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특례를 받고 난 후 '아프면 환자다'라는 말이 부쩍 나에게 다가왔다. 이전에 피부과를 건선과 화농성 한선염때문에 내집 드나들듯이 드나들었지만 그때만 해도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피부에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 화농성 한선염이 심해져서 중증 환자가 되면서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희귀질환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몸이 본격적으로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고 나서야 내 건강에 대해서 신경을 쓰게 되었고, 내 상태가 어느 수준에 놓여있는지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5월에 건선관절염 진단을 받으면서 산정특례를 함께 신청하게 되었다. 나는 이미 건선으로 인하여 투약을 장기간 한 상태였고 희귀질환인 화농성 한선염 판정을 2019년에 받았기 때문에 실비보험 가입이 안됐다. 그래서 매번 병원을 갈때마다 10만원 내외를 지불하고 왔었다. 이런 나에게 산정특례는 병원비를 대폭 줄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90% 보험커버가 가능하기 때문에 진료비는 1,600원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고 약값도 6천원 내외로 나왔다.
하지만, 이렇게 산정특례를 받고 나니 내가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환자가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약도 하루에 10알 내외를 먹고 MTX라는 면역억제제를 1주일에 한 번씩 먹다 보니 남들과 내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일반 1차 병원을 가면 "약 드시는거 있으세요?"라고 의사들이 묻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순천향대에서 처방받은 약을 보여줬다. 면역억제제를 먹는다는 것을 의사들이 알게 되면 약을 약하게 지어주고 약이 부딪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처방을 조심스럽게 한다.
산정특례를 받았다는 사실이 무조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병원을 갈때마다 내가 산정특례를 받은 환자라는 것을 다른 곳에서 알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회사 입사에 필요한 검진을 하거나 비자 검진 등을 할 때 전산상으로 산정특례가 뜨게 되어 희귀병을 타인이 알게 되어 불리함이 있을까봐 불안감이 들게 된다. 환자들이 모여있는 오카방도 보면 많은 사람들이 회사 검진에서 산정특례가 떠서 입사가 취소되거나 회사측에서 사실을 알게 될까봐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불안감은 사실 환자들이 느껴서는 안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완치되지 않는 자가면역질환과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은 편이다. 사실 암과 같은 질병은 누구든지 얼마나 심각한 병인지 알고 있다. 자칫하면 사망에 이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심각성을 알고 응원을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류마티스 질환의 경우 대다수가 겉으로 보기에는 몸이 멀쩡한 경우가 많다. 강직성 척추염도 건선 관절염도 겉으로 보기에는 환자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걸음걸이가 좀 이상하고 '아이고'라는 소리를 달고 살아도 우선 겉은 멀쩡하니 사람들이 왜 아픈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리고 류마티스 질병은 대부분 자가면역질환으로 희귀질환들이 많은 편이다. 그렇다 보니 병 이름을 말해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자가면역질환'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대충 몸관리를 하면 아픈게 낫는거라고 생각한다.
또한, 나와 같은 류마티스 질환 환자들은 매달 병원을 가야 하는데 아직까지 우리나라 회사들은 병가를 쓰기가 눈치가 보이는 곳이 많이 있다. 게다가 통증이 심해졌다가 나아졌다가 반복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배려가 필요한데 그런 배려는 회사에서 기대하기가 힘든 부분이 있다. 내가 병때문에 그런 배려를 받는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이로 인하여 회사 내에서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러한 배려가 '역차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환자들이 고된 삶을 살고 있다. 회사를 다니면서 병원을 입원하거나 자주 빠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보니 병이 악화될 때는 아예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생계유지를 하기 위해서는 회사를 다니는게 맞지만 도저히 회사를 다닐 수준이 안되기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나의 경우도 이런 케이스에 속했다. 나는 2021년부터 재택근무로 할 수 있는 프리랜서 사무직을 선택했다. 정규직 회사를 다니는 것이 분명 내 커리어에도 도움이 되었지만 나는 정상적인 회사를 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우선, 내 전공을 살려서 취업을 하려면 보통 공정 엔지니어나 품질관리 엔지니어로 취업을 해야 하는데 이들 직군은 2교대나 3교대를 하는 일이 많고 업무 강도도 상당히 강한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연구개발로 가자니 석사 이상의 학위가 없어서 제한이 많았다.
