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농성 한선염과 건선이라는 질병이 있었음에도 나는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다. 보통 나처럼 희귀질병 앓고 있으면 "유학"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보니 국내 치료를 포기하기가 힘들다는데 있다. 모두가 알듯이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제도는 수준급이여서 의사를 만나는 것도 빠르고 병원비나 약값도 저렴한 편이다. 유럽의 경우 많은 나라들이 전국민 무상 건강보험 제도를 취하고 있지만 환자 수에 비해 의사 수가 턱없이 부족하여 진료를 받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의료비와 약값이 무료라는 것은 분명히 좋은 복지제도지만 전 국민이 혜택을 보다 보니 몸이 아파도 바로 의사를 볼 수가 없다. 또한, 우리나라는 전문의를 보러 가는 것에 대해 제약을 받지 않지만 외국은 전문의를 보기 위해서는 공중보건의를 먼저 만나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보통 나처럼 희귀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선뜻 외국행을 선택하기가 쉽지가 않다. 하지만, 나는 유학을 가기로 결정했다. 현재 류마티스 내과에서 생물학적 제제까지 보험처리를 해준다고 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포기하고 유학을 가기란 나에게도 쉽지가 않았다. 유학을 가지 않았을 때 내가 얻을 수 있는 것과 유학을 갔을 때 내가 얻는 것을 비교를 하자면 나는 전자가 훨씬 크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나이가 어느 정도 많기 때문에 하루빨리 학위를 따서 자리를 잡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분야는 학사학위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석사 이상의 학위가 반드시 필요했다. 또한 나와 같은 바이오 공학 계열은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가 않으며, 학문의 흐름 자체가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 의해서 주도되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서 직접 경험을 해보고 인맥을 쌓고 취업까지 하고 싶었다. 나는 단순히 석사 학위만 바라고 가는 것이 아니라 박사, 포닥까지 해외에서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국내 대학원을 진학하는 것도 고려는 해봤지만 내가 최종적으로 선택하지 않게 된 이유는 대학원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만악의 근원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미 중국 대학원에서 생활을 해보면서 겪었던 것이 있었기 때문에 국내 대학원은 더 가기가 싫었다. 비록 중국에서 교수와 조금 갈등이 있었다지만 그곳은 랩실 환경이 수준급으로 좋았고 행정업무도 학생들이 보지 않았으며, 사수와 후배 사이에 역할 구분이 잘 다져저 있었다. 또한, 랩실 자체가 돈이 많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쓰는 시료나 장비도 꽤나 고가의 제품이 많았으며 대학 자체에서도 해외 유학의 기회를 많이 부여하기도 했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랩실 생활이 고된 것은 맞다. 하지만, 국내 대학원은 학생들이 과도한 행정 업무도 해야 하고, 랩실 안에서 정치질이나 교수의 무능함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크게 느껴졌다. 김박사넷을 읽어보면 국내에서 내놓아라하는 대학들의 교수들 중에 평이 좋은 교수는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스카이 대학을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카이 대학의 랩실로 갔을 때 내가 받을 수도 있는 차별에 대해서도 걱정하게 되었다.
다른 이유로는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 가족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야 하다 보니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았다. 또한, 국내 대학원이라고 해서 등록금이나 생활비가 저렴한 수준도 아니었다. 보통 조교 생활을 하고 랩실에서 지원받는 돈으로 등록금은 커버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남는 돈이 거의 없었다. 내가 졸업한 학교의 대학원이 한 학기 등록금이 700만원에 육박했고, 보통 실험실 생활을 하다 보면 밤새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에 집에서 통학하기는 어려우므로 기숙사 생활을 하거나 자취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대학가 원룸의 월세는 생각보다 비싼 편이고 최근 들어 국내 물가가 너무 오르면서 생활비 지출도 많이 해야 했다. 이렇다 보니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것이나 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것이나 최종적으로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너무 외국 생활에 대해서 지나치게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해외에서 산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생활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유학을 꿈꾸게 된 것은 해외 생활을 하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네트워크가 더 넓고 해외 박사를 진학하게 되었을 때 유리함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점이라면 보통 유럽은 석사가 코스워크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국내 대학원은 랩실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석사를 졸업하면 논문을 여러개 쓸 수 있어 박사 진학에 유리함이 있다. 하지만, 내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내 수준에서 미친듯이 랩실에 집중을 하기 보다는 우선 코스워크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학부 전공과 석사 전공이 다르기 때문에 석사 전공의 적합성을 알아보기 위해서도 코스워크가 필요했다. 또한, 새롭게 배우는 학문인만큼 코스워크를 통해서 기초를 다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코스워크 위주의 석사에 거리낌이 없었다.
내가 유학을 고려하게 된 것은 중국에서 한국을 돌아왔을 때 부터였으며 본격적인 준비는 작년에 하게 되었다. 영어회화가 거의 안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회화 공부를 하면서 아이엘츠 공부를 병행했고 학업계획서와 CV, 교수 추천서 등을 준비했다. 지난 한 해에는 다행히 화농성 한선염이나 건선이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몸 건강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내 몸 상태가 유학길에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작년 10월에 원서를 쓰기 시작해서 올해 1월에 3곳에서 오퍼를 받게 되었다. 내가 한선염이 갑작스럽게 심해진 것은 2월에서 3월이었고 건선관절염을 진단받게 된 것이 5월이었다.
이미 합격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새로운 병을 진단받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나는 유학을 가겠다는 마음을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혹자는 류마티스 질환이 있으면서 유학을 가는 것은 도박이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이 선택을 내가 밀어붙여야 훗날 후회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물학적 제제는 산정특례를 받았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진단받을 당시만 해도 내가 주사제를 나갈 수 있을지 명확하지 않았다. 교수님께서 나에게 그 얘기를 해주신 것은 8월이었다. 건선관절염은 산정특례를 받은 후 6개월 동안 약을 복용해야 주사제 보험이 가능하다. 나는 5월에 받았으므로 12월은 되어야 주사제를 사용할 수 있다. 내가 주사제 하나만 바라보고 유학을 포기하기에는 내 세월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이미 영국에서 오퍼를 받았고 영국은 1월 입학이 없었기 때문에 주사제를 진행한다면 1년이라는 시간을 날려야 했다. 12월에 주사제를 들어가면 최소 6개월은 꾸준히 병원을 와서 피검사와 통증 평가를 하면서 심평원에 보고를 해야 한다. 따라서 결국 주사제 선택 하나로 1년을 나는 날려야 했다. 주사제를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약 처방이 최대 3개월만 가능하기 때문에 내년에 유학을 가게 되었을 때 또 문제가 생긴다. 나는 차라리 그럴 바에야 주사제를 내년으로 미루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우선 국내에서 약처방을 최대로 받을 수 있는데까지 받은 후 영문 진단서와 투약기록지를 통해 현지에서 약을 복용하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또한, 류마티스 내과의 경우 GP가 전문의에게 의뢰를 하면 약 3-4개월 정도만 기다리면 의사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충분히 치료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적어도 내가 이 선택을 했다는 것에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이것저것 다 고려를 해서 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 않고 후회를 하느니 미련없이 도전하는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영국에서의 내 생활이 어떨지, 그리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차차 서술해보겠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