, 『린 스타트업』 이렇게 세 권의 책을 첫째 주에 소개했다. 『슬램덩크 챔프』와 『인생의 역사』는 조금 읽다가 책장이 넘어가는 게 아까워서(!) 못 읽고 있는 책이었고, 『린 스타트업』은 코드아일랜드 활동 중 상품으로 받은 책이었기 때문에 읽고자 했다.

  그런데 『슬램덩크 챔프』는 독서 목표 트래킹을 시작한지 며칠만에 완독해 버렸고(…), 『린 스타트업』 대신 퍼블리, 원티드 등에서 직무 관련 공부를 주로 하다보니 중간에 내 맘대로 목표를 바꾸게 되었다. 어떤 책을 주제로 하든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디스코드 채널에 좋은 구절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게다가 나는 책 저 책 조금씩 돌려가면서 다양한 책을 동시에 읽는 타입이었기에 수정된 목표가 더 잘 맞았다.


디스코드에서 독서도 인증하고, 감상도 나누었다


  분명 사 놓고 안 읽는 책을 청산(?)하는 것이 모임의 목적이었는데, 함께 독서 목표를 달성해나가면서 소통을 주고받다보니 오히려 사고 싶은 책이 더 많이 생겨 버려서 곤란했다. 마지막 책거리 날 수다를 떨면서 다들 나와 비슷하게 다른 분들의 책을 탐냈다는 걸 깨달아서 재밌기도 했다.

  위 사진과 같이 다른 분들께도 내가 독서 경험 중 느낀 감동과 얻은 지식을 가능한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마음으로 디스코드 채팅을 남기다보니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에서도 한 번 더 읽은 부분의 내용이 정리되었다. 그리고 다른 분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글을 적다보니 인증 기간 동안 읽었던 책들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더 오래, 더 깊게 남았다. 


③ 4월 회고 스터디 파닥파닥



  마지막으로 코드아일랜드 주민분들과 지난 4월을 회고하는 자리를 가졌다. 평일 저녁, 파자마를 입고 모닥불 배경을 설정한 뒤 줌에 모여 4월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이었다. (사실 퇴근을 하지 못해 일반 사복을 입은 분들이 더 많았다는 슬픈 이야기…)


어딘가 비틀려 있는 나의 4월 회고


  빌더 드랙스님이 생성해두신 노션 페이지의 항목에 따라 4월의 경험을 정리한 다음 줌에서 모였을 때 각각의 항목에 대해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개인적으로 주간 회고를 진행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이 준비해준 질문거리에 맞추어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는 경험은 매우 소중했다.

  무엇보다 다른 분들의 재미난 썰을 듣는 재미도 컸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상을 보내느라 고생이 많으셨구나 싶기도, 다들 비슷하면서도 남다른 하루하루를 보내셨구나 싶기도 했다. 코드아일랜드의 주민들끼리만 모여서 진행되는 모임인 만큼 공통점이 확실했고, 그만큼 차이점도 뚜렷했기에 더더욱 끈끈하게 프로그램을 마무리할 있었던 것 같다.






인식과 지식의
텃밭 가꾸기



  이밖에도 개발, 디자인, 기획 등 다양한 IT 콘텐츠를 다루는 온라인 매거진 요즘IT에서 필진으로서 꾸준히 기고를 이어오고 있었다. 지난 4월에는 <요즘 뜨는 커뮤니티, IT 메이커들의 핫플 ‘디스콰이엇’>이라는 콘텐츠를 게재했다. 부족한 콘텐츠였지만 디스콰이엇의 권도언님과 이요한님으로부터 댓글도 받고, 이를 디스콰이엇에도 공유하면서 뜻밖의 관심도 받게 되었다. 역시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인가 보다.


* 위 링크에서 요즘IT에 게재한 콘텐츠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또, 이번에 코드스테이츠 블로그에서도 필진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 번째로 발행한 콘텐츠의 제목은 <1400명이 읽어 본 주니어 PM 노션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생겼을까?>이다. 콘텐츠 매니저님과 논의한 끝에 PMB 예비 수강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질만 한 주제를 선정하게 됐고, 이 김에 내가 혼자서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학습한 소소한 꿀팁들을 적어내려 보면 좋을 것 같아 시리즈형 콘텐츠로 풀어보기로 하였다.


* 위 링크에서 코드스테이츠 블로그에 게재한 콘텐츠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처럼 특정 채널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나의 목소리를 내는 작업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가고 싶은 일 중 하나이다. 이때쯤 다시 <여둘톡> 이야기를 꺼내 보려고 한다. 황선우, 김하나 진행자의 좌우명은 '경거망동'과 '자화자찬'이다. 일을 하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고, 설레발을 칠 수도 있다. 그럴 땐 심각하거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대신, "미안해요. 봐주세요. 앞으로 잘 할게요!"라고 유들유들하게 넘길 줄 아는 태도가 훨씬 유용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만든 '어른'이라는 틀에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이지만, 나는 분이 까먹을만 하면 언급하는 공통의 좌우명이 마음에 든다. 누군가에게 유용한 내용을 글로 적어 알리는 일에는 아직까지 용기가 따르고, 때때로는 걱정과 우려가 앞서기도 하지만, 경거망동과 자화자찬의 태도로 있게 발을 내딛어 보려고 한다.






마치며


지난주에 체험했던 크로스핏은 체험으로만 끝내기로 했다


광인처럼 즐기고 있는 <호그와트 레거시>


놀래켜서 미안했던 고양이


  이렇게 정리해 보니 봄꽃 만큼이나 다채로웠던 지난 한 달이 아니었나 싶다. 문토에서의 커리어를 끝맺으며 섭섭한 마음도 컸지만, 결국에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뚜벅뚜벅 나아가기로 결심하는 데 이와 같은 다양한 활동, 분야, 그리고 사람들과의 겹침이 큰 힘을 주었다.


  결국 스타트업에서 주니어로 성장한다는 것은 이와 같이 다양한 경험을 겹겹이 쌓아가며, 내가 진정으로 공감하는 서비스에서 진심으로 이해하는 고객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힘쓰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앞만 보고 달려나가는 레벨업보다는, 동서남북 두루 살피며 삶의 지평을 넓혀가는 단단한 주니어로 거듭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배우고 익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앞서 잠깐 말했던 뉴욕 여행 중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생각하기 전에 읽어라"라고 쓰인 엽서를 산 적이 있다. 그때부터 줄곧 책상 앞에 붙여 두고 가슴 속에 새기고 있는 문장이다. 스타트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로 이 문장이 갖는 의미가 더더욱 간절하게 다가온다. 읽자. 생각하자. 그리고 끝끝내 말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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