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향에 실려온 붉은 기억
강원도의 물길과 산길이 만나는 곳, 춘천
호수는 고요히 시간을 끌어안고,
그 가장자리에선 한 줌 불꽃이 익어간다.
춘천은 그저 아름다운 도시가 아니다.
이곳에는 사람의 땀과 정이 눌러앉은,
붉은 맛이 있다.
춘천 닭갈비
닭이 갈비라니, 처음 듣는 사람은 웃지만
한 입 먹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고추장 양념이 닭다리살을 감싸고
양배추, 깻잎, 떡, 고구마, 대파까지
모두가 함께 불 위에서 춤춘다.
치익
기름 튀는 소리
보글보글 양념이 끓는 소리
바삭 익어가는 떡의 숨소리
불판 위에서 춘천은 말이 없다.
대신 맛이 말한다.
뜨겁고 정겹고 눈물겹도록 진한
가족처럼 친구처럼 연인처럼
이름 대신 입에 남는 닭갈비
그 시절, 소고기도 돼지고기도 비쌌다.
닭 한 마리 푸짐하게 썰어 넣고
젓갈과 고추장으로 양념을 해 볶았다.
그게 닭갈비의 시작이었다.
값싼 고기로 나눈 푸근한 인심이
이제 도시의 대표 맛이 되었다.
50년 넘게 자리한 철판들
불판 위에 얹힌 지친 삶을 녹이고, 웃음을 되찾고
젓가락 끝에 담긴 위로의 말 한마디다.
매콤 달콤한 양념이 입안을 감싸면
닭의 탄력 있는 살결이 사르르 씹히고
떡은 쫀득쫀득, 고구마는 포근하게 단맛을 터뜨린다.
깻잎의 향긋함이 입안에서 날개를 펴고
모든 것을 불향이 덮는다.
한 입에, 사람들은 고개를 젖히며 말한다.
“와… 진짜 미쳤다.”
그러다 볶음밥 타임이 오면
이건 또 다른 시작이다.
김가루, 참기름, 김치 쫑쫑, 밥 투하.
남은 양념을 싹싹 긁어 볶는다.
숟가락으로 눌러 누룽지 소리 톡톡
이 순간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다.
그곳에 가면 어릴 적 기억도 따라간다.
가족여행, 수학여행, 첫 연인의 손을 잡고 걸었던 닭갈비골목
언제나 불꽃처럼 따뜻했던 기억이 함께 피어난다.
춘천 닭갈비는 사랑을 볶고, 추억을 버무리고
불에 지진 우정을 한 접시에 담은
작고 뜨거운, 삶의 조각이다.
그 조각을 씹으며
우리는 어제의 나를 다시 만난다.
그리고 말한다.
“참, 잘 익었네. 내 마음도.”
은파랑