단순 사무직의 경우도 앉아서 장시간 일을 하다 보니 목과 허리, 어깨가 많이 아팠다. 도중에 병원을 가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일이 많아서 몇 달 근무를 한 후 그만뒀다. 나는 화농성 한선염으로 인하여 겨드랑이에 염증이 생겨 아픈 적이 많아 사무직으로 근무할 때 타자를 치는게 쉽지가 않았다. 몸의 피로함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결국 회사 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알바몬을 통해서 재택근무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다녔다. 프리랜서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내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병원을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하지만, 수입이 꾸준하지 않았다. 일이 많을 때에는 한 달에 250~300만원까지 벌었지만 일이 얼마 없을 때는 한 달 수입이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나와 같은 환자들은 정상적인 회사생활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보는 시선에도 많은 상처를 받는다. 우선, 내가 이러한 병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몸이 많이 아프다고 친구들에게 말해도 별다른 공감을 받지 못한다. 친구들과 함께 만날 때면 여러 곳을 돌아다닐 때가 있는데 나는 체력적으로 그게 너무 힘들다. 하루에 한 번 마트를 갔다 오면 몸이 피곤해서 집에 뻗을 정도다. 이런 내 몸상태를 이해해주는 친구는 없다. "친구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통 내 나잇대의 사람들은 건강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러한 고통을 공감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이해하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이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어차피 설명을 하고 병을 알려줘봤자 구체적으로 관심을 가지지도 않기 때문에 애기를 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이라고 나를 이해해주는 것도 아니다. 내가 그동안 대학병원을 꾸준히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내 부모님은 내 병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있었다면 유튜브든 네이버든 내 질병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고 치료에 대해서 알아볼텐데 내가 이미 20살이 넘은 성인이라서 그런건지 그런 행동을 나는 보지 못했다. 내가 어떤 진단을 받았고 약을 받아왔다고 말을 해도 그게 다다. 내가 어떤 약을 먹는지도 관심이 없다. 내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내 부모님의 반응을 알기 때문에 말을 안하게 된다. 이렇다 보니 가족이지만 서운한 부분이 많이 있으며, 내가 남들에게 내 얘기를 털어놓지 않게 되었다.
올해 화농성 한선염이 심해져서 순천향대로 가서 긴급 시술을 하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보긴 했으나 구체적으로 내 병이 어떤 병인지는 잘 모른다. 5월에 건선관절염을 진단받고 산정특례를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부모님이 내 병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걱정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이러한 마음은 그저 사치에 불과했다. 나는 엄마가 아플때 내 스스로를 많이 희생했는데 막상 내가 환자가 되니 돌아오는건 얼마 없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기브앤테이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걸 알고 있었지만 부모-자식 간의 사이에서 생기는 서러움은 이로 말할 수가 없다.
이번에 내가 유학을 결심하게 되어 준비하고, 합격하고, 출국 준비를 할때도 서러운 점이 많이 있었다. 출국 과정에서 해외에서 진료를 받을 일이 생길 수도 있으므로 영문 진단서를 준비했고, 피부때문에 혹시 몰라서 12월에 한 번 들어올 생각을 했다. 비행기표가 사악하기는 하지만 유럽은 전문의 진료를 빠르게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상태가 심각해지면 국내로 들어오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12월에 병원 진료때문에 한 번 들어온다고 했더니 내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왜 들어오냐며 어차피 1년만 있는 것이니 1년 쭉 있으라고 했다. 나는 산정특례도 있고 하니 의사와 이야기를 해본다고 했는데 왜 내 몸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올해 들어서 내가 생각한 것은 내가 지나치게 너무 희생했다는 것이다. 3월부터 지금까지 부모님과 냉전을 벌일 정도로 다툰 적이 몇 번 있었다. 항상 부모님은 내 희생만 바라는데 나는 내가 지나치게 너무 많이 해줬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내가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집안 생계를 유지한 것은 나였고, 엄마가 아플 때 집안일을 대신 한 것도 나였다. 내가 너무 당연한 듯이 모든 것을 내줬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 것 같다.
이번에 내가 유학을 가기로 강하게 결심하게 된 것은 이러한 면이 강하게 작용했다. 해외에 나가서 공부하는 것이 내 꿈이기도 했지만 더 이상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엮이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패륜짓은 할 수 없으니 해외로 나가서 이제 좀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 참는게 한계가 다 다랐고, 몸도 피곤하고 하다 보니 이제는 이기적이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환자'라는 것이 이렇게 서럽다. 우리 사회에서 '아프다'는 존재는 천덕꾸러기와 같은 것이다. 회사를 가서도 가족 내에서도 공감을 받지도 인정을 받지도 못하고 오히려 피해를 볼까봐 전전긍긍해야 한다. '산정특례'라는 제도는 분명 환자들에게 있어서 '빛'과 같은 존재이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아픈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다. 빠른 경제성장과 과도한 경쟁구도가 생기면서 '아픈 사람'은 '낙오자'일 수밖에 없으며 이들에 대한 배려는 '특혜'의 시선이 되어 버리고 만다.
가령, 시험을 보거나 학교를 다니거나 회사를 다닐 때에도 아픈 사람에 대한 배려는 보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ETS가 주관하는 시험들은 나와 같은 환자들이 장애 신청을 할 경우 시험시간을 더 주고, 입시에 있어서도 Disability를 신청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사회도 보면 환자들에 대해서 배려해주는 시스템이 많이 갖춰져 있으며 일반 사람들도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무조건 선진국이 좋다고 칭찬하는 사대주의적인 시선이 아니라 이런 부분을 우리가 배우고 개선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유럽의 이러한 문화는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이들 나라도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있었다. 인식의 변화와 함께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장애에 대한 배려 문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가 높은 경제 수준을 자랑하는 만큼 이제는 어떤 부분을 배려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어떻게 장착을 해야 하는지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10대 때만 해도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몸이 아픈 순간이 찾아온다. 누구든지 '환자'가 될 수 있으며, 나처럼 류마티스 질환이나 희귀 피부 질환이 생길 수 있다. 환자의 대상이 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에 대한 배려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 사회가 초고령화 사회 및 인구감소를 생각할 때 이제는 단순히 건강보험 시스템만 좋다고 칭찬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늘어나게 될 환자를 대비하여 편안하고 배려심이 있는 환자존중 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